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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차 HR, 계량심리학을 만나다

모델의 한계를 넘어서,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

by Kay

5년 전, 그룹 내 구성원들의 데이터 리터러시 제고를 위한 교육을 담당하게 되면서 개인적으로는 원치 않았던 AI/Big Data MBA라는 길을 등 떠밀리듯 걷게 되었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데다, 재수를 했음에도 끝내 개선되지 않았던 수리 영역 성적을 떠올리며, 그야말로 공부하는 내내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 고된 과정을 마치더라도 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는 전혀 거리가 먼, 여전히 원래대로의 HR 담당자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모든 생각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뒤바뀌었다. 학위 기간 중 배운 데이터 분석의 관점을 석사 논문 작성을 위해 활용해야 했고, 잠자고 있던 나의 HR 업무 데이터에 한 방울 떨어뜨리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엑셀 파일 속에서 의미 없이 잠자고 있던 데이터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 순간이었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면서 작업의 결과물은 어느새 HR Analytics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계량심리학의 새로운 시도들 역시 비슷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전통적인 심리측정 모형(Psychometric Model)이 가진 세 가지 핵심 가정, 즉 조건부 독립(Conditional Independence), 잠재 변수의 존재성(Latent Variables), 단일 유형 자료(Single Type Data)가 위배되는 상황을 단순한 오류가 아닌 새로운 정보의 원천으로 재해석하는 혁신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특히 조건부 상관(Conditional Correlation)을 응답자-문항 상호작용(Respondent-Item Interaction)으로 보고 잠재 공간 측정 모형(LSIRM, Latent Space Item Response Model)을 통해 개인 맞춤형 프로파일을 도출하거나, 응답 과정을 확산 결정 모형(DDM, Diffusion Decision Model)으로 분석하고, 나아가 행동-신경 자료를 다유형 결합 분석(NDDM, Network and Diffusion Decision Model)으로 통합하는 접근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계량심리의 이러한 접근 방식이 내가 경험했던 것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오늘 정리한 내용이 솔직히 말해 무척이나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잠재 공간 측정 모형을 활용한 구성원 진단 가능성 부분은 크게 와닿은 지점이다. 그동안 데이터 분석의 방법론을 활용하여 HR 데이터로 네트워크 분석(Network Analysis) 같은 것들을 시도할 때, 과연 내가 근본 없이 멋대로 해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상상력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모델의 가정이 위배되는 지점, 즉 기존의 틀로 설명되지 않는 그 불일치에서부터 새로운 정보를 캐내려는 시도 자체가 이 분야의 핵심 동력임을 확인한 것이다. 이는 기술적으로 조금 지났을지라도 다양한 연구나 분석에 활용되며 타인의 공감을 얻어내는 검증된 방법론의 가치와 더불어, 그 방법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창의적인 접근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런 점에서 심리학이라는 깊은 도메인 안에서 계량심리를 연구하며 새로운 모델을 고안하고 적용해 보는 연구자들의 노고에 감탄하게 된다. 그 고생이 얼마나 치열할지, 그리고 새로운 모델에 대한 리뷰어들의 날 선 피드백 속에서 얼마나 외로울지 등이 어렴풋이나마 와닿았다. 내가 직접 그 길을 갈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내가 몸담고 있는 HR에는 어떤 식으로 그 지혜를 빌려올 수 있을지 자주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론: '모델 위배로부터의 학습'이라는 새로운 관점


전통적인 심리측정은 인간의 능력, 성격, 임상 증상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구성개념(Psychological Construct)을 정량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요인 분석, 문항 반응 이론 등 잠재 변수 모형(Latent Variable Models)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모형들은 관측된 행동이나 응답(측정 변수)을 설명하기 위해 그 기저에 있는 공통 요인, 즉 '잠재 변수'를 가정한다.


전통적 잠재 변수 모형의 가정과 그 한계

전통적인 잠재 변수 모형은 그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적인 통계적, 이론적 가정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모든 측정 변수 간의 상관관계가 오직 잠재 변수에 의해서만 설명된다는 '조건부 독립(Conditional Independence)' 가정이 있으며, 잠재 변수가 실제로 존재하며 측정 변수에 인과적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적 가정'도 포함된다. 또한, 분석의 편의를 위해 모든 측정 변수가 동일한 유형(Unimodality)이라고 간주하는 '실무적 가정'도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모형들은 가정이 잘 충족되는 상황에서는 개인차를 정량화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연구자가 수집한 실제 자료가 이러한 통계적, 이론적 가정들을 위배하는 경우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모델 위배'를 정보의 자원으로 재해석하다

일반적으로 통계 분석에서 '가정 위배(Model Violation)'는 회귀분석의 정규성 위배처럼 해결해야 할 귀찮은 문제로 간주되기 쉽다. 자료를 변환하거나 대안적인 분석 방법을 찾아야 하는 장애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델 위배' 상황은 이러한 관점을 뒤집어, 단순한 오류가 아닌 "새로운 정보의 자원(Resource of Information)"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가정이 위배된다는 것은 연구자가 초기에 설정한 모형과 실제 자료(혹은 자료가 대표하는 모집단이나 심리 현상) 간에 '불일치(Mismatch)'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이 불일치 자체에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기존 모형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파고들어, 그 불일치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적극적으로 읽어낸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심리 현상에 더 잘 부합하는 새로운 모형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국 이 관점은 통계적 가정의 틀에 현실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실(자료)이 기존의 틀(모형)과 어긋나는 지점을 포착하여 더 정교하고 새로운 이론적, 방법론적 확장을 이끌어내는 능동적인 연구 자세를 강조한다.



주제 1: [통계적 가정] 조건부 독립의 위배와 잠재 공간 측정 모형


조건부 독립 가정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전통적인 잠재 변수 모형은 '조건부 독립(Conditional Independence, CI)'이라는 핵심적인 통계적 가정에 기반한다. 이 가정의 의미는, 관측 가능한 여러 행동(측정 변수)들이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 이유가 오직 그들의 기저에 있는 공통 요인, 즉 '잠재 변수'(예: 우울감, 지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이 잠재 변수의 효과를 통계적으로 통제(Conditioned)하면, 측정 변수들 사이에는 더 이상 어떠한 상관관계도 남아있지 않아야(Independent) 한다. 즉, 잠재 변수와 문항 특성이 측정 변수 간의 모든 상관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조건부 상관(CD): 가정이 위배되는 순간

'조건부 상관(Conditional Dependence, CD)'은 이 조건부 독립 가정이 위배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잠재 변수의 효과를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측정 변수들 간에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잔여 상관(Residual Correlation)이 남게 되는 경우이다.

전통적으로 이는 모형의 적합도를 떨어뜨리는 문제로 간주되었지만, 이 '설명되지 않는 상관' 자체를 새로운 정보의 원천으로 볼 수 있다.


위배의 재해석: '응답자-문항 상호작용'의 발견

이러한 조건부 상관이 발생한다는 것은, 기존 모형이 가정하는 '주요과(Main Effect)'만으로는 데이터 구조를 모두 설명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라쉬 모형(Rasch Model) 같은 단순한 측정 모형은 응답자의 전반적인 능력(사람 효과)과 문항의 전반적인 난이도(문항 효과)라는 두 가지 주요과만으로 정답 확률을 설명한다. 이 모형은 특정 문항의 난이도가 모든 응답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응답자는 확률 문제는 쉬워하고 행렬 문제는 어려워하는 반면, 다른 응답자는 그 반대일 수 있다. 이처럼 문항의 난이도가 응답자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응답자-문항 상호작용(Person-Item Interaction)'이라고 부른다.

조건부 상관은 바로 기존 모형이 포착하지 못한 이러한 '설명되지 않는 상호작용' 효과가 존재함을 드러내는 신호이다. 이는 종합적인 점수(잠재 변수)가 같더라도 세부적인 강점과 약점이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하며, 개인 맞춤형 진단 및 평가를 위한 핵심 정보원이 된다.


해결 방안: 잠재 공간 측정 모형 (LSIRM)

이러한 조건부 상관(즉, 상호작용 효과)을 모델링하기 위해 '잠재 공간 측정 모형(Latent Space Measurement Models, LSIRM)'이 제안된다. 이 접근법은 기존의 심리측정 모형과 네트워크 분석에 사용되는 잠재 공간 모형을 결합한다.

잠재 공간 구축: 이 모형은 가상의 다차원 공간(Latent Space)을 설정하고, 모든 응답자들과 모든 문항들을 해당 공간상의 '위치'(좌표)로 함께 배치한다.

거리 기반 분석: 이 공간에서 '응답자'와 '문항' 간의 유클리드 거리(Euclidean Distance)가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거리의 해석: 만약 특정 응답자와 문항이 공간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는 둘이 이질적임을 의미한다. 이 거리는 기존 모형이 예측한 값보다 해당 문항에 대한 응답(정답 확률 등)이 더 낮아질 것임을 예측하는 데 사용된다.


적용 사례: PTSD 증상 분석을 통한 개인 맞춤형 진단

잠재 공간 모형의 유용성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료 분석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전통적인 요인 분석을 사용했을 때, 두 명의 환자가 거의 동일한 수준의 전반적인 PTSD 요인 점수를 보였다면, 기존 모형 하에서는 이 두 사람의 증상 심각도가 유사하다고 진단될 것이다.

하지만 잠재 공간 측정 모형을 적용한 결과, 두 환자는 잠재 공간상에서 서로 매우 멀리 떨어진 위치에 존재했다. 이는 두 사람의 종합적인 증상 수준은 비슷할지라도, 세부적인 증상 패턴(상호작용)이 완전히 다름을 의미한다.

환자 A: '외상 관련 자극에 대한 생리적 반응', '외상 관련 자극에 대한 심리적 고통' 등 생리적 반응성과 관련된 증상 문항들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환자 B: '감정적 마비', '미래가 축소된 느낌', '타인과의 거리감' 등 인지적, 사회적 고립과 관련된 증상 문항들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결론적으로, 잠재 공간 모형은 '조건부 상관'이라는 모델 위배 정보를 활용하여, 동일한 종합 점수 뒤에 숨겨진 개인의 고유한 증상 프로파일을 시각화하고 정량화한다. 이는 기존의 단일 점수 기반 진단을 넘어선 진정한 '개인 맞춤형 진단 및 평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주제 2: [이론적 가정] 잠재 변수의 존재론과 심리측정 과정 모형


잠재 변수의 존재성과 인과성에 대한 질문

전통적인 심리측정 모형, 특히 요인 분석 모형은 '잠재 변수'(혹은 요인)라는 동그라미가 '측정 변수'라는 네모에 화살표를 보내는 구조를 가정한다. 이는 '우울감'이라는 잠재 변수가 '기분이 가라앉는다', '잠을 못 이룬다'와 같은 구체적인 증상(측정 변수)들을 유발한다는 '인과적 가정'을 내포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심각한 이론적 도전에 직면한다. '우울감'이나 '지능'과 같은 심리적 구성개념은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추상적이고 가상의 개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존재론적 질문: 물리적 참조(reference)가 없는 잠재 변수가 과연 '실존(existence)'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과성 질문: 만약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가 불분명하다면, 그것이 어떻게 다른 변수(측정 변수)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비판은 잠재 변수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그것의 이론적 입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이다.


기존 모형의 한계: 설명 없는 '경로'

기존의 잠재 변수 모형에서 잠재 변수가 측정 변수(X)로 가는 경로는 단순히 통계적인 함수로 기술된다. 요인 분석이나 문항 반응 이론 같은 함수들은 잠재 변수 수준에 따라 응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기술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즉, '지능'이라는 잠재 변수가 어떠한 심리적 과정을 거쳐 문제의 정답(측정 변수)을 도출하게 되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메커니즘은 이 모형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결 방안: 심리측정 과정 모형 (Psychometric Process Modeling)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잠재 변수에서 측정 변수로 가는 '경로' 자체를 블랙박스로 두지 않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 내적 심리 과정(Intra-individual Psychological Process)'을 명시적으로 모델링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이는 심리 측정 문항에 응답하는 것 자체를 일종의 '의사결정 과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심리측정 모형을 인지심리학의 '수리인지 모형(Mathematical Cognitive Models)'과 결합한다.


수리인지 모형의 결합: 확산 결정 모형 (DDM)

대표적인 수리인지 모형인 확산 결정 모형(Diffusion Decision Model, DDM)은 '정답'과 '오답' 같은 두 가지 선택지 사이의 의사결정 과정을 설명한다.

DDM은 응답자가 시간에 따라 증거(Evidence)를 축적하여, 이 축적된 정보가 '정답' 또는 '오답' 경계(Boundary)에 먼저 도달할 때 반응이 결정된다고 본다. 이 모형은 응답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응답 시간(Response Time)'까지 자연스럽게 통합하여 분석한다.

DDM은 이 의사결정 과정을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인지적 지표로 분해한다.

정보처리효율성 (Drift Rate, v): 정보를 축적하는 속도. 자극이 명확하거나 능력이 높을수록 속도가 빠르다.

경계 간 거리 (Boundary Separation, a):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의 총량. 이 거리가 멀수록 신중하지만(느리지만 정확), 가까울수록 빠르지만(빠르지만 실수) 경솔하다.

시작점 (Starting Point, z): 정보 축적이 시작되는 지점.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사전 편향(Bias)을 의미한다.

비의사결정시간 (Non-decision Time): 자극 인코딩, 운동 반응 등 순수 의사결정 외에 소요되는 시간.


의의: 심리적 과정과 신경과학적 기전의 연결

확산-IRT 모형(Diffusion IRT Model)과 같은 심리측정 과정 모형은 DDM의 핵심 지표를 심리측정 모형의 요소로 분해한다. 예를 들어, 정보처리효율성(Drift Rate)을 개인의 잠재 능력과 문항의 난이도의 함수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러한 결합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심리학적 설명 제공: 잠재 변수(능력)가 '정보처리효율성'이라는 구체적인 인지적 지표에 영향을 줌으로써 응답과 응답 시간을 결정한다는, 이론적으로 풍부한 '인과적 과정'을 제시한다.

응답-응답 시간 통합: 응답 정확도만 보던 기존 모형과 달리, 응답 시간까지 통합하여 '속도-정확도 상충 관계(Speed-Accuracy Trade-off)'를 분리해 내고 더 정밀한 개인차 측정을 가능하게 한다.

존재론적 논의의 확장: 이 접근법이 '정보처리효율성'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보처리효율성'과 같은 인지적 지표들은 최근 뇌 영상 연구를 통해 특정 뇌 영역(예: LIP, DMPFC)의 신경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인지적 지표의 '신경학적 기전(Neural Correlates)'이 밝혀진다면, 이는 곧 그 인지적 지표와 연결된 '심리적 구성개념'의 물리적 참조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이는 "잠재 변수가 실존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에 대한 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주제 3: [실무적 가정] 단일 유형 자료의 한계와 다유형 결합 분석


단일 유형(Unimodality) 가정의 문제점

전통적인 심리측정 모형은 대부분 '응답' 자료(예: 정답/오답, 척도 점수)라는 단일 유형(Unimodality)의 변수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설령 응답 시간(Response Time, RT)이나 뇌 활성화(Neural Activation) 같은 다른 유형의 자료를 수집하더라도, 이를 응답 변수와 동일한 유형으로 간주하여 분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응답 시간을 단순히 요약하여 요인 분석의 또 다른 측정 변수로 투입하는 식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심각한 정보 손실을 초래한다. 각 데이터 유형은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응답 (Response): 0 또는 1의 이항(Binary) 변수일 수 있다.

응답 시간 (RT): 일반적으로 오른쪽으로 꼬리가 긴(Right-skewed) 분포를 가진 연속 변수이다.

신경 자료 (Neural Data): fMRI나 EEG 자료는 본질적으로 고차원의 다변량 시계열(Time-series) 자료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통계적 특성을 가진 자료들을 동일하게 취급하거나, 풍부한 정보를 가진 자료(예: fMRI)를 단일 값으로 축약하여 분석하면, 해당 자료가 담고 있는 고유한 정보를 대부분 잃어버리게 된다.


접근법: 모형 기반 인지신경과학(MBCN)과 조인트 모델링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다른 유형의 자료(Multimodal Data)를 각 변수의 고유한 특성을 모두 고려하며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다유형 결합 분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도는 특히 '모형 기반 인지신경과학(Model-based Cognitive Neuroscience, MBCN)' 분야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MBCN은 행동 자료(응답, 응답 시간)와 신경 자료(fMRI, EEG)를 동시에 표집 하여, 이 둘을 하나의 틀 안에서 연결하여 분석한다.

가장 정교한 접근법 중 하나는 '조인트 모델링(Joint Modeling)'이다. 이는 행동 자료를 분석하는 인지 모형과 신경 자료를 분석하는 모형을 별개로 돌린 뒤 사후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두 자료와 모형을 하나의 거대한 통계 모형으로 동시에 추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통해 행동 지표와 신경 지표 간의 연결성을 보다 정밀하게 추론할 수 있다.


해결 방안: NDDM과 요인 분석(FA)의 통합

조인트 모델링의 구체적인 예시로 '신경 확산 결정 모형(Neural Drift Diffusion Model, NDDM)'이 있다. 이 모형은 DDM을 통해 추정되는 인지적 지표(예: 정보처리효율성)와, 뇌 영상 분석을 통해 얻어지는 신경 지표(예: 특정 뇌 부위(ROI)의 활성화)를 연결한다.

이 두 지표의 집합이 다변량 정규분포(MVN)를 따른다고 가정하고, 이들의 상관 행렬을 추정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연결 방식이다. 이 상관 행렬은 어떤 인지 과정이 어떤 뇌 부위와 관련되는지 보여주는 '인지-뇌 지도'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접근법은 뇌 부위(ROI)의 수가 많아질수록 상관 행렬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예: 64개 ROI + 3개 인지 지표 = 67x67 행렬) 추정이 어렵고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대한 상관 행렬을 직접 추정하는 대신 '요인 분석(Factor Analysis, FA)' 모형을 도입하여 이 행렬을 구조적으로 분해한다.

FA-NDDM: 이 통합 모형(FA-NDDM)에서는 DDM에서 도출된 인지적 지표들(정보처리효율성, 경계 간 거리, 시작점 편향 등)이 '요인'(요인 부하량 행렬의 열)이 된다.

뇌 활성화 지표: fMRI 등에서 얻어진 각 ROI의 활성화 지표들은 '측정 변수'(요인 부하량 행렬의 행)가 된다.

요인 부하량: 결과적으로 행렬의 각 원소는, '특정 인지 과정(요인)'이 '특정 뇌 부위(측정 변수)'에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는지를 나타내는 '연결 강도'가 된다.


적용: Lasso 정규화를 통한 노이즈 감소 및 간명화

FA-NDDM 접근법은 강력하지만, 신경 자료는 본질적으로 노이즈(Noise)가 매우 많다는 문제가 남아있다. 이 노이즈로 인해 실제로는 관련이 없는 인지 과정과 뇌 부위 사이에 유의미해 보이는 가짜 연결(Spurious Correlation)이 요인 부하량 행렬에 다수 추정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인 부하량 행렬을 추정하는 과정에 'Lasso(라쏘) 정규화(Regularization)' 기법을 적용한다.

Lasso는 통계적 모형의 복잡도에 벌점(Penalty)을 부과하는 기법으로, 회귀 분석에서 불필요한 변수의 계수를 정확히 '0'으로 만들어 변수를 선택하는 효과가 있다. 이를 요인 부하량 행렬에 적용하면, 노이즈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약한 연결이나 가짜 연결들의 부하량을 '0'으로 수축시켜 자동으로 제거한다.

그 결과, 노이즈의 영향은 축소되고 정말로 중요하고 강한 연결들만 남게 되어, 훨씬 더 간명하고(Parsimonious) 해석하기 쉬운 '인지-뇌 연결성 지도'를 얻을 수 있다.



결론 및 제언


세 가지 가정 위배 사례를 통한 연구 요약

이 분석은 심리측정 모형의 세 가지 핵심 가정이 위배되는 상황을 정보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접근법을 탐구했다.

조건부 독립 가정의 위배: 이는 기존 모형이 포착하지 못한 '응답자-문항 상호작용'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이 정보를 활용하여 '잠재 공간 측정 모형'을 개발, 개인 맞춤형 진단 및 평가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잠재 변수의 존재성 및 인과성 가정의 위배: 이는 측정의 내적 심리 과정을 명시적으로 모델링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심리측정 과정 모형'은 수리인지 모형과의 결합을 통해 잠재 변수의 존재론적, 인과적 논의를 확장하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단일 유형 자료 가정의 위배: 이는 응답, 응답 시간, 신경 자료 등 다유형(Multimodal) 자료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한 통합 분석을 요구한다. '모형 기반 인지신경과학(MBCN)'과 '조인트 모델링' 접근법은 각 자료의 특성을 살리면서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했다.


제언: 가정 위배를 통한 연구의 확장

자료 분석 과정에서 마주치는 '가정 위배' 상황은 단순히 우회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연구자가 마주한 자료와 심리 현상으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가정의 위배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고찰할 때, 기존 방법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적 모형을 개발하고, 해당 분야의 이론적 확장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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