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없는 하루
2025년 12월 5일 오후 6시
오늘은 모처럼 약속이 없는 날이다.
어젯밤 내린 폭설에 온 세상이 하얗다.
질척이는 바닥을 보며 등굣길 걱정에 제대로 잠도 못 이뤘다.
다행히 야밤에 큰 도로는 제설이 완료되었다.
모두 다 나가고, 텅 빈 집에 드디어 나 혼자.
이 얼마만인가.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세탁을 시작한다.
위이이이잉~~ 동시에 돌아가는 가전제품들.
식기세척기까지 셋이서 열심히 돌아가니 마치 하모니 같기도 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점을 먹으며 밀린 드라마를 감상한다.
그러다가 허리가 아파서 침대로 자리를 옮긴다.
빨래를 널고, 침대로 마른 옷가지들을 가져와서 갠다.
심심해서 또 드라마를 틀어놓는다.
그러니 눈이 자꾸 감긴다.
다 개어 놓은 옷가지로 가득한 침대 한켠에서 동그랗게 몸을 웅크리고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자다가 깨어났다.
부스스한 얼굴, 아직 졸음이 묻어 있는 표정.
자기 전이나 깨어나서나 똑같은 주변 풍경.
내가 깜빡 잠들었다는 사실은 오로지 나 혼자 만이 알고 있다.
문득, 혼자됨이 두려워진다.
언젠가는 외로움과 친구 먹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데...
이렇게 텅 빈 집안에서 홀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 사는 건 참 피곤하다.
아니, 빨래 개다가 낮잠 들었던 일로, 미래에 겪을 외로움을 왜 끌어다가 오는건지.
가끔은 감정 스위치를 켰다, 껐다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있으면 희로애락에 휩쓸리고, 혼자 있으면 외로움에 잠식당하는
인간의 생애.
인. 생.
살아 있는 게 지옥인지, 연옥인지, 또는 천국인지.
우주에서 보면 그냥 조그마한 먼지인 주제에.
왜 이렇게 느끼는 게 많은 걸까.
'띠링'
문자가 온다.
시켜두었던 샤브샤브가 도착했으니 찾으러 오란다.
후줄근한 얼굴부터 어떻게 해야지 싶어서 대충 세수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가려다가
'아, 빨래 제 자리에 넣어 두어야 하는데'
생각하며 집 안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았다.
썰렁~~ 하다.
시계를 보니 이제 곧 꼬맹이가 돌아올 시간이다.
적막한 집안에 드디어 조잘조잘, 마치 지저귀는 새소리 같은 둘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테지.
큰 애가 돌아오면, 다 같이 샤브샤브를 해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야지.
아직은 외로움과 친구 안 먹어도 되겠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보는 오늘이었다.
-강아지라도 길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