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자영업자가 보내는 글 - ② 투 잡 (Two Job)
누군가 나에게 이성적인 사람인지, 감성적인 사람인지 묻는다면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성격과 성향을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하는 MBTI 평가에서도 나는 감성적인 사람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와는 조금 다르게 나는 생존과 자유를 중요시한다. 아니, 어쩌면 생존을 이성이라는 관점으로, 자유를 감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아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한 마음을 안고 입사한 직장이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급여가 남들이 생각하는 것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흔히 우리는 공공기관 종사자라고 하면 연금이 없는 대신, 공무원보다 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해왔으니까. 하지만 사회적으로 알고 있는 인식과는 다르게 그런 기관들은 많지 않았다.
흔히 우리가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곳들. 예를 들면 주택공사를 비롯한 다양한 공사, 혹은 정부부처에서 운영하는 산하기관, 각종 금융과 관련된 기관 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연금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공무원에 비해 비교적 높은 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안정성과 대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받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직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속했던 기관처럼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기관들이나 규모가 크지 않은 대부분의 기관들은 그와는 많이 동떨어진 모습들이 많다. 공무원처럼 안정성은 보장받을 수 있지만, 사기업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으며 오로지 '안정성'이라는 희망 하나만을 보고 갈 수밖에 없다. 내가 있었던 기관이 그렇듯이, 그런 기관들은 보통 조직의 규모도 크지 않기 때문에 승진의 길이 좁고, 한참동안 낮은 직급으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적어도 승진을 해야 급여도 올라가고 그를 통해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데 나보다 한참 일찍 들어온 선배들도 진급을 못하고 나와 같은 '주임'으로 머물러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앞서말했듯 연금이라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적게 받지만 노후에는 편할 수 있다.'라는 합리화도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일했던 기관은 모든 분야에서 급여가 적기로 유명한 '교육'계열의 기관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승진을 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주임들)은 이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아무렇지 않게 급여와 처우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는 했다. 그리고 내가 받은 느낌은 업무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퇴사율이 꽤 높았다. 이직과 퇴사가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은 탓에 '누구든지 언제든 나갈 수 있다.'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상사들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 아무렇지 이야기할 정도였고, 상사들도 '여기서 경력쌓아서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을 정도.
조직 문화가 그랬기 때문에 인수인계의 개념도 약했고, 나 역시도 처음 일하게 된 자리가 전임자가 이미 퇴사해버린 공석의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불편을 느끼고 있었지만, 주변 분위기도 뒤숭숭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다른 곳에 입사지원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면접까지 다녀온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서류전형에서, 필기전형에서, 그리고 최종면접에서도 탈락하는 경우가 계속 생기자 스스로 점점 지쳐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업이 좋아할만한 조건을 별로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스스로 국립대라고 위로하긴 하지만 지방대를 졸업했고, 6년 반동안 군생활을 하며 자격증이나 어학 등을 비롯한 스펙관리에 소홀했었고, 회사에 입사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직하는 게 좋아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게다가 신입이지만 서른이 넘는 나이로 지원하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 컸을 것이다.
좌절의 시간이 계속되자 나는 이것저것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그 때 당시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자동차 시승 등을 하며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해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접어두었던 블로그와 글쓰기도 다시 시작했다. 그 행위들이 나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행위를 하는 동안만큼은 스스로 무기력하고 무능력하다는 자기학대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친하게 지내는 선배와 그 가족들이 있었는데 그 아내분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싶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영상편집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망설임없이 도와드리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나는 유튜브 채널 개설과 영상촬영을 함께하게 되었다.
영상을 한동안 열심히 찍고, 주기적은 업로드를 위한 '비축분'까지 마련해놨을 때쯤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유튜브 채널 개설을 원하시던 선배의 아내분은 사업을 나름대로 크게 하는 분이었는데 주변에서 카페 사업을 권유받게 되었다. 나에 대한 이미지가 나름 좋았는지 나에게 함께 해보자고 이야기했고, '새로움'을 갈구하고 있었던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퇴사를 하고 전업으로 도와주기를 바라셨지만 선뜻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그것은 쉽지 않았다. 적은 급여에 불만이 많은 직장이었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이었기 때문에 '불확실'과 '확실'을 맞바꾸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는데 의외로 흔쾌히 '병행'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지금의 자영업과 연결되는 그 첫 걸음을 '투 잡'으로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