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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추로 말하자면

니 줄라꼬

by 이미경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마루가 달려와 부빈다.

"어서 온나" 반기는 아버지 뒤로 대추 굽는 건조기 소리가 요란하다.

"아이고 시끄러워라, 올 밤 잠은 다 잤네."


비가 낙낙하게 내린다.

울 엄마가 그랬었는데.

'너거 오면 일 시키려고 벼럈더만 하필 비가 온다'라고.

오늘이 그렇다.

산에 가서 밤도 줍고 대추도 따 먹어 보려 했건만 둘 다 물 건너갔다.


자작자작 빗소리에 이야기가 무르익는다.

시장에 아기 주먹만 한 대추 많이 보이더라.

그것 사과대추, 진짜 커제?

보기엔 실해 보여도 그것 별 맛없더라.

다들 맛있다 하던데요.

그 사람들은 여기 대추를 못 먹어봐서 그럴 거야.

나는 안 사 먹어봐서 모르겠네.

옛날부터 대추는 여 대추를 최고로 쳐 줬다 아니가.

다른 동네 대추보다 맛있긴 하지.

우리 동네 대추 안 먹어본 사람들은 진짜 대추 맛을 모를 거다.


대추 먹고 싶나?

네.

대추 있어예.

있지, 맛 보여 줄까?

네.

그럼, 딱 한 개씩만 맛 보여 주꾸마.

'딱 한 개씩이라니?' 어리둥절하였다.


나는 생대추는 한 번씩 먹고 싶더라.


아이쿠나! 잘 됐다.

왜 대추 한 갠고 하면,

미경이가 온다 캐서, 뭐를 좀 싸 주노 생각하다 대추가 생키더라.

생대추는 이때 지나뿌면 파이다 아니가.

미경이 니 줄라꼬,

너거 오빠 대추 털 때 가서 한 되 택 따로 따 왔다 아니가.

올해 대추가 몇 나 안 열었더라. 한 이틀 주웠나?

오늘 아침에 씻어 건조기에 다 넣었다.

너거는 온다 소리도 없고 해서 너거 꺼는 없고, 미경이 것만 쪼매 있다.

그래서 한 개씩밖에 못 준다는 거라.


아이고! 우리 미경이 덕에 그 귀한 생대추 맛을 다 보네. 고맙다!


'니 줄라고'

그 말이 가슴팍을 징 울렸다.

내가 그토록 갈구해 오던 것을 오늘에야 듣다니.

허기진 곡간이 후끈 데워지는 느낌이랄까?

어깨가 우쭐하였다.


그릇 들고 따라와 봐라.


분홍 쌀바가지를 들고 저온 창고로 쭐레쭐레 따라 들어갔다.

아버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 딱 한 사발을 내어 주신다.

한 사람에 한 두 개씩.

나머지는 지퍼 딱 채워 다시 들이며 갈 때 잊지 말고 챙겨 가라 신다.


뽀득뽀득 씻어 한 입 사각 깨물었다.

음~ 달다, 달어!

그래, 바로 이 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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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밤, 호박, 단감, 상추, 열무, 겨울초...

어깨가 내려앉을 정도로 짊어지고 왔다.

아무 말 않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잠시 한 눈 판 사이,

냉장고를 열자마자 양이 팍 줄어든 대추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벌써 반밖에 남지 않았잖아!

아직 반이나 남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하~!

대추 앞에서 긴 한숨을 쉬었다.

벌써냐 아직이냐, 부정이냐 긍정이냐!

말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새 되지도 않은 헴릿 대사를 줄줄 읊고 있었다.


나눠 갖자 했지만 언니들이 극구 사양하여 나 혼자만 가져온 대추를 어딜 감히.

'니 줄라꼬' 오직 나만의 대추, 두고두고 먹으려고 아껴 먹고 있었는데, 어딜 감히.

가뜩이나 시원찮은 손목으로 신줏단지 모시듯 가져온 것을, 어딜 감히.

맛있다고 말이라도 보태든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혼잣말을 하였다.

그럼에도

일단 집에 들어온 콩 한쪽도 나눠먹어야 된다고 부르짖었기에 손대지 말라고 감히 말을 못 하였다.

대추 앞에서 드러난 본심, 옹졸하고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하~ 내가 아직이로구나!'


잠든 사이 옴팍옴팍 없어진다.

대추 맛을 알아버린 게다.

여태껏 대추 먹는 것을 본 적 없기에 안심하고 있었던 터.

말 안 해도 맛있는 건 귀신같이 찾아 먹는다는 걸 간과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어쩌겠나.

'그래요, 같이 먹읍시다. 당신도 때깔 좋아 봐야지요.'


마, 못 본 걸로 해 주이소.

마, 안 들은 걸로 해 주이소.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섰는 아침,

대추 한 알 오작오작 뽀갠다.

달다!

달어!

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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