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ria Jun 17. 2024

초여름의 아리고 아름다운 순간에.

F. Schubert | D. 839, Op. 52, No. 6



오뉴월이 되면 매일 걷던 길 위로 싱그러운 초록잎이 무성하게 드리워지고, 나무줄기 또는 어딘가에서 고소한 아몬드 향기가 실바람을 타고 둥실둥실 은은하게 밀려와 온 주변을 맴돌며, 샛노란 레몬빛 햇살이 건물 외벽 위로, 내 머리 위로, 초록잎 위로 내려앉아 뜨겁게 키스한다. 초여름 고유의 향기와 빛깔은 정말이지 사람을 일분일초 매 순간 들뜨고 행복하게 한다.



오늘은 무슨 일이라도 났는지 아침 내내 창 밖에서 참새가 쉴 새 없이 짹짹 지저귄다. 날씨가 좋아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더니 집 안에 틀어놓은 음악 소리 위로 새의 지저귐 소리가 마치 코러스처럼 덧입혀진다. 식탁 위로 흐르다 못해 콸콸 쏟아지듯 마구 뒤덮이는 햇살이 마치 저 합창단을 위해 밝혀진 무대 조명 같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곡이자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꼭 찾아 듣는 곡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아베 마리아(Ave Maria)’이다. 심리적인 진통제가 필요할 때 상비약 보관함에서 타이레놀을 꺼내듯 불러내는 곡이기에, 혹여나 여타 약들과 마찬가지로 내성이 생기기라도 할까 봐 염려되어 꼭꼭 숨겨놓고 아껴듣는 곡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듣고 또 들으며 흠뻑 취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먼지라도 탈까 봐, 빛바래기라도 할까 봐 보석함에 숨겨두고 가끔씩 몰래 꺼내어 보는 애물과 같은 존재랄까.



사실 지난주에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조금 있었기에 그로 인한 심리적 불안 상태를 가라앉히고자 오랜만에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소환하게 되었는데, 불안의 크기가 크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이 곡이 워낙 아름답고 숭고한 덕분이었는지, 듣자마자 불안은 곧바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간만에 꺼내든 이 애물의 아름다움에 새삼스레 감동받은 나는 의도와 무관하게 며칠이 지나도록 여전히 계속해서 이 애물을 꺼내어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이 아름답고 숭고한 아베 마리아의 선율 위로 참새의 화음이 덧입혀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천국에서 맞는 아침은 바로 이러한 형태가 아닐까 싶은 정경이었다.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무종교인이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3대 아베 마리아(성모송) 중 하나로 불릴 만큼 유명한 작품이지만, 사실 성가곡을 염두에 두고 쓰인 것은 아니고 월터 스콧(Walter Scott)의 서사시 <호수의 연인>을 가사로 한 가곡 연작 중 여섯 번째 곡에 해당하며, 서사시 중에서 호수의 연인 엘렌이 성모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3대 성모송으로 손꼽히는 곡이지만 실제 미사에서 성가곡으로 쓰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비종교인인 나에게도 이 곡이 부담 없이, 담백하게 숭고함만을 전해주는 것인가 싶다. 이 곡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의 모든 불안 및 불화가 따뜻한 햇살에 의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어떠한 삶의 장애물도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형상이라고나 할까. 슈베르트가 평생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끊임없이 세상에 내보였던, 그리하여 후대의 우리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이토록 맑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음악들처럼 말이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노래하는 Schubert Ave Maria 유튜브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이 노래 장면에 얽힌 사연이 이 노래의 감동을 배가시키는데, 아버지의 장례식날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진행된 그녀의 파리에서의 독창회에서 아버지께 헌정하는 마음으로 부른 곡이기 때문이다. ♩


Schubert의 Ave Maria 연주 중 내가 좋아하는 Gautier Capuçon 첼로 버전의 유튜브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



<내 마음의 바다> by 오병욱(20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