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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사이좋게 지내~!"

결혼 10년 차 부부의 권태기 극복기

by 빛의 온기

"엄마 아빠 사이좋게 지내~!"

7살 난 딸아이가 아침에 유치원에 가면서 우리에게 다정하지만 묵직한 인사말을 남기고 갔다. 아이의 눈에는 그토록 쉬운 것인데 나이를 몇 곱절 먹은 우리는 왜 여태 못 하고 있을까.


그동안 너무 답답했다. 행복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딸아이가 읽어달라고 두 번 세 번 가져오는 <인형의 집>이라는 책이 껄끄러웠다. 주인공 노라처럼 남편에게 귀여움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읽다 보면 이야기에 몰입되어 슬픈 마음이 들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 상황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집을 박차고 나갈 용기조차 없는 나 자신에 대한 마음일 것이다. 이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형의 집>은 딸아이의 최애책이다. 딸아이는 "엄마 나는 결혼 안 할 거야." 라며 똑똑한 MZ 세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엄마가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았으면 너는 이 세상에 없었다는 걸 언제쯤 알게 되려나?


결혼 10년 차, 우리는 어쩌면 권태기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그 언저리를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그에 맞춰 주어진 역할을 각자 수행하며 살고 있다. 남편은 직장을 열심히 다니고, 더 나은 위치를 위해 여가시간 없이 승진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휴직하고 아이 셋을 낳고 집에서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다들 그렇게 살잖아.'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면서. 그런데 별로 괜찮지 않았나 보다. 이성적인 남편과 달리, 감성적인 부분이 삶에 중요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걸 깨달으라고 행복한 가족사진 같은 하루하루를 살았었나 싶기도 하다.


승진공부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겨우 일 년 갖고 뭘 그러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일 년간 가족끼리 여행이란 없었고, 멀리 떨어진 친정에 못 갔음은 물론이고, 운동회, 졸업식 등 아이들의 크고 작은 행사에도 혼자서 가야 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에서는 슬픔이 차올랐다. 그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닿아 죄 없는 아이들에게 천둥번개 같은 엄마가 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외로움과 서운함이 쌓이다 보면 터지게 되는 순간이 오나 보다. 그걸 막아주는 완충제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했다. 무뚝뚝하지만 성실한 남편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아내였다.


이제 승진시험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어느 저녁 나는 저녁상을 차리고, 치우다 울고 말았다.

고맙다. 미안하다. 고생이 많다. 왜 말을 못 하냐고, 나를 사랑하긴 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도리어 내게 묻는다. 너는 나를 사랑하냐고.

남편의 거울 반사 같은 답변에 뚜껑이 열려버렸다.

사랑하니까 희생하고 참고 배려해 주는 거지, 사랑도 안 하는데 이러고 살겠냐고,

지난 일 년간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준 적 있었냐고,

이러면 식물도 말라죽는다고,

승진시험 끝나면 그만 살자고 했다.

(이제 생각해 보면 100% 진심은 아니었다.)


그랬다. 끝을 상상해 봐야 현재가 감사해지는 법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결혼 생활의 끝을 고하는 말을 듣고 나니, 남편의 입에서 일 년간 듣지 못했던 말들이 새어 나온다.

미안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쓰다듬어 주기까지, 그토록 바라던 3종 세트가 현란하게 쏟아져 나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게 필요 없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애정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있다면 10년의 결혼생활을 흔들어대던 권태기도 조금은 가라앉을 것 같다.

사랑보다는 전우애 같은 느낌으로, 서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줌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우리가 만드는 집이 보기 좋은 인형의 집이 아닌 따뜻한 사람의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넋두리도, 눈물 젖은 일기도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권태기를 묵묵히 걸어갔고, 그 끝에서 마찰이 아닌 뜨뜻미지근할지언정 봉합이 이루어졌을 때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게 오늘인 듯싶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고, 우리의 성격은 그대로다. 다만 서로 완충제를 겸비하고 있다가, 상대가 요청하면 꺼내어 응급처치 해주는 수준은 되었다. 두 가지 색깔 클레이가 만나 섞이고 섞여 하나의 오묘한 색깔이 될 때까지, 우리 모두의 결혼 생활이 그들만의 특별한 한 가지 색이 되길 바라본다.


왜인지 부끄러워 발행을 못한 채 시간이 또 흘러갔다. 이제는 권태기라는 파도가 흘러가고, 잔잔한 물결만이 남은 상태에서 출근할 때 뽀뽀를 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그나마도 계산대에서 큐알코드 찍어대듯 입술을 쭉 내밀어야 쪽 하는 뽀뽀가 돌아온다.

그런데 그걸 보며 즐거워하는 눈이 있어서 재밌다. " 꺄아~~ 오빠!! 방금 엄마랑 아빠가 입맞춤했어~~!!" 라며 깔깔대며 놀리는(?) 딸내미가 있어서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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