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온 건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선택했어
주기적으로 터지는 독일생활 권태기. 전문용어로는 독태기.
여김 없이 화살은 남편으로 향한다.
'그러길래 왜 해외 나오겠다는 힘든 선택을 한 거야?'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사실 독일로 나오기로 결정했을 때 남편보다 더 설레했던 건 나였다.
때는 바야흐로 2020년 가을, 한창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전 세계 연구실들이 예산을 줄이고 신규인력 채용을 중단하면서
처음에는 미국에만 지원했던 남편이 독일로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아기도 생기게 되었다.
"렌트비가 미국보다 독일이 훨씬 더 저렴하네, 총기소지도 불법이고"
"독일은 건강보험이 잘 되어있어서 병원비가 거의 안 든다네"
"동반비자로도 일을 할 수 있대! 대학원 학비도 무료이고 말이야!"
원래 선택지에는 없던 옵션이라 그런지 독일의 장점에 더 솔깃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과 독일, 양국의 연구실에서 제안을 받았지만
아기를 키우게 될 우리 입장에서 삶의 질이 독일에서 더 낫겠다 싶었고
배우자인 나의 앞 날까지 응원해 주는 이 나라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남편도 나도 큰 고민 없이 독일행을 선택했다.
(심지어 미국은 아이비리그였다!)
독일행 비행기에서 나는 뱃속 아가와 함께 꿈나래를 잔뜩 펼쳤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새로 시작해 볼까?'
'몇 년 살면 독일어는 당연히 잘하게 되겠지? 와 그럼 우리 아이는 이중언어 구사자 되는 거네?'
'요즘 케이팝이 대세라던데, 거기서 한국 관련 사업을 해볼까?'
'독일 주방용품 워낙 유명하잖아. 구매대행도 해봐야겠어'
끊임없이 떠오르는 꿈과 희망으로 머릿속은 이미 꽃밭이었다.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난 지금, 나의 독일살이는?
다행히 그 꿈이 와장창 깨지진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은 직접 실행으로 옮겨보았고,
그 경험을 통해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꿈을 새로 꾸게 되었다.
또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행복과 감사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에 봉착하며 좌절도 해보고
상상을 초월하는 어이없는 일들로 해탈과 해탈을 반복하다 실성하는 경험도 하는 중이다.
애초에 이민을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면 어떻게든 나 자신을 이곳에 적응시키는데 집중했을 텐데,
남은 여생을 이곳에서 살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돌아간다면 언제쯤 돌아갈지,
나와 남편이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이다 보니 그만큼 생각이 더 복잡해지기도 한다.
'그냥 다 정리하고 한국 돌아가자. 아님 나랑 애만 먼저 들어갈게. 도저히 못해먹겠다.' 싶다가도
'나, 독일에서 조금 더 많이, 오래 살고 싶어. 여기서 못해본 게 너무 많아. 아직 미련이 남아.'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이 마음.
까짓 거 그렇게 힘들면 그냥 한국 돌아가면 되지,
왜 그 지독한 독태기를 꾸역꾸역 이겨내려고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싶어 지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었으면 독일에 정 붙이고 살 것이지
왜 또 자꾸 독태기가 왔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남편한테 눈 한 번 흘기곤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걸까?
애증의 해외살이,
지난 몇 년간 나의 경험들을 다시 돌아보고 재해석해보며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