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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하고 싶은 공부

<최재천의 공부>를 읽고

by 빛의 온기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았다. 자주 멍을 때리고 있어서 소개팅남으로부터 "생각이 참 많으신가 봐요. "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제 생각하면 조용한 ADHD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한 번 가진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떠다니곤 했다. 지금도 답을 찾지 못한 생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 정답은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토록 쉽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주 사소한 질문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평생을 자부하는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심심해도 읽었고, 외로워도 읽었다. 궁금해도 읽었고, 공부하기 위해서 꼼꼼히 읽기도 했다. 공부를 엄청 잘하진 못했지만 남들 하는 만큼 노력은 했다. 개천에서 난 용이었던 아빠에게는 한없이 부족한 딸이었지만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니 나중에는 애쓴다며 인정해 주신 기억이 있다.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노력해서 들어간 지방 명문고에서는 아무리 해도 등수가 잘 오르지 않았다. 결국엔 수능으로 대학을 갔으니 내신은 아무 의미 없었건만 그때는 참 답답했다. 그럴 때마다 찾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아는 사람만 안다는 학교 내 아지트였다.



학교 건물과 주택가 담장 사이, 그 좁은 공간에는 2~3명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벌러덩 누워서 바라보면 끝없이 펼쳐지던 파란 하늘과 어깨 높이보다 조금 더 높았던 회색빛 담장이 떠오른다. 누구를 지키고자 둘러놓은건지 궁금해지는 가시철조망까지도.



아지트라고 해서 특별히 비행이랄 것도 없었지만, 대낮에 학교 담을 넘어 신나게 달려 나가는 상상을 하며 고3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그때 담벼락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반짝이던 눈을 가진 유쾌한 친구는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모두 아니 대부분은 공부를 한다.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검증하는 시험을 치기 위해, 기본 소양을 확인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성실히 들었는지 점검하기 위해, 남들이 정해준 과목을 밤 새 가며 공부한다. 그것이 성실성, 인내, 끈기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척도는 될 수 있겠으나, 공부의 즐거움을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40대에 접어들어 주변에 그 누구도 내게 공부하라 하지 않으니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 주변에서는 무슨 공부냐, 애 보고, 집안 살림하고, 할 수 있으면 직장 가서 일도 하라고 할 뿐이다. 아이가 공부하게 하려면 도저히 공부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상책일지도 모르겠다. 살림을 하며 주어진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것들에 대한 희열을 느낀다. 남편에게 말해봐야 시큰둥하니 혼자 소중히 간직한다.



그러다가 삶의 답답함이 터질 듯이 밀려와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취미 도반들을 만났다. 슬초 브런치 3기 서서모임(서울 서쪽 작가들의 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함께 읽고 단톡방에서 생각을 나누고 글을 쓴다. 모든 것은 자유다. 누구도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바쁘면 책을 안 읽어도 되고, 책만 준비하고 못 읽어도 괜찮고, 책을 준비해서 꼼꼼히 읽어나가면 스스로에게 감사한 일이다. 거기서 < 최재천의 공부 >라는 책을 만났다. 좋은 말이 정말 많았지만 뇌리에 꽂힌 한 마디를 적으며 글을 끝낼까 한다.




p. 283

요즘 청년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악착같이 찾아봐라'라는 것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을 왜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삽니까? 우리는 눈만 뜨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쭈그리고 앉아 있지 말고, 나가서 뒤져보고 찔러보고 열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책도 읽어보면서 찾아야 합니다. 무언가 관심이 가는 일이 보이면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찾아가 보는 거예요.


p. 285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속도로 같은 길이 눈앞에 보입니다. 이거다! 싶으면 그때 전력으로 내달리면 됩니다. 제가 정확하게 그렇게 했어요. 한 10년쯤 달리다 보니 처음에는 친구들보다 훨씬 늦었는데, 10년 정도 지나면서 남들보다 조금씩 앞서가고 있더라고요. 저는 똥물학과 학생으로 우울한 대학 생활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뭘 하면 좋을까?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죠.




멍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뭘 하면 좋을까?

스스로에게 물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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