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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군 Sep 05. 2024

복싱과 나

2024년 8월 25일 <제61회 KBI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를 참가하였다.

내가 속한 조엔 나를 포함 3명의 인원이 있었고, 나는 한 경기를 승리해야 결승을 치를 수 있는 대진이었다. 처음 대진을 보았을 때 "많이 싸워서 좋다" 란 생각이 들었고, 상대들 역시 꽤 전적이 좋은 편이라 약간의 흥분과 기대감에 경기를 준비했다.

경기 일주일 전, 약간의 부상을 입었다. 시합 전에 다치는 건 이제는 그냥 루틴이려니 싶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었지만 불편한 느낌은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 가장 중요한 계체를 위해 한주는 열심히 뛰었다. 


나는 러닝 할 때 핸드폰도, 지갑도 챙기지 않고 그냥 몸만 챙겨 나간다. 하루는 늦은 시간 기모인 후드를 입고 성북천을 넘어 종각, 시청까지 뛰었다. 이 날씨에 7km 정도를 쉬지 않고 뛰니 땀이 옷을 흠뻑 적셨고,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 이거 더위를 먹었거나 탈수다..' 란 생각이 들어 물을 찾아다녔는데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고, 근처 건물들은 다 대기업 건물이라 입구가 막혀있다. 평상시에 자주 보이던 음수대도 보이지 않고, 좀비처럼 새벽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허름한 술집 화장실에 들어가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을 마시니 다행히 정신이 돌아왔고 다시 뛰어 집으로 무사히 귀가했다. 체중계에 오르니 2kg이 넘게 빠져있다. 물을 그렇게나 마셨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시합준비를 했고,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린 선수는 없을 거라는 자신감에 도취되었다. 시합 전날 여자친구가 승리를 위해 장어도 사줬고, 미리 쓴 일기엔 "이번에도 한 대도 맞지 않고 우승했다."라고 쓸 정도였다.


시합날 아침 약간의 긴장을 해서 그런지 계속 배가 울렁울렁거린다. 그래도 힘을 내기 위해 샌드위치를 우겨넣고, 첫 상대를 탐색했다. 꽤 몸이 단단해 보이는 사우스포(왼손잡이)의 선수였다. 

사실 난 사우스포에 대한 무서움이 있다. 체육관에서 날 팼던 사람들은 거의 사우스포였고, 사우스포에 대한 파훼법도 잘 몰랐다. 후에 영상을 보고 복기하며 안 사실은 굉장히 기본기가 잘 잡혀 있고, 자세가 이쁜 선수였다는 것!

사우스포의 꽤 구력이 있는 선수와의 첫 경기. 지난날 가졌던 자신감과는 다르게 링 위에서는 굉장히 무섭고 떨린다. 머리는 하얘지고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분명 엄청 많이 때렸는데 상대의 주먹은 계속 나온다. 한 대 제대로 맞았다. 별이 보이고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힘을 딱 주고 버텼다. 때리지 않으면 맞는다는 생각에 연습한 것, 기본기, 계획은 뒷전으로 두고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한대 또 제대로 맞았다. 심판은 다운 선언을 했지만 멀쩡했고,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처음 내 기세에 힘입어 유효타를 많이 낸 덕에 다행히 경기는 승리를 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힘이 너무 많이 빠져버렸다. 이겼는데 개운하지 못했다. 영상을 보니 엉망이다. 내가 아는 복싱이 아니었다. 아름답고 멋지지 않았다. 이긴 후에 권투인협회 부회장님(그 당시엔 그냥 아저씨인 줄 알았음)이 스쳐 지나가며 "잘하는데 가드를 좀 올리고 싸워"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내 영상을 보니 정말 싸우기 급급해 보이기만 했다.


그렇게 첫 경기를 마치고 두 번째 경기를 준비한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몸이 너무 무거웠다. 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에 반해 상대는 첫 경기일 텐데.. 그럼에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없었고 이길 자신도 있었다. 

상대는 작년까지 20대 대회를 나간 선수니까..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체력도 좋을 텐데.. 진단 생각은 그때까지 안 했다.

그리고 경기. 가드 올리는 것마저도 힘들었지만 끝까지 싸웠다.

결과는 졌다. 사실 경기 끝나고 내가 이긴 줄 알았다. 분명 내가 더 많이 때렸고, 제대로 맞은 건 없었고, 정말 힘들었는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영상을 보니 왜 심판들이 그런 판정을 한지 이해가 갔다. 가드 없이 그냥 목표만을 향해 무식하게 돌진하고,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 있고, 오히려 깔끔하게 들어간 유효타는 나보다 상대가 더 많았다. 


그렇다. 난 나의 승리를 100% 예상했지만 졌다. 그리고 약 5일이 지난 시점에야 깨닫는다. 잘 졌다.

만약 내가 그렇게 또 이겼더라면 나는 나의 문제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난 내 문제를 깨닫고 그걸 고쳐나가기 위해 또 훈련할 테니.


이건 링 위에서 만의 문제가 아니다. 너무 많은 힘은 오히려 독이 된다. 

진정으로 자신을 믿으면 오히려 힘은 빠지고 내가 연습했던 것, 내가 알고 있던 것,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그때 오히려 나는 더 강해진다.


복싱에는 '승리'와 '배움'이 있을 뿐, 패배는 없다는 코치의 말처럼 복싱을 통해. 나를 배우고. 삶을 배우고. 연기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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