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웨이'(My way). 이 불후의 명곡과 가수 프랑크 시나트라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69년도에 나온 이후 5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100대 명곡, 명반을 소개할 때 항상 상위권에 위치한다. 프랑크 시나트라는 20세기 미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영화배우이자 가수다. 원래 이 노래는 프랑스 샹송이었으나 'Crazy Love', 'Diana'로 잘 알려진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 '폴 앵커(Paul Anka)'가 그를 위해 영어 가사로 개작한 일종의 헌정곡이다. 장례식 때 가장 많이 틀어주는 곡이며 자기 나름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이들, 특히 중장년층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첫 구절 '이제 서서히 끝이 다가오고'(And now the end is near)와 마지막 구절 '내 방식대로 해냈다.'(I did it My way)는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생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자신의 지나온 삶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떤 일은 아쉽고 후회스럽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좋았고 만족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삶의 가치, 목적이 각기 다르고 또 시대의 환경과 개인의 상황이 다른 점에서 누구의 삶이 더 낫다거나 못하다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삶을 돌아보고 'I did it my way.'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막 3장의 연극 무대가 아닌 1막 1장밖에 없는 단 한 번의 삶이란 무대의 막이 내려질 무렵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따라 나의 삶을 살았노라.' 세상을 향해 당당히 외친 그가 존경스럽다. 물론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산 사람이 그 만은 아니다. 굳이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같은 성인, 성현이 아니더라도 하나뿐인 목숨까지 바쳐가며 나라와 후손을 위한 애국애족의 길을 택한 수많은 애국선열, 시대를 함께한 마더 테레사, 이태석 신부 등도 그들만의 삶을 추구하였다. 또한 비록 위대하거나 특별한 삶은 아닐지라도 가족을 위한 가장의 길을 묵묵히 또 충실히 살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가장 또한 'I did it my way'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삶은 어떠한가? 그처럼 세상을 향해 'I did it My way.'라고 포효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 내 생각과 의지에 의한 주체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 삶이었다. 나의 삶을 살았다기보다 부모님의 바람이나 많은 이들이 선호하고 선택한 길을 좇으려 했다. 나만의 길이 아닌 세상의 기준에 따른 길로 현실에 순응한 삶이었다.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삶을 개척하며 살았다면 나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고 적응해 온 삶이었다. 삶의 가치관과 기준이 서로 다른 동서양에 있어 어떤 삶이 또 누구의 삶이 더 낫다거나 못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동양은 가족 중심의 혈연관계를 중요시하였다면 서구 사회는 개인 중심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사회였다. 개인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삶과 가족, 집안과 같은 공동체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문화적 차이다. 그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길을 걸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다. 타인의 시선, 사회적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과 의지대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점 때문이다. 그의 'My Way'는 서구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칭송받는다. 그와 달리 동양의 공동체적 삶을 살아왔기에 '가족을 위한 현실적 상황에 적응해 온 삶이 나의 방식(My Way)'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결혼을 미뤄온 아들의 결혼식을 치렀다. 우리 사회적 기준으로 부모로서 최소한의 의무는 다한 셈이다. 그동안 미뤄온 나를 위한 일에 좀 더 충실하려 한다. 그리고 한 십 년 후쯤 다시 삶을 돌아볼 때면 비록 큰소리는 아닐지언정 내게 주어진 삶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충실하며 살았노라, 그것이 나의 '마이 웨이'이었노라고 나지막이 읊조릴 수 있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