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꿈꾸고 있는 당신에게

30대 자영업자가 보내는 글 - ④ 회색인간

by 짠영업자

회색인간. 김동식 작가의 책 제목이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회색인, 혹은 회색인간이라고 하면 이도저도 아닌 인물을 의미한다.

'중립'을 뜻한다기보다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실리만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일이 나의 일생일대의 기회로 느껴졌던 순간부터 나는 회색인간이 되었다.

직장생활도, 새로운 사업의 시작을 준비하는 것도 둘 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흔히 말하는 워라벨이 좋은 직장이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맡은 업무가 있었고 추진해야 될 과업들이 있었다.

반면에 새로운 사업의 시작을 준비하는 일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작게는 매장을 오픈하게 되면 들여놔야 될 각종 집기나 가구를 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서,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미리 알아보고 구입 준비를 하는 일들도 있었고,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한 스티거나 각종 홍보물품을 구매하는 일까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써야 할 일들이 정말 많았다.


게다가 나는 아주 극히 적은 일부 자본을 투자하긴 했지만, 결국 99퍼센트의 가까운 자본은 다른 분들의 주머니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속된 말로 나는 몸으로 때워야 하는 포지션이었다. 뭐, 그거를 좋게 포장한다면 브레인이었고 권한을 위임받은 리더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첫 화에서 얼핏 이야기했지만 나는 흔히 말하는 '공직'에서 꽤나 오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속했던 조직은 어느정도 체계나 시스템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그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조직은 효과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근데 그 시스템이 없는 상태. 무질서한 공간의 시스템을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각종 집기를 구입하기 위해 여러 매장에서 견적을 받고 직접 방문하는 것부터,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면 그 집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사전에 약속을 잡는 일, 집기와 가구가 들어오면 동시에 들어와야 하는 여러 가지 부재료들이나 소모품들이 제때 배송을 받을 수 있도록 조율하는 일, 매장을 오픈하면 함께 일해야하는 직원을 선발하는 일, 중간중간 변수나 우발상황은 없는지 살피는 일, 모두 나의 몫이었다.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전업한다고 하더라도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하는 일들이었지만, 나는 '안정성'을 이유로 직장을 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직장에서의 업무는 업무대로 해야했고, 사업의 시작을 위한 준비는 준비 나름대로 해야했으니 나는 점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잠은 많이 자야 4~5시간이었고, 끼니를 거르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나는 나름대로 식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잠이 부족하다보니 수면욕이 식욕을 이겨버렸다. 점심시간에 나는 직장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지 않고 보통은 삼각김밥 하나를 대충 주워먹고는 차에서 자는 일이 더 많았다.


항상 어딘지 모르게 지쳐있는 나를 보며 직장동료들은 무슨 고민이 있는지, 혹은 어디가 안좋은 건 아닌지 걱정해주었는데 그 때마다 마음의 한켠이 찔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딜가더라도 노트북과 함께여야 했고, 각종 대금을 입금하기 위한 보안카드를 갖고 다녀야했다. 핸드폰은 항상 울려댔고, 울리는 시간은 나의 스케쥴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았다. 직장에 있을 때도 연락이 왔고, 퇴근을 한 후에도 연락이 왔고, 밤늦게에도 연락이 왔다.


여자친구와의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 한 번 가까운 곳으로 밥을 먹으러가거나 차를 마시러 갈 때에도 나는 노트북과 보안카드, 그리고 핸드폰과 함께였다.


나는 나대로 힘들고, 그런 나를 보는 여자친구는 여자친구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쌓이던 시기였다. 우리는 다툼이 잦아졌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나는 나의 바쁨을 그녀가 이해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그녀의 외로움을 내가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서로의 서운함이 마음에 크게 자리잡고 있으니,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이 들어갈 틈은 없었다.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일이, 그리고 반드시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에 나는 오히려 지쳐갔다. 항상 힘이 없었고, 피곤했으며, 넋이 나가있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들은 있었다. 막상 오픈을 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라는 기대와, '대박'이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그리고 그 모든게 완성되었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나는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그 시간들을 버티고 마침내 카페는 오픈을 했다. 하지만 내가 예상한대로 흘러가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시작하는 가게가 그러하듯 매출은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고, 오픈을 하면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던 내 시간은 그만두는 직원이나 알바생들의 빈 자리를 채우느라 이전보다 더 빡빡해졌다.


게다가 나는 전업이 아닌 투 잡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왠지 모두 내 책임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중을 하지 못해서 세심하게 챙기지 못한 것 같았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만 같았으며, 이러한 생각들이 반복되다보니 나는 자신감이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표현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함께 시작을 했던 사람들 역시도 고민이 많았기에 내 '사소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고,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들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만날 시간조차 없는 친구들과 술 한 잔에 날려버릴 수도 없었으며, 옆에서 항상 지친 내 모습을 보며 함께 지쳐가는 여자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는 직장 나름대로 내가 직장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아닌 죄책감이 들었다. 항상 피곤에 찌든 내 모습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뒤에서 손가락질을 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얽혀 있었고, 여러 집단에 속해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렇다고 그 사이에서 실속을 챙기지도 못하는 회색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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