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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이란'의 세탁소 설정은 최악이었습니다

by 테서스

(영화 및 원작소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서론


최근에 '아사다 지로 단편집'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모든 작품을 다 읽는 건 아니고 `90년대쯤에 대히트를 친 '철도원'과 '러브레터'(영화화됐을 때 제목은 '파이란')를 대표작으로 내세운 8편의 단편집이구요. 대략 1주일에 단편 1~2개 정도 읽는 정도입니다.


아사다 지로의 작품을 다 챙겨 봤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만, 저 대표작 단편집은 꽤 잘 썼고 또 작가 중 1인으로서 본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중 캐릭터와 작가 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스타일, 서로 대비되는 사물이나 현상(낡은 열차와 새로운 열차, 평화로운 바다와 불법 성매매 업소 등)을 적절히 배치하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죠.



앞에서 '다시 읽는다'고 했는데, 제가 아사다 지로 단편집을 처음 읽은 건... '군대'에 있을 때였습니다. 대충 짬 차서 일병 말 ~ 상병 초 쯤에 봤던 것 같아요. 부대 막사에 누가 기증해 놓은 걸 읽었었습니다.


'철도원'은 영화를 안 봤고 소설책으로 처음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러브레터(영화제목 '파이란')'의 경우에는 영화를 먼저 보고 군대에 입대한 후에 소설을 읽었었네요. 그러고 나서 [아 영화가 원작을 완전히 망쳤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고 대략 20년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다시 소설을 보다 보니 새삼스럽게 영화 설정이 거슬리더군요. 인터넷에 찾아보니 영화 파이란의 설정을 좋아한다는 분들도 은근 있는 것 같지만, 제 눈에 거슬리면 거슬리는 거죠.


원작소설 및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여 제 나름대로 비교분석해 보겠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비교분석이니 다르게 판단하시는 분들께서는 얼마든지 의견 밝혀 주실 수 있습니다.


본론 넘어가 보죠.



2. 본론


(1) 원작소설 '러브레터'의 설정 : 파이란의 직업은 창녀(娼女)


원작소설의 설정은 1줄로 짧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작중 인물 '파이란'은 창녀였습니다. 죽기 전까지 몸을 팔아야 하는 운명이었고 결국 죽은 이후에야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파이란이 창녀 직업을 원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아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일본의 버블경제가 꺾인 직후 아직 가난하고 힘들던 나라 중국에서 넘어온 '순수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여인' 파이란은 본인이 일본으로 갔을 때 무슨 일을 하게 될 지 알고 있었을 것 같지만... [가난한 고향 집에 돈을 많이 부쳐 줄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라는 편지 구절로 볼 때, 본인을 희생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파이란은 열심히 일합니다. '인재파견'이라고 쓰고 '성매매알선'이라 읽는 야쿠자 조직에 얽매여 있고 그 야쿠자들의 감시 때문에 허름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극도로 제한되며 생활환경이 나빠 간(肝)이 붓게 되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고... 계속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녀를 감시하고 성노동에 강제종사하도록 압박하는 야쿠자들, 바닷가에 성매매 여행을 왔다가 그녀의 몸을 통해 짧은 쾌락을 누리고 떠나가는 손님들, 결정적으로... 그녀와 위장결혼을 하고 사진 한 장 딸랑 보내 준 '서류상의 남편 고로'에게. 파이란은 계속 '감사합니다.'라고 글을 씁니다.



파이란의 간이 치명적으로 망가져 더 이상 회복할 수 없게 되었고 확정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 파이란은 조금 더 나아진 일본어로 서류상의 남편 고로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진 속 고로 씨는 항상 웃고 있습니다. 그 미소를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서 손님들에게 더 잘 하게 됩니다. 그럼 손님들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모두 고로 씨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글을 씁니다.


파이란은 고로의 아내가 되고 싶어합니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고 오로지 일본에 불법취업하기 위한 위장결혼 상대일 뿐이었으며 색 바랜 사진 한 장 갖고 있을 뿐이지만... 파이란보다 20살 가까이 많은 중늙은이에 야쿠자 따까리 신세인 백수건달일 뿐이지만... 고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고로는 파이란의 시체를 얼싸안은 채 서럽게 울었고, 파이란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서 더더욱 서럽게 웁니다. 파이란을 데리고 고향 마을로 돌아가 오손도손 살아가는 꿈을 꾸지만 그 꿈 또한 덧없이 지나갑니다.



원작 '러브레터'는 시종일관 담담한 톤으로 고로의 시각에서 파이란의 행적을 따라갑니다. 창녀로 팔려온 바닷가 마을에서 미모를 뽐내며 해수욕을 하던 모습, 야쿠자들의 감시 하에 창녀 일을 하던 낡고 비위생적인 건물, 모든 상황을 다 알면서도 불법성매매 따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듯 시큰둥한 경찰, 냉동보관된 시체, 화장(火葬)...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봉되는 러브레터까지.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작중인물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독자들이 스스로 평가하도록 배려해 줍니다. 대단하죠.


'독자로서 제가 평가한 내용'은 저 아래쪽에 다시 쓰겠습니다. 우선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파이란'의 설정부터 요약하겠습니다.



(2) 영화 '파이란'의 설정 : 파이란의 직업은 세탁소 직원


영화와 원작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파이란의 직업'입니다. 위장결혼 남편 고로의 이름이 한국식으로 바뀌었고 마지막에 고로가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도 다르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파이란의 직업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파이란은 '세탁소 직원'입니다... 대충 외딴 바닷가 마을인 건 비슷한데, 어느 나이많은 할머니(? 할아버지였을 수도 있습니다)가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열심히 스팀다리미 돌리고 있습니다. 당시 중국 TOP 미녀배우였던 장백지를 데려다가 허름한 시골마을 세탁소에서 시다바리 일 시키고 있습니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는 아니고. 아무튼 세탁소 일 합니다.)



뭐, 영화의 파이란이 곧바로 세탁소 직원이 된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원작과 비슷한 일 할 뻔 했습니다. 파이란을 불법입국시킨 한국조폭들이 '룸살롱'으로 끌고 갔거든요.


파이란은 룸살롱에서 입 안을 깨물어 피를 철철 흘립니다. 폐병이 있어서 피 흘리는 것처럼 피 섞인 기침을 하기도 했던 것 같네요. 화들짝 놀란 한국조폭들은 파이란의 상품가치(!)가 떨어진 것을 아쉬워하며 대충 싼 값에 넘기는 것 같은데... 그게 '세탁소'입니다.


한국조폭들이 왜 선량한 시골마을 세탁소 할머니(할아버지)와 인신매매 거래를 하는지 아몰랑. 파이란이 한국 들어올 때 불법입국 수수료 등으로 조폭들에게 상당한 빚을 졌을 텐데 그 빚을 어떻게 갚는지도 아몰랑. 파이란이 원작에서 일본으로 불법입국한 게 '가족들 생활비' 때문인데 영화에서 한국 세탁소 시다바리 일로 고향의 가족들 생활비를 보낼 수 있을지도 아몰랑.


여러모로 '아몰랑'이지만 아무튼 파이란은 세탁소에서 나름 인간답게 잘 삽니다. 룸살롱에서 폐병 코스프레 한 게 무슨 복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폐병 걸려서 죽게 된다는 거 빼면 그 전까지는 꽤 주위 사람들에게 배려받으면서 잘 살았던 것 같아요. 뭔가 고통받는 장면 같은 건 전혀 안 나오고 갑자기 폐병말기로 넘어가 버립니다.


그리고 폐병말기의 파이란은 '사진 한 장 딸랑 받은 위장결혼 남편'을 사랑하게 됩니다. 별 고난 없이 시골마을 세탁소에서 잘 살다가 얼굴도 못 본 남자를 사진만 보고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랑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설정. 이해하실 수 있나요?



뭐, 인터넷 찾아보면 영화 파이란 팬클럽도 있다고 하니 누군가는 이해하셨겠죠. 어떤 사람에게는 저 설정이 개연성 있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인생 경험이 다르고 감수성이 다르니 누군가에게는 감동적이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원작 소설을 안 보고 영화만 봤을 때에도 "저건 뭥미?" 였어요.


이제 원작 소설을 2번 읽었으니,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영화의 세탁소 설정을 털어 보겠습니다.



(3) 원작 러브레터(파이란)의 작품성 : '판도라의 희망'에 빠져 버린 인간의 비극적인 아름다움


원작소설의 파이란은 철저히 착취당하고 빼앗기고 농락당하며 밑바닥까지 떨어진 여인입니다. 거품경제가 막 붕괴하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2위 경제대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일본에서 '아직 개발도상국 초입에 들지 못한 중국 출신 밀입국자'인 파이란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부조리와 착취와 폭력에 저항할 힘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이끄는 대로 이끌려 갈 뿐이죠.


(물론 2020년대의 일본-중국 및 세계적인 인권의식에는 안 맞지만... 이 작품이 `90년대에 나온 작품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설정입니다. 우리나라도 `80년대까지는 비슷한 일을 당하는 입장이었구요.)


파이란이 '불법으로 일본에 넘어가 성매매 일을 한다!'고 결심하긴 했습니다. 즉, 어디 납치유괴 인신매매를 당한 건 아니었죠. 가족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데 거기로 가면 아마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 정도는 충분히 하고 나서 일본행 배를 탔을 겁니다.


그러나... 예상했다고 해서 모두가 각자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본인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돈으로 바꿔야 하고 또 그 돈의 상당 부분을 야쿠자에게 빼앗겨야 하는 입장이라면, 일에 종사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 거예요. 인격이 파탄날 정도로 괴롭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우 공격적이고 악랄한 성격으로 바뀌어 갈 겁니다. 칼로 야쿠자 배때지 쑤셔서 창자줄넘기 하고 본인도 자살하는 게 평범한 엔딩(?)일 거예요. 상식적으로는 그러합니다.


하지만 파이란은 정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셰셰)"고 말하죠. 그녀를 바닷가 허름한 창녀촌으로 끌고 와 감시하는 야쿠자에게도, 그녀를 거쳐 가는 손님들에게도, 그녀와 위장결혼을 하고 사진 한 장 남겨 놓은 중늙은이 고로에게도. 모두에게 감사해 합니다.


그리고 파이란은 '사진 한 장 받아든 중늙은이 고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얼굴도 본 적 없고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으며 오로지 일본 성매매 업소 취업을 위해 서류상으로만 결혼한 40살 남자를 '진짜 남편'으로 섬기고 싶어합니다.


이 사랑. 진짜일까요?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는 세상 모든 불행과 아픔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엽니다. 그 온갖 불행과 아픔이 인간 세상으로 퍼져나간 뒤... 마지막으로 '희망'이 남죠.


판도라의 희망은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희망을 가져라!"라는 희망적인 얘기인 동시에, "그런 헛된 희망이야말로 가장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최대의 불행이다!"라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헛된 희망, 부질없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덧없고 아픈 감정이라는 얘기죠.


파이란의 사랑은 '판도라의 희망'이었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일본에서 창녀로 살다가 간에 큰 병을 얻어 죽어가는 젊은 여인이 마지막으로 꿈꾸는 헛된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짜가 아닌 사랑은 모두 추한 것일까요? 판도라의 헛된 희망으로 사진 한 장 부여잡은 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가짜 사랑은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비극, 그 모순이야말로 인간 그 자체입니다. 비극적이기 때문에 더욱 더 눈이 시린 미(美)입니다.


죽기 직전의 파이란은 짧은 일본어로 편지를 남깁니다.


[사진 속 고로 씨를 보고 있으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서 손님들에게 더 잘 하게 됩니다. 그럼 손님들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고로 씨. 당신을 사랑합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당신의 아내로 죽고 싶습니다. 저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이 모순. 세상의 거대한 폭력에 찌그러져 저항할 의지를 잃어버린 존재의 마지막 헛된 희망. 그 참을 수 없는 비극의 아름다움.


단언컨대, 파이란의 마지막 편지 구절은 우리 시대 명작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명문장입니다. 인간의 헛된 희망과 그 비극을 이렇게 압축적으로 보여 준 것이 아사다 지로였고, 그는 이 단편소설 하나로 길이 기억될 만한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이걸 '세탁소'로 바꿔 버렸죠.



(4) 영화 파이란 : 세탁소? 세~~타악~~~소오오오? 소는 누가 키워 소는


한때 유행하다가 남녀차별 논란 크리티컬 맞고 사라진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를 가져왔습니다. "세~~~타악~~소오오오?"


영화 파이란의 주인공도 분명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에 불법취업해야 한다.'는 걸 알고 왔을 겁니다. 특별히 미모 출중한 (영화의 장백지는 너무 출중해서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아무튼 미모출중) 묘령의 여인을 데려왔으니 더더욱 쉽게 예상했을 겁니다.


그런데 영화 속 파이란은 룸살롱에서 크게 당황하다가 입 안을 깨물어 버리죠. 아니 이럴 줄 몰랐다구요? 도대체 얼마나 깨끗하게맑게자신있게 살아오셨으면 이걸 모를 수 있죠? 그러고 그만큼 깨끗하게맑게자신있게 살 수 있는 집안이었으면 가족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불법취업할 이유도 없지 않나요?


설사 입 안 깨물기 신공으로 적절히 조폭들을 속여넘길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다음이 '시골마을 세탁소'입니다. 아니 시골마을 세탁소에 뭐 그리 일감이 많다고 중국 여자 알바를 고용하죠? 최저임금은 주나요? 이 영화 나온 2000년대 초반이면 최저임금이 하루 3~4천원이었을 텐데 그걸로 고향집 생활비 보낼 수 있어요? 조폭들 수당은 됩니까?


뭐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다 제쳐 두더라도... 세탁소 할머니(할아버지)가 정말 선량하고 친절하고 주위 마을 사람들도 깨끗하게맑게자신있게 젊은 미녀를 안 건드린다는 설정이 뒤따라옵니다...


아니 이 마을은 무슨 날개없는 천사들만 모아 놨어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어도 길거리캐스팅 들어올 만큼 예쁜 장백지가 시골 세탁소에서 알바 하고 있는데 다들 좋은 마음으로 잘해주기만 한다구요? 하다못해 껄떡거리는(...) 중늙은이 한 명 없다구요? 이게 가능해요? 레알? 트루? 리얼리?


뭐 날개없는 천사 설정까지도 받아들인다 칩시다. 마지막 허들이 다가옵니다.


"도대체 장백지는 왜 사진 속 남자를 사랑하게 되나?"에 대한 개연성이 마지막 허들입니다.



원작의 파이란은 압도적인 폭력과 강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폭력을 합리화해 버린 존재입니다. 야쿠자에게도 감사하고 손님에게도 감사하고 위장결혼을 해 준 중늙은이에게도 감사하다가 그 중늙은이의 사진만 보고 사랑에 빠져 버린 비참한 영혼, poor unfortunate soul 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장백지는... 세탁소에서 잘 지냅니다. 한국조폭과 어떻게 연계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탁소 할머니(할아버지)는 장백지에게 잘 해주고 찾아오는 마을 사람들도 친절해 보입니다. 그녀가 원한 대로 룸살롱 성매매업소 일은 하지 않고 세탁소 시다바리로 안전하게(?) 잘 삽니다.


이런 여인이 왜 사진 한 장만 보고 중늙은이 남자를 사랑하게 될까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납득이 안 되네 납득이.



또 한 번 단언컨대, 영화 파이란의 세탁소 설정은 원작의 핵심가치를 훼손하다 못해 아주 그냥 심장에 말뚝을 박아버린 최악의 설정이었습니다. 원작 소설이 완벽하게 쌓아올린 서사 구조와 개연성과 비극의 미학을 하찮은 정신병으로 전락시켜 버린 선택이었습니다.


뭐, 현실에서는 저런 일도 일어날 수 있겠죠. 우리 현실은 개연성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한평생 착하게 산 사람이 번개 맞아서 죽을 수 있고,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가 한평생 떵떵거리며 잘 살 수도 있습니다. 권선징악뿐만 아니라 다른 개연성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창작물'이 개연성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실화극이라면 현실 사건 자체가 개연성이니 그대로 가져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순수창작물과 그 2~3차 재창작에 있어서는 개연성을 지켜 줘야 합니다. 특히 1차 원작이 극도의 개연성을 확보해서 서사 구조와 비극미를 완성했다면 2~3차 재창작에서는 더더욱 신중하게 그 가치를 유지해 가야 합니다.


하지만 영화 파이란은 그딴거 아몰랑. 세탁소에서 알바 하다가 중늙은이 사진 한 장만 보고 사랑할 수도 있지. 개연성은 알아서 챙기셈.


영화의 영상미가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것뿐이에요.



나온 지 20년을 훌쩍 넘은 영화 '파이란'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읊어 봤습니다. 오늘은 이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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