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은 성직-나의 참회록

by 무용지용



중국어만 공부하다 대학을 어거지로 졸업한 나는, 대뜸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아무것도 잘 해낼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덫에 걸려 옴싹달싹 못하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도, 학교와 교실이라는 장소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버거웠다. 그 버거움은 업무량이나 노동 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히 몸을 많이 쓰고 일을 많이 해서 해결된다면 차라리 괜찮았을 것이다. 궂은 일을 도통 안 해봐서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숯불을 나르고 손님이 뱉어놓은 생선가시를 치우며 대학을 다녔다. 방학엔 물류센터에서 힘을 쓰거나, 금속 공장에서 일하거나, 전단지를 잔뜩 실은 트럭 짐칸에 실려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다. 쫄병 시절엔 화포를 관리하고 사격 훈련을 받느라 온몸이 아프기도 했다. 허리가 아파 항상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그렇게 군 시절 내내 복용한 진통제는 내게 식도염, 위염, 장염이라는 선물을 선사했다.

그래도 그 시절 내 정신 상태는 꽤 말짱했다.

교사가 된 내게 밀려온 고통은 단순한 업무의 고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뭐랄까, 내가 '본질적으로' 교사라는 직업과 불화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학교로 향하는 출근길은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다른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수 천 번은 했다. 그러나 교대를 졸업한 내게 교사라는 직업 이외의 선택지는 현실적으로 없었다. 나를 교대에 집어넣은 부모님을 정말 많이 원망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어떻게든 교사로 잘 살아나가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한동안 나는 이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꽤 열심히 노력했다.

제일 처음에는 수업 스킬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수업을 기막히게 잘 하면 나의 교직 인생이 보람차고 즐거워질 것 같았다. 나는 밤을 꼬박 새우며 교과서를 뒤적였고, 열심히 수업 준비를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학교가 싫었다. 교사인 내 모습이 싫었다. 나의 초임 시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안타깝다.

그 뒤로는 내 교육철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깊게 파고들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연한 기대를 품고 나는 또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각종 교육학 서적을 탐욕스럽게 수집하여 읽었다. 교육 철학을 공부하자니 철학을 먼저 공부해야 할 것 같아 철학책도 한 무더기 사서 읽었다. 나는 항상 알라딘 플래티넘 회원이었다. 교육에 관한 논문을 스크랩하며 교육대학원에 진학할 계획도 세웠다. 그렇게 2년이라는 세월이 또 지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안쓰러운 세월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수업에 공을 들이고 교육철학을 공부해도 학교라는 공간에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학교만 오면 가슴이 답답했다. 교실에 쥐구멍이라도 뚫려 있었다면 그 곳으로 도피했을 것이다.

나는 최근에야 문제의 근원을 밝혀냈다. 그것은 교육철학의 부재도, 수업 기법의 부재도 아닌 '신앙의 부재'였다.

당시 나는 나와 세상을 믿지 않았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항상 부정하면서 지냈다. 내게 교사의 자격이 없다고 믿었고, 내 인생 자체를 회의했다.

그런데, 교사란 어떤 직업인가?

교사는 당연히 가르치는 일을 한다.
행정 업무를 처리한다.
시시콜콜한 생활 지도를 하고, 갖가지 민원 응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교사는 '희망을 노래하는' 직업이었다!

이 세상에서 한 가닥 희망도 찾지 못한 사람이 어린 영혼에게 희망을 설파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힘들다. 자기 존재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이 다른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겠는가?

낙담한 사람이 교사가 되는 것은, 무신론자가 성직자가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같다. 교직이 성직(聖職)인 까닭은 교사라는 자격이 성스러워서가 아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성직자에 준하는 예우를 받아서도 아니다. 요즘 교사를 성직자로 대우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교사는 희망을 노래하는 직업이기에 성직이다. 그래서 굉장히 특수한 직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를 교육 대학교에 억지로 집어넣은 부모님은 당시 그런 사실을 몰랐다. 그저 졸업하면 빨리 취직이 되고, 빨리 퇴근하고, 방학이 있는 좋은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나도 몰랐다.

그리하여 나는 꽤 오랜 세월을 방황하고 말았다.
2024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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