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74번째 글
기지개 센터(2024년 서울시 은둔고립청년 지원사업 전담센터)에서 한강 수상스포츠 체험을 시켜주셨습니다. 작년에 알게 된 청년분들과 날짜를 골라 맞춰서 함께 놀았습니다. 장마 기간이라 비가 올까 걱정하시는 청년 분들이 계셨지만 왠지 모르게 저는 비가 안 올 거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었는데, 당일에 정말 비가 오지 않아서 쾌적하게 활동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날씨 요정 덕분이었던 것은 조금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센터에서 역시나 이번에도 굉장히 상세하게 설명해서 보내주신 "찾아오는 길"을 보면서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첫 시도나 초행길에서 순조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경우에는 자신의 노력보다는 운의 은혜가 큰 것 같은데, 이번 경우에는 그 둘 다 아닌 다른 이의 배려라는 것으로 순조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장소에 도착하니 언제나처럼 출석부가 놓인 책상 앞에서 센터의 복지사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청년 한 분이 먼저 와 계셔서 그 분과 한강을 보면서 잠깐 대화를 나눴습니다. 유독 청년분들을 만날 때 더욱 많이 웃게 되는 제 모습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때 굉장히 운동을 많이 하실 것 같은(크로스핏을 즐길 것만 같은 느낌의) 여성분이 오른편에서 걸어오는 게 눈에 띄었는데 그 분과 나중에 한 배를 타게 된 것도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청년분들이 속속 도착하셔서 모두 모여서 자리를 잡고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다 복지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저희가 A조인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저희 조의 첫 체험 순서는 첫 번째가 요트였습니다. 요트를 두 개로 나눠 타는 과정에서 저는 함께 온 청년 중 한 분하고만 같이 타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자리에는 2024년에 사업에 새롭게 참여하신 세 분이 계셨는데, 그래서 그분들과 나름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아까 봤던 운동을 많이 할 것 같은 분도 계셨고, 나중에 알게 된 점으로 이름이 특이하신 분, 그리고 붙임성이 좋으신 분이 계셨습니다. "한 배를 탄 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기우는 배 위에서 서로 의지해서 버티다 보니 초면임에도 꽤 깊은 교감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지원 사업에는 원예활동 같은 것보다는 '함께 해야만 하는' 이런 활동이 늘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요트를 타면서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고, 읽을 수 있는 강사분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한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경험했는지에 따라 다른 버전의 세계를 살아가는 점은 언제나 신기하고 재밌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나라는 인간으로 한 번밖에 이 지구를 살아보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를 파지 못하고, 관심이 이리저리 메뚜기마냥 옮겨 다니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트가 가장 재밌었어서 요트 이야기만 길게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이리저리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대편으로 옮겨 타는 과정에서 엉덩이를 놓아야 할 부분에 구조물이 튀어나와 있어 똑바로 앉지 못했습니다. 자세가 어정쩡했던 바람에 물에 빠질 뻔했는데 양쪽으로 서로 팔짱을 끼고 있던 덕에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지만 엉덩이가 빠졌습니다. 엉덩이가 한강물에 가볍게 적셔지고 있는 와중에도 왼팔 쪽에서 느껴지는 운동을 많이 할 것 같은 분의 강한 팔뚝 힘에 저는 태평하게 '아, 역시 운동 많이 하시나 보네.'같은 생각이나 했습니다. 제가 빠진 김에 강사님이 배를 기울여 다른 분들도 빠지게 하셨는데 요트를 기울인 상태에서 등을 물에 담그고 둥둥 떠서 가는 것이 정말 재밌었습니다. 자유롭고 행복하고. 또 강사님이 이름이 귀여우면서도 조금 특이한 청년 분의 핸드폰으로 저희들의 인증샷을 찍어주신 덕분에 사진 공유용으로 오픈채팅방도 만들고 거기서 대화도 조금 나누게 된 것에 대해서 참 감사했습니다. 레크리에이션 진행까지 해주신 셈이었습니다.
다음 순서인 패들보드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강사님이 안전상의 이유로 서서 타지 못하게 했습니다. 서서 타보려고 일어나려는데 "일어나지 마세요!!"하고 멀리서 소리치시길래 시무룩하게 다시 앉았습니다. 빠질 때 빠지더라도 서보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수상 자전거는 날씨요정이랑 같이 탔습니다. 날씨 요정을 앞자리에 모시고 강 한복판에서 떠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습니다. 편안한 일상적인 이야기들, 꽤나 진지한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상황의 도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휴양지에 온 느낌이라든지, 수상 자전거라는 분리된 공간, 강물을 수놓은 윤슬 같은 것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편안하게 카타마란 요트라는 것을 타면서 신선놀음을 했습니다. 날이 점점 흐려져 석양을 볼 수 없는 것은 아쉬웠지만 가끔 물 밖에서만 보던 한강을 물 위에서 즐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일정이 끝나고 청년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신 복지사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에 이름이 귀여운 별명 같았던 분이 계셔서 함께 저녁을 먹자 하여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불편해서 마다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흔쾌히 합류하셨습니다. 이 분과는 소속 팀은 다르지만 앞으로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다시 보게 될 일이 있다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 날은 또 한편, 예전보다 자주 보지 못해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청년분들이 계시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야외 활동을 함께 한 덕분인지 헤어질 때쯤에는 전처럼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좋잖아.' 하는 마음은 전해진다고 믿는 편입니다. 이렇게 벌어졌다 다시 가까워졌다,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기도 하면서 평범하게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 서울특별시체육회에서 1만 원으로 네 가지 활동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 중입니다. 활동 자체도 재밌지만 강사분들이 굉장히 친절하셔서 더욱 좋았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링크를 통해 신청해 보시기 바랍니다. )
토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시흥능곡역으로 향했습니다. 작년에 고립은둔지원사업을 함께 했던 시흥 사는 청년 집에서 1박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 중에는 '멀리서 오시는데"하시며 흔쾌히 1박을 제안해 주셔서 놀라기도 했고 굉장히 감사했습니다.
들어가는 길에 닭강정을 사가려고 했더니 귀가를 같이 하게 되어서 오히려 에스코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닭강정 집을 몇 군데 알아보시고 계산도 하시고 손님 대접을 극진히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비가 왔어서 촉촉한 도시의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 웃음이 자꾸 났습니다. "왜 그러시냐"는 말에 "이런 상황이 재밌어서"라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서로 내적 친밀감이 형성된 것에 비해서 실제로 어울린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급진적으로 집까지 가게 된 것이 재밌었습니다. 또, 사실은 매일 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이 길 위에서 청년은 어느 날은 지치기도 했을 거고 어느 날은 두렵고 외롭기도 했을 거고 어느 날은 뿌듯하고 행복하기도 했을 텐데, 그런 남의 길을 같이 걸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닭강정과 맥주를 먹으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1월 1일 새벽에 무인카페에서 나눴던 대화에서는 저의 이야기를 엄청 디테일하게 늘어놨었는데, 이 날은 청년 분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새삼 '정말 이 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구나. 아 맞아 우리 오며 가며 얼굴만 많이 봤지 친한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아, 흐음' 속으로 천천히 숨을 내리며 '이렇게도 비슷하구나.' 여러 번 마음을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의 변화,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 성향, 가치관 등 여러 면에서 생각보다 훨씬 많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먹은 후에는 샤워를 하고 보드게임을 했습니다.
보드게임 전문가가 1:1 과외로 말아주니 다르긴 확실히 달랐습니다! 보드 게임 자체를 재밌게 즐겨본 적도, 앞으로도 딱히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던 지금까지의 게임들과는 다르게 정말 재밌었습니다.
특히 패키징이 취향저격이어서 하게 된 <캔버스>라는 게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미술 콘테스트 출품 컨셉이었는데 카드를 조합해 그림과 제목을 완성하게 됩니다. 게임 방향성을 심사 점수 획득 지향과 개인 만족 지향(재미)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저는 통제처리에 전반적으로 약점이 있기 때문에 점수보다는 무조건 그림 만들기 지향 스타일이었습니다. '경우의 수, 감수성, 의미 부여하기.'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인생의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흠뻑 빠졌습니다. 뭔가 깊은 여운이 남는, '이거는 하나 사야겠다.'로 정리되는 게임.
두 번째 게임은 <what's it to ya>. 상대를 알아갈 때도, 깊은 대화를 할 때도 좋은 게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멘티랑 하셨다며. 수많은 단어 카드 중에 몇 가지를 뽑아서 문답을 나누고 서로의 우선순위를 맞추는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서로의 생각에 부담 없이 다가가볼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런 방법도 있구나.'
게임을 정리하고 청년의 잠자리에, 누나 집에서 조카랑 같이 잘 때와 같아서 익숙한 방식으로 널찍하게 떨어져 누웠습니다. 책갈피 방향에서 글자 방향으로 바꿔 누워서 자는 방법. 잠들기 전, 서로의 길었던 하루를 정리하는 짧은 말들과 인생의 여러 감정을 정리하는 말들을 잠시 나눴습니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눈을 뜬 아침으로 시작하는 하루에 대해서도 하루이틀 안에 적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일단은 여기까지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