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 순간 시간이라는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존재다. 초(秒)와 분(分), 시(時)와 일(日), 주(週), 달(月), 그리고 년(年)으로 쪼개어진 이 단위들은, 사실 태곳적부터 인간이 덧없는 흐름을 붙잡아 사유하기 위해 만든 약속이자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인위적인 잣대와 무관하게,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경이롭고도 때로는 두려운 기적이다. 찰나의 1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덧없는 10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간 것처럼 믿기지 않는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행성이 태양 주위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전하고, 스스로 자전하며 우주 속을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물리적 현실과 동기화된다. 우리는 거대한 우주의 무서운 속도 속에 편입되어, 그 흐름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한다. 잡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투명한 시간의 물결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불가항력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 멈추지 않는 시간의 물결 속에서, '존재'(existence)란 무엇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삶'(life)'이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존재는 우주적 시간에 비해 극히 짧은 찰나이며, 우리의 삶은 그 찰나 속에서 깨어있는 의식의 연속이다. 마치 강물 위에 떠 있는 작은 거품처럼, 잠시 형태를 유지했다가 사라지는 현상이다.
철학자들은 일찍이 인간의 삶이 '유한성'(finitude)을 가진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고귀하다고 보았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의미는 극대화된다. 우리가 겪는 모든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은 돌아오지 않을 단 한 번의 경험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 멈추거나 삶이 영원하다면, 성취도, 사랑도, 심지어 고통조차도 그 무게를 잃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헤어짐의 드라마다. 새털같이 많은 시간들이 쌓여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의 한복판에는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관계'(relatedness)가 자리한다.
시간의 흐름은 필연적으로 분리를 초래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인연의 끝, 그리고 궁극적으로 다가올 '죽음'(death)을 의미한다. 죽음은 단순히 생명 활동의 중단을 넘어, '시간의 흐름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시간은 새로운 만남과 관계의 시작을 허락한다. 헤어짐의 슬픔이 있다면, 새로운 관계 속에서 치유와 성장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시간의 흐름, 지나간 추억의 흔적,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유일한 존재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진정한 기적이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은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시간의 거대한 흐름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흐름 속에서 매 순간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에 집중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수십 년의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 과거를 짊어진 채,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웅장한 리듬에 맞춰 미지의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의 증인이자 주체이다. 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랑하고, 사유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존재 의식이야말로 우주가 허락한 가장 숭고한 찰나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