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려한 AI의 문장보다 투박한 나의 비유가 필요한 이유

글쓰기를 맡기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by Kay

수많은 조직에서 비판적 사고, 창의성, 문제 정의 능력과 같은 인간 고유의 역량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비단 조직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비슷한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인지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역량들의 중요성에는 격하게 공감하지만, 스스로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사용자가 직접 AI를 활용하며 결정적인 한계에 부딪히거나 치열한 목마름을 느껴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은 결코 피부로 와닿지 않을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학과 리터러시의 대가, 제임스 폴 지(James Paul Gee) 교수의 아티클은 이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그는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도권을 쥐고 AI와 상호작용하며 사고를 확장하는 사이버사피엔 리터러시(Cybersapien literacy)를 제안한다. 특히 설명적, 창의적, 대화적, 성찰적 글쓰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합적 글쓰기를 통해 인간은 단순한 텍스트 생성을 넘어선 확장된 인지(Expansive Cognition)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는 AI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정형화된 동결된 언어(Frozen language)가 아닌, 학습자가 자신의 언어로 소화해 내는 유연한 언어(Flexible language)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 역시 경우에 따라 전혀 힘 빼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면 AI를 활용해 소위 '딸깍' 하는 식의 글짓기를 전혀 시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브런치나 링크드인 등을 통해 150개 이상의 흔적을 남겨 온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최소한의 내 생각이나 스토리라인이 담기지 않은 글들은 고급 단어가 포함되었을지 모르지만 뭐랄까 맛이 현저히 떨어짐을 발견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것들이 내 공간에 남겨진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필요한 순간에 절대 나의 생각으로 소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 이제는 습관이자 취미처럼 굳어진 타인의 연구를 분석하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내 분야와 연결 짓는 지금의 과정은 이 아티클에서 강조한 통합적 글쓰기의 실천이었다. 타인의 관점과 대화하며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나의 경험과 연결하여 성찰하며, 나아가 내 분야에 창의적으로 적용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최근 내 학습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결국 AI 시대 글쓰기의 핵심은 AI가 내놓은 그럴싸한 단어들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을 나만의 비유와 메타포를 통해 주체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물론 HRD를 업으로 하는 입장에서, 학습자 스스로 인간 고유의 영역을 포기하거나 주도권을 AI에 내어주기로 결정한다면 그것까지 어찌할 방법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적으로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서두에서 언급한 조직 내에서 강조되는 인간 고유의 역량 또한 이제 AI 사용을 전제로 학습과 경험이 재설계되어야 한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들의 변화와 성장을 이끄는 HRD 담당자로서 그에 대한 학습을 유발하는 경우, 혹은 조직의 리더로서 구성원을 평가하는 기준 또한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Cybersapien Literacy: Integrating AI and Human


Gee, J. P., & Zhang, Q. A. (2024). Cybersapien literacy: Integrating AI and human. Phi Delta Kappan, 106(3), 32-38.


Q1. 이 연구를 3줄로 요약하면?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등장은 계산기가 수학 교육에 미친 영향보다 더 깊은 딜레마를 글쓰기 교육에 제시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과 AI가 협력하는 '사이버사피엔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글쓰기는 단순히 텍스트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적, 창의적, 대화적, 성찰적 글쓰기를 통합하여 인지 능력을 확장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학교는 '심즈(The Sims)'와 같은 친화 공간의 모델을 본받아, 학생들이 AI와 상호작용하며 '유연한 언어'를 통해 깊이 있는 학습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Q2. 저자는 왜 이 연구를 진행했는가?

계산기가 보급되었을 때처럼 LLM이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저자들은 더 큰 문제가 학생들이 이미 학교에서 요구하는 공식적인 글쓰기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글쓰기에 관심을 가질 진정성 있는 개인적 이유를 제공하고, AI 도구를 활용해 인지적, 사회적, 정서적 이해를 향상시키는 방법을 제안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했다.


Q3. 이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개념은?

사이버사피엔 리터러시 (Cybersapien literacy): AI의 분석 및 처리 능력과 인간의 창의성, 직관, 감성 지능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리터러시이다.

통합적 글쓰기 (Integrative writing): 설명적/논증적, 창의적, 대화적/협력적, 성찰적 글쓰기라는 네 가지 유형을 서로 상호작용하게 하여 사고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친화 공간 (Affinity spaces):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는 온/오프라인 공간(예: 심즈 커뮤니티)으로, 학교 교육의 대안적 모델로 제시된다.

유연한 언어 (Flexible language) vs. 동결된 언어 (Frozen language): 학습 과정에서 사용되는 자신의 말로 된 대화체 언어(유연한 언어)와 교과서나 공식적인 텍스트에서 사용되는 고정된 언어(동결된 언어)의 구분이다.


Q4. 저자는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가?

'새로운 리터러시 연구(New Literacy Studies)'의 관점을 바탕으로 글쓰기의 인지적, 사회적 효과를 분석했다.

비디오 게임 '심즈(The Sims)'를 중심으로 형성된 친화 공간에서의 글쓰기 및 미디어 생산 활동을 구체적인 사례로 분석하여 학교 교육에 적용할 시사점을 도출했다.


Q5. 연구의 결과는?

AI 시대에도 글쓰기는 사고를 구조화하고 고차원적인 사고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이다.

효과적인 AI 통합 교육을 위해서는 AI를 단순 텍스트 생성기가 아닌 튜터나 파트너로 활용해야 하며, 인간이 주도권을 갖고 AI와 주고받는(back-and-forth)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1. AI 시대의 리터러시 (Literacy in the age of AI)


1.1. 계산기의 딜레마와 LLM의 등장

계산기가 보급되었을 때, 학생들의 수학 능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학생들이 대학 입시 요건 이상의 대수학을 배워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계산기는 학생들의 기술을 퇴보시킬 수도, 반대로 권한을 부여할 수도 있는 이중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수학에 관심을 가질 개인적 이유를 제공하고, 계산기를 활용해 이해도와 창의성을 높이는 방법을 가르쳐야 했다.

현재 글쓰기 영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딜레마가 나타난다. LLM은 사람들의 글쓰기 능력을 감소시킬 수도 있지만, 인지적·사회적·정서적 이해를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LLM이 제기하는 문제는 계산기의 경우보다 훨씬 깊고 중대하다. 계산기는 계산 기능에 한정되지만, LLM은 이해를 시뮬레이션하고 조리 있게 반응하며 인간의 사고와 의사소통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1.2. 사이버사피엔 리터러시의 정의

LLM이 인간의 번영을 돕도록 하려면, LLM이 이미 잘 수행하는 특정 장르의 작문 기술을 넘어선 글쓰기의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자가 자신의 관심사나 경험과 공명하는 진정성 있는 글쓰기 이유를 발견하도록 돕고, AI와 협력하여 더 윤리적이고 현명해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새로운 리터러시 연구'의 맥락에서 리터러시는 단순한 읽기·쓰기 기술을 넘어 사회적 맥락을 포괄한다. 이는 텍스트와 상호작용하고 다양한 공동체 내 담론에 참여하는 방식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생성형 AI는 기존 리터러시와 통합되어 이를 변형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리터러시이다. 진정한 AI 리터러시는 인간과 AI가 서로의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보완하여,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결과를 성취하는 파트너십을 의미한다.

인간과 AI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이러한 파트너십을 '사이버사피엔 리터러시'라고 하며, 이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결합한다.

AI의 분석 및 정보 처리 능력

인간의 창의성, 직관, 감성 지능



2. 왜 글을 쓰는가? (Why write?)


2.1. 글쓰기의 인지적 기능과 역사적 중요성

글쓰기는 사고의 구체적인 기록을 남겨, 작성자가 이를 다시 방문하고 수정하며 발전시킬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행위는 언어의 구조와 사용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을 높인다. 많은 학술 문헌은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의 전환이 인간의 의식을 재구조화하고 새로운 인지 능력을 가져왔음을 시사한다. 여러 학자들이 글쓰기와 사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레프 비고츠키 (Lev Vygotsky): 글쓰기와 상징적 도구들이 고차원적인 사고 기술의 발달을 촉진한다.

데보라 브랜트 (Deborah Brandt): 글쓰기는 개인이 언어 구조와 사용법을 더 잘 인식하게 하여 더 깊은 인지적 처리로 이끈다.

메리언 울프 (Maryanne Wolf): 읽기와 글쓰기 행위는 뇌의 신경 회로를 변화시켜 비판적 사고와 공감 같은 인지 능력을 향상시킨다.


2.2. 상황과 맥락의 중요성 (새로운 리터러시 연구)

'새로운 리터러시 연구(New Literacy Studies)' 운동은 앞선 논의들이 지나치게 일반적이고 인지적인 측면에만 치우쳤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글쓰기의 종류에 따라 인지적, 상호작용적, 사회적, 정서적 효과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효과는 글쓰기가 작동하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동시에 그 맥락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3. 학습 가치의 필요성

글쓰기는 배우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기술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습자가 그 과정에서 가치를 느끼게 해야 한다. 글쓰기가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글의 유형과 맥락에 따라 다르므로, 학교 내에서 다양한 유형의 글쓰기가 어떻게 존재하며 학생들에게 어떤 이점을 주는지 이해해야 한다.



3. 네 가지 글쓰기 유형과 그 이점


기술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복잡한 위기가 닥치는 오늘날, 개인의 성장과 참여적 시민 의식, 그리고 변화에 대한 회복 탄력성을 위해 네 가지 핵심적인 글쓰기 유형이 중요하다.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는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현될 수 있는 맥락을 조성해야 얻을 수 있다.


3.1. 설명적 및 논증적 글쓰기 (Expository and argumentative writing)

이 유형의 글쓰기를 숙달하면 개인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증거를 평가하며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독립적 사고: 외부의 조작에 저항하고 정보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내리며 독립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다.

공감과 이해: 반대 의견을 다루는 과정을 통해 공감 능력과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며, 이는 다양한 사회에서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필수적이다.

사회적 참여: 타인의 관점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옹호하고, 공적 담론에 참여하여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


3.2. 창의적 글쓰기 (Creative writing)

창의적 글쓰기는 개인적 성장, 자기표현, 공감을 위한 도구로 작용한다.

혁신과 회복력: 작가가 기존의 사고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할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깊은 사고와 정서적 회복력, 혁신을 배양한다.

정서 지능: 픽션이나 논픽션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탐구함으로써 정서 지능을 개발하고, 강력한 관계 형성 및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촉진한다.

삶의 도전 극복: 삶의 어려움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와 정서적 명료함을 제공하고, 적응력과 회복 탄력성을 높인다.


3.3. 대화적 및 협력적 글쓰기 (Dialogic and collaborative writing)

타인의 글에 반응하거나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 방식은 지적 성장, 사회적 연결, 집단적 문제 해결을 촉진한다.

비판적 사고 확장: 다양한 관점과 교류하며 자신의 추론을 다듬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도전받는다.

지적 겸손: 협력, 의사소통, 팀워크를 배우는 과정에서 지적 겸손과 개방적인 태도를 기를 수 있다.

집단 지성: 타인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강점을 활용함으로써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3.4. 성찰적 글쓰기 (Reflective writing)

성찰적 글쓰기는 개인의 성장, 자기 인식, 주체적인 삶을 위해 중요하다.

자기 이해 심화: 자신의 생각, 감정, 경험을 글로 검토함으로써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명확히 한다.

성장 마인드셋: 성장 마인드셋을 촉진하고 정신 건강을 증진하며 의사결정 및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킨다.

21세기 핵심 기술: 기술과 미디어가 주도하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게 해주는 중요한 기술이다.



4. 통합적 글쓰기 (Integrative writing)


모든 유형의 글쓰기에서 사고를 글로 외재화(externalizing)하는 과정은 성찰, 자기 인식, 개인적·인지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며, 타인 및 사회와 생산적으로 관계 맺는 기술을 제공한다. 그러나 글쓰기의 더 중요한 기능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연결하는 데 있다. 앞서 언급한 네 가지 글쓰기(설명적, 창의적, 대화적, 성찰적)는 고립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할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4.1. 통합적 글쓰기의 정의와 메커니즘

통합적 글쓰기는 서로 다른 형태의 글쓰기와 사고를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으로 엮어내며, 이들의 상호 연결성과 상호 강화 효과를 강조한다.

상호 연결의 예시: 자신의 경험과 관점에 대한 성찰적 글쓰기는 창의적 글쓰기를 위한 풍부한 소재를 제공하는 동시에, 분석적 글쓰기를 통해 검토해야 할 가정과 편견을 표면 위로 드러낸다. 타인의 아이디어와 교류하는 대화적 글쓰기는 작가의 기존 관점에 도전하여 추가적인 성찰적 글쓰기와 수정된 분석적 글쓰기를 유도한다. 또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한다.


4.2. 선순환과 확장된 인지 (Expansive Cognition)

서로 다른 글쓰기 모드 간의 상호작용은 통찰을 심화하고 가능성을 확장하는 선순환(virtuous cycle)을 만들어낸다.

확장된 인지: 통합적 글쓰기 관행은 '확장된 인지'를 발생시킨다. 이는 작가가 더 개방적이고 호기심 많으며 공감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 더 온전하게 실현된 자아(fully realized self)를 형성하게 한다.


4.3. AI 시대에서의 가치

통합적 글쓰기를 통해 확장된 인지에 도달하는 것은 AI 시대에 글쓰기가 여전히 가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필수적인 기술: AI 도구로 인해 글쓰기가 쓸모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이 점차 더 많이 형성해 가는 세상에서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고차원적 사고 기술과 자기 인식을 개발하는 수단으로써 글쓰기는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된다.



5. 통합적 글쓰기가 일어나는 곳 (Where integrative writing happens)


5.1. 학교 교육의 한계

현재 학교는 학생들이 내재적으로 의미 있는 목적을 위해 네 가지 형태의 글쓰기에 참여하거나, 이를 통합하여 확장된 인지를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교육 과정의 현실: 교사들은 개인적 발달을 위한 글쓰기의 중요성을 언급하지만, 실제 과제는 주로 설명문 에세이에 집중되며 여러 글쓰기 형태를 통합하는 경우는 드물다.

구조적 제약: 현재의 커리큘럼과 평가 시스템 안에서는 교사들이 통합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 있다.


5.2. 학교 밖 학습 시스템: 친화 공간 (Affinity Spaces)

통합적 글쓰기의 비전은 이미 학교 밖 학습 시스템인 '친화 공간'에 존재한다. 친화 공간은 디지털 또는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모여 지식, 기술, 미디어를 함께 생산하는 곳이다.

심즈(The Sims) 사례: 비디오 게임 '심즈' 커뮤니티는 대표적인 친화 공간이다. 플레이어들은 단순히 게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로서 참여한다. 이들은 웹사이트, 소셜 미디어 등에서 상호작용하며 설명적(게임 가이드), 논증적(토론), 창의적(팬픽션), 대화적(포럼), 성찰적(일지) 글쓰기뿐만 아니라 아트, 비디오 제작, 코딩 등 다양한 매체 생산 활동을 통합적으로 수행한다.

학습 동기: 사람들은 가구 만들기 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이 공간에 들어오지만,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배우는 과정에서 관심이 열정으로 발전한다.


5.3. 학교 도입의 도전 과제

팬 기반 친화 공간의 풍부하고 다중적이며 참여적인 관행을 학교로 가져오려는 시도는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제도적 장벽: 표준화, 진도 나가기(coverage) 중심의 교육, 개별화 수업의 부족, 연령별 등급 나누기 등이 걸림돌이 된다.

역할의 변화: 친화 공간과 같은 자율성을 부여하려면 교사의 역할이 지시자에서 촉진자(facilitator)로 변화해야 하지만, 학생마다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교실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문화적 딜레마: 친화 공간은 청소년들의 문화에 속해 있으므로, 이를 학교에 도입할 때 그들의 문화를 식민화하거나 도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현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6. 무엇이 '올바른 방법'인가? (What is the ‘right way’?)


LLM과 생성형 AI를 글쓰기 수업에 통합하는 것은 교실을 '친화 공간'과 유사하게 만들 수 있는 유망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 교사에게 AI는 파트너이자 동료가 되어야 하며, 학생에게는 처음에는 튜터이자 보조 교사로, 나중에는 글쓰기 파트너이자 동료가 되어야 한다. 인간과 AI가 서로의 기술이나 삶을 축소시키지 않고 함께 똑똑해지기 위해서는 상호작용 방식을 올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6.1. AI와 주고받기 (Go back and forth with AI)

단순히 LLM을 이용해 텍스트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AI가 글쓰기, 검토, 수정을 반복하는 '주고받는(back-and-forth)'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주도권과 역할 분담: 인간은 목표, 프롬프트, 방향, 피드백을 제공하며 주도적으로 이끌고, AI는 아이디어, 초안, 제안을 기여한다. 이러한 반복적인 협업은 인간과 기계의 관점을 깊이 있게 융합한다.

강점 활용:
. 인간: 구체적인 삶의 경험, 목표와 욕망, 감정과 정서, 사회적·문화적 정체성을 파트너십에 가져온다.
. AI: 방대한 배경지식, 빠른 아이디어 생성, 깊은 패턴 인식 기술을 제공한다.

과정에 대한 성찰: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성찰해야 한다. 인간과 AI가 사고 과정, 가정, 학습 내용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서로의 인지 방식과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선택과 합성: 학생은 AI가 빠르게 생성한 여러 초안과 아이디어를 큐레이션 하고 종합하며, 이를 원재료로 삼아 창의적으로 재조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와 연결을 만들어낸다.


6.2. 유연한 언어 찾기 (Look for flexible language)

학교에서 LLM을 사용할 때 가장 큰 우려는 학생들이 AI에게 글쓰기를 전적으로 맡겨버리는 표절 문제이다. 학생이 AI와의 상호작용에서 진정한 파트너로서 주도권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이 렘크(Jay Lemke)의 '유연한 언어' 개념을 활용할 수 있다.

동결된 언어 (Frozen language): 과학 교과서나 공식 문서에서 사용되는 표준화되고 변화가 느린 용어. 기술적이고 정밀하지만, 공식적인 전달 수단으로 여겨져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유연한 언어 (Flexible language): 학생이나 과학자가 비공식적인 환경에서 아이디어를 탐구할 때 사용하는 대화체 언어. 역동적이며 개인적인 해석과 창의성을 허용하고 의미 협상을 가능하게 한다.

평가 지표로서의 언어: 렘크는 무언가를 "자신의 말(own words)"로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생이 '유연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는 AI에게 일을 떠넘긴 것이 아니라 AI를 파트너로 삼아 사고와 글쓰기를 향상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학교의 모순: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과제는 종종 생성형 AI가 산출하기 쉬운 '동결된 언어'를 요구한다. 이는 학생들의 깊은 이해와 비판적 사고를 저해할 수 있다.


6.3. 탐구를 위한 시간과 공간 (Time and space for exploration)

학교는 모든 학생이 동일한 출발점에서 시작해 정해진 시간에 끝마치는 평가 방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학습 속도의 개인차와 탐구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개별화된 속도: 학습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결국 더 깊은 지식과 탄탄한 기술을 갖출 수도 있다. '뒤쳐진' 상태로 시작한 사람이 '앞선' 사람보다 더 많은 진전을 이룰 수도 있다.

AI 파트너십의 활용: 생성형 AI와의 파트너십은 각 학생과 소그룹에게 튜터이자 공동 교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간이나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성취(achievement)에 기반한 개별화된 수업이 가능해진다.

궁극적 목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타인으로부터 배우고 가르치며 협력적 문제 해결에 적합한 공유 지식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