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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가 맞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는 이제 꿈속에서나 말할 수 있을까

by Wishbluee


2025년 12월 03일 오후 6시


"테스트 같이 볼래? 00 수학 말이야."

"00 수학?"

"큰 물에서 놀아보게 하는 거지, 어때?"

"음.. 고민 좀 해볼게."


둘째 친구 엄마와의 대화에서 세월을 실감한다.

내년이면 이제 5학년이다. 이제 정말 입시의 길목에 서 있는 것일까.


아이의 침대 옆에는 늘 책무더기가 쌓여있다.

장르도, 크기도 제각각인 온 집안 곳곳에 널린 책들. 심지어 화장실 바닥에도 반으로 펼쳐진 채 엎어져 있다.

아주 지겹도록, 끝도 없이. 책. 책. 책.


오늘도 책을 읽다가 주산숙제를 까먹었다.

허겁지겁 줄넘기 학원 가방을 챙겨 뛰쳐나가면서도, 두 눈을 책에서 떼지를 못한다.

늦었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방금 읽은 책 내용을 중간중간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무슨 책이냐고?


<솔부엉이 아저씨가 들려주는 뒷산의 새 이야기>

라는 책이다.


어느 날 둘째는 책을 읽다가 나에게 외쳤다.

"엄마, 나 꿈이 생겼어요. 나 새 관찰자가 될 거예요! 생태학자가 될 거예요! 최재천 교수님처럼요!"


오늘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암수를 구별했어요! 그리고 저번에 봤던 새는 왜가리였어요! 해오라기가 아니었고요!"


나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같이 읽어주며 토론해 주는 엄마면 참 좋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왜냐면 난 새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새는 맨날 물똥이나 싸고, 냄새나고. 난 영 별론데, 우리 둘째는 새라면 꺼뻑 죽는다.


고등학생 큰 아이가 있기에, 기초 공부를 미리 챙기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가 힘들어진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수학 문제집도 풀리고, 온라인으로 영어공부도 시키고 있다. 호기심이 많은 둘째는 매 시간 그 큰 눈을 반짝거리며 집중하며 배움을 즐기고 있다.


"생태학자면 이과일 텐데, 그러면 수학 잘해야 할 건데~"


엄마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겨우 이런 것이다. 애한테 수학공부를 시키려는 뻔한 수작이다. 그러면 또 끙끙거리면서 문제집을 푼다. 그렇게 밝게 웃던 아이가, 채점할 때마다 긴장을 한다. 몇 개 틀렸는지 자꾸 물어보고, 제법 풀도 죽는다.


"엄마, 나는 영재는 아닌 것 같아."

어느 날, 둘째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한다.

"왜?"

"그냥."


그 말에 마음 한구석이 돌로 누른 듯 답답하다.

영재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아이가 자라고 있다. 이제 다 알아챈다. 저보다 뛰어난 친구들이 많다는 것도 알아냈으니, 이제 제 꿈을 이루려면 참 많은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도 곧 알게 되겠지.


그러면 두려움에 꿈을 바꾸게 될까. 저 반짝거리는 눈 속의 별빛들이 하나 둘 사그라지게 되는 걸까.


나는 아이한테 왜 공부를 시키는 걸까.

아이의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혹시 '일등의 엄마'가 되고 싶은 속셈은 아닐까?


만일 생태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성적 때문에 못 되면 어떡하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학벌 때문에 막히면 어떡하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난다.


아, 정말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오직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책을 빌려다 주는 것뿐이다.

새, 자연, 바다, 곤충...

우리 둘째는 정말 '지구' 같은 아이다.


늦었다고 후다닥 뛰쳐나가다가도, 나무 위에 앉아있는 새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우리 둘째.

부디 저 맑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내 마음의 어두운 야망의 불씨부터 꺼트려야겠다고 생각해 보는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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