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정서 훈련 가이드
오래간만에 다시 돌아온 정서 이야기.
숨 가쁘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업무적으로 AI가 어떻고 조직이 어떻게 혁신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지만, 돌고 돌아 결국 시선이 머무는 곳은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람답고, 그래서 가장 다루기 힘든 영역인 '마음'에 대한 관심은 어쩔 수 없는 본능과도 같다.
정서는 외부 자극에 대한 수동적인 반응일 수 있으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마음은 내버려 두면 제멋대로 흐르지만, 임상심리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개입하고 인지적인 시도를 더한다면 상황과 목적에 맞게 다룰 수 있는 조절의 영역이기도 하다. 정서에 관한 오늘의 배움을 개인과 조직, 그리고 삶의 활력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개인의 관점에서 정서 조절은 훈련해야 할 기술이다. 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떼거나 기울이는 인지적 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마치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듯, 일상에서 꾸준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통해 가능해진다.
둘째, 조직의 관점에서는 우리 조직 안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정서를 인정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건강한 조직이란 구성원들이 기계처럼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불안이나 좌절 혹은 기쁨과 같은 다양한 정서들이 흐르고 있음을 직시하는 곳이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라고 묻기보다 "우리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라며 그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는 노력이 심리적 안전감을 만든다.
셋째, 조직의 활력을 위해서는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음의 빈곤은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즐거울 일이 없어서 찾아오기도 한다. 따라서 조직의 리더라면,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HR의 접근에는 단순히 고통을 덜어내려는 노력을 넘어,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긍정적 에너지를 높이려는 '업 레귤레이션(Up-regulation)'의 시도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AI는 계산하지만 사람은 느낀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시시각각 변하고 때로는 불합리해 보이는 이 마음의 역동성만큼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이 공부가, 결국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돌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마음은 여전히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이해도 쉽지 않지만, 그래서 마음과 조금 더 잘 지낼 수 있는 여러 방법들에 여전히 끌림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흔히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이 말처럼 무력하게 들리는 조언도 드물다. 우울하고 싶어서 우울한 사람은 없으며, 불안하고 싶어서 불안에 떠는 사람도 없다.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상을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의 어려움'이라는 연구 질문으로 치환하여 탐구한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가 막연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 즉 '정서(Emotion)'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우리 안에 존재하는지 그 본질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
정서의 재정의: 감정, 신체, 행동의 복합체
우리는 흔히 정서를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주관적인 '느낌(Feeling)'이나 '기분'으로만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정서는 훨씬 더 복합적이고 전방위적인 반응 시스템이다. 정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통합된 상태로 정의된다.
주관적 감정: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심리적 상태.
신체적 반응 (Physiological Response): 감정이 격할 때 나타나는 목소리 떨림, 심박수 증가, 얼굴 붉어짐, 머리가 하얗게 되는 현상 등의 생리적 변화.
행동 경향성 (Behavioral Tendency): 무서운 대상(예: 호랑이)을 만났을 때 얼어붙거나 도망치려 하는 것과 같은 즉각적인 행동 충동.
즉, 정서는 뇌와 신체, 그리고 행동이 동시에 작동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이다. 따라서 마음을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렵다는 호소는 단순히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과 뇌에 깊이 각인된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반응 체계와 싸우고 있다는 뜻이다.
불편함의 이유: 정서의 기능주의적 관점
그렇다면 인류는 왜 이토록 다루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정서, 특히 우울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진화 과정에서 버리지 않고 간직해 온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느끼는 죽을 것 같은 슬픔이나,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잠 못 이루게 하는 불안은 언뜻 보기에 우리 삶을 방해하는 '역기능'적인 요소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능주의적 관점(Functionalism)'에서 보면 정서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정서가 아무리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류에게 남아있는 이유는 생존과 적응에 반드시 필요한 고유한 '기능(Function)'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의 기능: 우울은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내면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비록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기능적으로 보았을 때 이는 과도한 에너지 소모를 막고 자신의 상태와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에너지 보존'과 '성찰'의 역할을 수행한다.
불안의 기능: 불안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강력한 레이더 역할을 한다.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은 직장인이 느끼는 불안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게 하고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시켜 준비를 돕는다.
결국, 정서라는 것은 때로는 불편하고 역기능적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생존의 도구들이다.
마음을 다루는 새로운 태도: 증상 제거에서 '조절'로
정서가 생존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필수적인 반응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목표는 애초에 불가능할뿐더러 위험한 발상이다. 마음을 다루는 핵심은 정서의 발생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정서를 상황과 목적에 맞게 다루는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의 능력에 있다.
정서 발생 (Generation): 우울하거나 불안한 상황에서 해당 정서를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증 환자나 건강한 사람이나 슬픈 상황에서 슬픔을 느끼는 것은 매한가지다.
정서 조절 (Regulation): 중요한 것은 발생한 정서를 얼마나 유연하게 다루느냐이다. 상황이 종료되었음에도 감정을 2주 이상 지속하거나(우울 장애), 필요 이상으로 증폭시키는 등 조절에 실패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서 조절의 곤란은 우울증뿐만 아니라 불안장애, 중독 등 대부분의 정신장애를 관통하는 '트랜스 진단적(Trans-diagnostic)' 요인이다. 결국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고민에 대한 해답은 내 안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없애려는 싸움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된다. 대신 우리는 내 안의 정서가 보내는 신호를 읽고, 그 에너지가 나를 삼키지 않도록 상황과 목적에 맞게 유연하게 조율하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미 발생한 불편한 감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은 단순히 감정을 참거나 터뜨리는 이분법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상황(Context)과 나의 목적(Goal)에 맞게 감정의 강도나 지속 시간을 조율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정서 조절 전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전략은 우리를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기도 하고, 어떤 전략은 회복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대처 방식의 명암을 분석하고, 심리학적으로 검증된 적응적인 조절 기술들을 살펴본다.
일반적 대처 방식의 함정: 회피와 반추
사람들이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 가장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전략은 '도망'이다. 우울하기 싫고 불안하기 싫어서 감정을 꾹 누르거나(억제), 다른 일에 몰두하며 애써 외면하는(주의 분산)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감정의 원인은 그대로 남아있기에 결국 감정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각으로 도망가는' 방식들이다.
반추 (Rumination): 주로 우울할 때 나타난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과거의 실수나 고통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한다.
걱정 (Worry): 주로 불안할 때 나타난다. "만약 ~하면 어떡하지(What if)?"라는 질문을 던지며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끊임없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다.
흥미로운 점은 반추와 걱정 모두 당사자에게는 나름의 '문제 해결 시도'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결책을 찾기보다 부정적인 생각의 굴레에 갇히게 만들어,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역기능적 결과를 낳는다.
인지적 재해석 (Reappraisal): 관점을 바꿔 감정의 온도를 낮추기
서구 심리학에서 가장 효과적인 정서 조절 전략 중 하나로 꼽는 것이 바로 '인지적 재해석'이다. 이는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그 상황을 바라보는 '해석'을 바꿈으로써 감정 반응을 변화시키는 기술이다. "물병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를 "반이나 남았네"로 바꾸는 고전적인 예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핵심은 긍정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해석'을 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나를 무시해서 일부러 그런다"라고 해석하면 분노는 100까지 치솟는다. 하지만 "아직 몰라서 실수한 것일 수도 있다"라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면 분노는 60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 재해석은 감정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압도되지 않고 상황을 다룰 수 있는 수준으로 감정의 강도를 낮춰준다.
수용 (Acceptance):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힘
한국적 맥락이나 최근의 심리치료 동향(제3동향)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전략은 '수용'이다. 수용이란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현재 느껴지는 감정을 비판단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태도다.
엘리베이터에서 겁을 먹은 아이에게 "무서워할 것 없어, 하나도 안 무서워"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반응은 "네가 지금 많이 무섭구나"라는 인정이다. 성인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불안이나 우울에 대해 "왜 이런 걸 느끼지? 바보같이"라고 비난하는 대신, "내가 지금 많이 불안하구나, 그럴 수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 이 '타당화(Validation)'의 과정이 역설적으로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거리를 두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조절 기제가 된다.
행동 활성화와 긍정 정서의 업-레귤레이션 (Up-regulation)
우울은 단순히 슬픔이 많은 상태(부정 정서의 과잉) 일 수도 있지만, 즐거움이나 흥미가 전혀 없는 상태(긍정 정서의 결핍, 무의욕증) 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꺼져버린 긍정적 정서의 불씨를 살리는 '업-레귤레이션(Up-regulation)'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다. 의욕이 없어도 일단 몸을 움직여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하거나, 작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을 의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생각이나 기분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행동을 함으로써,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하고 삶의 활력을 되찾는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건강한 정서 조절이란 이 모든 도구들을 상황에 맞게 꺼내 쓰는 능력이다. 억누르기만 하거나 걱정으로 도망가는 대신, 상황을 달리 해석해 보고, 힘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몸을 움직여 활력을 만드는 것. 이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을 유연하게 운전하는 기술이다.
"우울할 때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조언이 왜 우울증 환자에게는 통하지 않을까? 그것은 단순히 그들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정서 조절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한다면, 아무리 운전자가 핸들을 꺾으려 해도(의지), 차의 조향 장치(뇌 기능)가 고장 나 있다면 방향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들은 정서 조절의 실패가 마음의 태도 문제 이전에, 뇌의 '인지적 통제(Cognitive Control)' 능력의 저하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정서 조절의 핵심 엔진: 인지적 통제
우리가 원치 않는 감정에서 빠져나오거나 상황을 재해석하려면, 뇌는 상당한 에너지를 써서 정보 처리 과정을 통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지적 통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바로 '주의(Attention)'다.
주의는 외부 정보가 우리 마음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관문이다. 건강한 정서 조절은 나에게 해로운 정보(부정적 자극)에서는 주의를 거두고, 도움이 되는 정보(긍정적 자극, 목표)로 주의를 돌리는 '주의 자원 할당'이 유연하게 일어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우울이나 불안이 심해지면 이 조절 장치가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뇌파(ERP) 연구가 보여주는 통제의 실패
뇌파(ERP) 실험 결과는 우울한 사람들의 인지적 통제 결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지시된 망각(Directed Forgetting) 실험: "이 단어는 기억해", "이 단어는 잊어버려"라고 지시했을 때,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은 잊어버려야 할 부정적 단어를 처리할 때 뇌에서 훨씬 더 많은 통제 자원(주의)을 사용한다. 즉, 상황에 맞게 뇌를 능동적으로 작동시킨다. 반면, 우울한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때나 잊어야 할 때나, 긍정 단어나 부정 단어나 뇌파의 반응에 별 차이가 없다. 이를 '공평한 처리(Even-handed Processing)'라고 하는데, 상황과 목적에 맞게 인지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모든 자극을 무기력하게 똑같이 처리한다는 뜻이다.
자살 관련 자극과 주의의 끈끈함: 자살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Spatial Cueing Task)에서는 더 심각한 주의 통제 오류가 발견된다. '자살'과 관련된 단어가 나타났을 때, 그곳에서 주의를 떼어내어 다른 곳을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현저히 길어진다. 주의가 부정적 자극에 마치 자석처럼 달라붙어(Sticky Attention), 의도적으로 '주의를 떼어내는(Disengage)'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결국 우울한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반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 생각을 안 하고 싶어도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 '인지적 근육'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근력 운동: 마음 챙김(Mindfulness)과 주의 훈련
망가진 조향 장치는 수리가 필요하다. 최근 심리학계가 '마음 챙김(Mindfulness)'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휴식이나 이완 요법이 아니라, 인지적 통제력을 강화하는 '주의 훈련(Attention Training)'이기 때문이다.
마음 챙김은 크게 두 가지 훈련을 통해 정서 조절의 엔진을 강화한다.
집중 명상 (호흡 명상): 호흡에 집중하다가 마음이 딴생각으로 흘러갔을 때, 이를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으로 주의를 '되가져오는' 연습이다. 이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주의를 내가 원하는 곳(현재)으로 의도적으로 가져오는 '주의 제어' 능력을 직접적으로 훈련한다.
개방 명상: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비판단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다. 이는 특정 자극에 매몰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수용적 태도'를 기르게 한다.
연구 결과, 이러한 마음 챙김 훈련은 특히 부정적인 자극에서 주의를 '떼어내는(Disengage)' 능력을 유의미하게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마음 챙김은 반추의 늪에 빠졌을 때 스스로 밧줄을 잡고 빠져나올 수 있는 뇌의 기초 체력을 길러주는 과정이다.
정서 조절은 저절로 얻어지는 성격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다. 우리가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듯, 마음의 주의력을 훈련할 때 비로소 우리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흔히 병원에서 "지난 한 주 동안 기분이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커다란 맹점이 있다. 우리의 기억은 부정확하며, 가장 강렬했던 순간이나 최근의 기분에 의해 편향되기 쉽기 때문이다. 정서는 사진처럼 고정된 장면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며 흐르는 영화와 같다.
따라서 정서 조절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는 '평균적인 기분'을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서가 어떻게 변하는지(Dynamics), 그리고 그 정서를 경험하는 주체인 '나(Self)'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태도로 확장되어야 한다.
정서의 역동성: 흐르지 않는 마음은 병이 된다
건강한 심리 상태란 무엇일까? 흔히 긍정적인 기분만 계속되는 상태를 떠올리지만, 연구 결과는 다르다. 건강한 사람의 마음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외부 자극에 따라 기분이 적절히 오르내리며 유연하게 반응한다. 반면, 우울이나 심리적 부적응의 핵심 특징은 '정서적 관성(Emotional Inertia)'에 있다.
정서적 관성(Inertia): 물리학의 관성처럼, 한번 부정적인 기분에 빠지면 그 상태가 다음 순간, 그다음 순간까지 끈질기게 이어지는 현상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기분의 변동 폭이 커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감정이 늪처럼 고여서 흘러가지 않는 경직성을 보인다.
질 나쁜 변동성(Spin): 감정이 변하더라도, 건강한 변동(긍정적 범위 내에서의 활력 변화)이 아니라 분노에서 우울로, 우울에서 불안으로 급격하게 오가는 질적으로 불안정한 변동성을 보인다.
따라서 정서 조절의 목표는 무조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꽉 막힌 정서의 흐름을 뚫어주어 마음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움직이도록(Flexibility) 회복시키는 데 있다.
자아를 대하는 태도: 명확함보다 중요한 것은 '친절함'
정서를 조절하는 주체는 결국 '나(Self)'이다. 심리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자기 개념 명확성(Self-Concept Clarity)', 즉 나에 대해 분명하게 아는 것을 정신 건강의 척도로 여겼다. 하지만 우울한 사람에게도 이것이 적용될까?
놀랍게도 연구 결과, 우울증이 심한 상태에서 자기 개념이 명확한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나는 실패자다"라는 부정적인 확신만 공고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울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겪을 때 필요한 것은 냉철한 자기 분석이 아니라,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이다.
자기 연민은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힘든 친구를 대하듯 나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다.
자기 친절(Self-kindness):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를 비난하는 대신, "많이 힘들구나"라고 위로하는 것.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 이 고통이 나만의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 경험임을 아는 것.
나를 선명하게 정의하려 하기보다, 나에게 친절해지는 연습이 정서 조절의 가장 강력한 안전판이 된다.
일상으로의 확장: 마음을 돌보는 3단계 시스템
마음은 실험실이 아닌 일상에서 무너지고, 또 일상에서 회복된다. 따라서 진정한 정서 조절은 병원 치료실을 넘어 매 순간의 삶으로 들어와야 한다. 최근 연구들은 개인의 일상 속 정서 패턴을 추적하여, 상태의 심각도에 따라 '초개인화(Hyper-personalized)'된 3단계 개입을 제안한다.
1단계: 마인드 짐 (Mind Gym)
대상: 특별한 정서적 문제는 없지만, 마음 근력을 키우고 싶은 상태.
내용: 평소에 체육관(Gym)에 가서 운동하듯,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수용하는 기초 훈련을 반복한다. 일상적인 마음 단련을 통해 정서 조절의 기초 체력을 기른다.
2단계: 마인드 케어 (Mind Care)
대상: 질병(Disorder)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스트레스가 극심하거나 우울, 불안, 걱정이 높아져 도움이 필요한 상태.
내용: 단순히 지켜보는 것을 넘어, 각 증상에 맞는 구체적인 전략을 적용한다. 스트레스 상황에 맞는 대처법이나 불안을 낮추는 이완 훈련 등 실질적인 '케어'를 제공하여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는다.
3단계: 마인드 119 (Mind 119)
대상: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한 응급 상황 혹은 위기의 전조가 보이는 상태.
내용: 일상 데이터(수면, 활동량 등)가 개인의 고유한 기준선(Baseline)을 급격히 벗어날 때, 위기가 닥치기 전에 빠르게 감지하여 개입한다. "숨 막혀서 죽을 것 같은" 순간에 즉각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응급 시스템이다.
결국 정서 조절의 완성은 나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흐름을 이해하고, 나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며, 매일의 일상에서 내 상태에 맞는 단계별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음은 여전히 내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 마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