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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면 괜찮아질까

이런 일 저런 일

by 온호

오랫동안 주일이라고 부르던 일요일에는 주로 방 정리나 분리배출, 규모 있는 빨래를 하는 편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거기에 더해 옷장과 싱크장, 팬트리(용도로 쓰는 수납장)를 정리했다. 계절이 바뀌면서 입는 옷이 바꼈고, 그래서 옷장에서 옷을 꺼내면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상태가 며칠째 계속 됐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오래 겪기 전에 옷장에 손을 댔다. 그랬더니 싱크장이나 팬트리까지 같이 싹 정리하게 됐다. '무언가를 할 필요'를 의식하는 일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굉장히 개운해졌다.


사람 일도 이렇다면 좋을 텐데. '무언가를 할 필요'를 느꼈으면서도 여러 가지 관계성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나서지 않은 것은 관계성을 비롯한 다른 그럴듯한 표면의식들 때문도 있었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무시하기도 하고 영적 우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괜히 반대 주장을 해서 심기 거스리기도 싫었고 단순히 귀찮기도 했다. 또, 가만히 있어도 적당히 지나갈 줄 알았다.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고 뜻밖의 커다란 갈등 구도가 생겼다. 그 과정에서 핵심 당사자들이 자기 비하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나고 슬펐다. 자기 비하는 다른 사람들을 못 믿기 때문에 하는 거고 아직도 여전히 그런 사람들을 새로운 장소에서도 만나게 되는 게 짜증 나고 슬펐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일로 왜 그렇게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자기를 탓하고, 불편해하고, 감정적으로도 힘든 상황을 겪어야 하는지. 눈빛, 낯빛들이 다들 너무 어두웠다.


문제의 핵심은 분명하고, 그걸 알고 있는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아마 비슷한 이유로 다들 나서서 분명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입장을 바꾸려는 사람은 없이 각자 저 할 말만 반복하는 악순환으로 흘러가면서 상처가 늘어갔다. 결국 나는 주말 동안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말들을 사람들 앞에서 하고야 말았다. 상황에 대한 교정 욕구로 할 말을 미리 연습하고 정리해 둔 것이다. 진짜로 그런 상황이 올 지는 몰랐기 때문에 실제로 말을 하기까지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낸 것이 무색하게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다가는 특정 대목에서 갑자기 울컥해서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무언가를 할 필요'를 느끼던 것은 그렇게 해소가 되었다. 그런데 정리처럼 개운하지가 않다. 내가 그렇게 했어도 됐을까, 내 진심은 뭘까,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나는 역할 연기를 한 걸까. 결국 내가 짜증을 느낀 부분이 내 안에서 그대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오늘 아침엔 샤워하면서 "아니야 잘했어"하고 말해주기까지 했지만 생각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람 일은 옷장처럼 정리될 리가 없는데. 필요를 느낀 일을 하고도 개운함을 얻지는 못하고 오히려 다른 감정이 생겨버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말하지 않았을 때 남았을 무언가는 해소를 했다. 이렇게 결정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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