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덴마크의 시골 별장에서>를 마치며
여름마다 덴마크의 '시골 별장'을 향해 떠났던 그 여정은 오래전에 시작된 풍경이었다. 거칠 것 없이 펼쳐진 드넓은 들판, 시부모님의 느긋한 일상들, 남덴마크의 작은 마을 정취까지. 그때 너무 자연스럽게 흘려보냈던 순간들을 그저 추억으로만 간직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써 내려가며 나는 그 시간을 거슬러 처음부터 다시 살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기억들을 털어내고, 옛 사진들을 뒤적이며 작은 순간들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남덴마크를 소개하면서, 시부모님과 그 이웃과 함께했던 시간들의 소중함도 느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여름날들은 20대의 철없던 나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왔다. 느긋함도 배우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도 알며, 자연이 주는 선물에도 눈을 떴다.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인데도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에게도 이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그 들판의 기억을,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깔깔거리던 그 웃음소리를, 언젠가는 엄마가 적어둔 이 글들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그때는 그저 어린아이의 여름방학이었을 뿐이겠지만, 커가면서 그 시간들이 얼마나 따뜻한 선물이었는지 알게 되리라.
시댁이 있는 덴마크 남부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제주 남서쪽은 언뜻 닮지 않은 듯 보이지만, 이상하리만큼 비슷한 풍경을 담고 있다. 드넓게 펼쳐진 들판, 시야를 거스르지 않는 낮은 지붕들, 언제든 보고 싶으면 달려갈 수 있는 바다와 황홀한 해넘이까지. 천천히 호흡할 수 있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그런 남덴마크 같은 곳을 찾으려 헤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의식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이 제주로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천한 글이나마 즐겁게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하루에 잔잔한 바람처럼 스며 작은 미소를 짓게 했다면, 잠시 힘겨운 일상을 잊고 한적한 들판과 푸른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면, 나로서도 매우 감사한 일이다.
덴마크의 시골 별장으로 거슬러 간 그 길목에서, 지금 이 순간도 언제가 아름답게 추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오래된 별장이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러 주듯, 우리 삶의 소중한 순간들도 그렇게 곁에 있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