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시원의 추억

by 테서스

1. 서론


아마 찰리 채플린이 말했을 겁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얼추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한국 나이로 50살, 소위 지천명(知天命)이라 불리는 나이에 이르면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종합해 보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희극처럼 기쁘고 좋은 것만 기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에서 부대낄 때에는 지옥 같은 고통이었지만 멀어지면 추억이네요.


그래서, 오늘 글의 제목을 '고시원의 추억'으로 정했습니다. 한때 인생 끝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지만 15년 가량 멀어지다 보니 '추억'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게 된 1.5평의 공간.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1) 고시원 생활 7년

(2) 돈 있으면 나름대로 자부심

(3) 돈 떨어지면 지옥

(4) 감옥은 어떨까

(5) 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고시원 생활


순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고시원 생활 7년


얼추 계산해 보니 7년 꽉 채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대략 6년 반 조금 더 되는 것 같네요.


제가 처음 고시원에 들어간 건 (한국나이로) 26살 때였습니다. 당시에 사법시험 2차를 보고 한참 놀 때였죠.


그 전까지는 나름 원룸에 살긴 했습니다. 집안사정이 생겨서 그 원룸에 살 수가 없게 되었고, 일단 가장 저렴하게 버틸 수 있는 곳을 찾아 신림2동 언덕길을 올라갔고 월세15만원짜리 방에 들어갔습니다.


뭐, 처음에는 버틸 만 했습니다. 곧 2차시험 탈락 통보를 받고 군대에 가야 했을 뿐.


27살에 군대 갔습니다. 하필 '스티브 유'(동양 이름 유승준)와 비슷하게 2002년 2월에 입대하라고 영장 받았었네요. 스티브 유는 보증 서 준 공무원들에게 빅엿을 먹이고 엄웨리커로 빤쓰런 했지만 저는 그냥 군대 끌려갔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허허허.


(법조인 중에는 '스티브 유를 용서할 테니 한국 들어오게 해 줘라.'는 사람들이 꽤 있고 실제 판결도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딴 용서 없습니다. 스티브 유 사건 전후로 군대 끌려갔던 4050 아재들은 거의 다 비슷할 거예요. 한국 땅에 발 들였다가 뒤통수에 칼 도끼 망치 등등이 작렬하면 그건 알아서 하시고.)



아무튼, 그렇게 군대 갔다가 29살에 전역하고 나니... 그냥 계속 고시원 살아야 했습니다. 학교도 다녀야 하고 고시공부(를 가장한 게임방 폐인생활)도 계속해야 하니까 밤에 잠 잘 방은 있어야 하잖아요.


뭐, 이 때에도 살 만 했습니다. 군발이 정신이 남아 있었던지 고시원 방 안에서 팔굽혀펴기 150개씩 하기도 했구요. 여름에 그 정도로 운동하면 고시원 방이 땀으로 흥건해지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30살 때 고시공부를 그만두고 덜컥 취직을 했었습니다. 솔직히 법조인 되어 봐야 별 거 없을 것 같고, 적당히 회사 들어가서 적당히 월급 받고 적당히 집 사면 적당히 괜츈한 인생 될 거라고 생각했었죠. 적당한 회사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회사원이 되긴 했는데... 그냥 고시원에 살았습니다. 고시원이 딱히 불편할 건 없었거든요. 사회 초년생 때 돈을 모아야 한다는 인식 같은 게 있어서 월세 비싼 곳으로 가는 게 돈 아깝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심지어 이 때 '더 열악한 고시원'으로 옮겼습니다. 월세15만원짜리 고시원 건물이 리모델링 들어간다고 해서 이사했는데, 신림2동 언덕 꼭대기에 있는 월세10만원짜리 고시원으로 옮겼었어요.

(이후 11만원으로 올랐고 인터넷사용료라면서 1만원을 더 받아 총 12만원을 내긴 했었습니다만, 일단 들어갈 때에는 월세10만원이라고 하더군요.)


월 12만원 내는 언덕 꼭대기 고시원. 거기서 4년 넘게 살았습니다. 35살이 될 때까지 살았었네요.


월세 15만원짜리에 약 2년 반. 월세 12만원짜리에 4년 조금 넘는 시간. 저는 그렇게 '고시원 생활자'로 살았었습니다.



(2) 돈 있으면 나름대로 자부심


고시원에 오래 살았는데, 의외로 대부분의 기간은 괜츈했습니다. 특히, 첫 직장에서 월급 받고 ~ 퇴사해서 저축한 돈이 있는 동안에는 괜찮았어요.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와이프랑 자주 하는 얘기로 [돈 있는 사람이 아끼는 것은 쉽습니다.] 알짜배기 부자들은 고오급 승용차 / 명품백 등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요. 자산 천억원대 중견기업 회장님이나 사모님도 사는 건 일반인과 별 차이 없습니다. 굳이 돈 써서 본인의 자존심을 보완할 이유가 없거든요.


제가 첫 회사 다닐 때에는 나름 신입 치고는 많이 받는 편이었습니다. 당시에 중국주식 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저축한 돈이 약 +40% 가량 늘어나기도 했어요.


이 때 고시원에 사는 건 나름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0~20명이 공동으로 써야 하는 샤워실, 화장실, 세탁기 등등 모두 자랑스러웠습니다. "나는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면서 돈 착착 모으는 사람이야!'라는 자부심이 넘쳐났습니다.



1년9개월 만에 첫 회사를 때려치우고 고시생을 가장한 백수로 살 때에도 나름 돈이 있는 동안에는 고시원 생활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월세 12만원보다 몇 배 많은 돈을 PC방에 꼬라박았지만 그래도 자부심은 유지되더군요. "남자 혼자 사는데 뭔 원룸이냐. 고시원도 행복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사 때려치운 지 3년이 다 되어 갈 때. 결국 모아 놓은 돈을 다 써 버리고 말았습니다. 회사생활 동안 모았던 돈은 봄날에 눈 녹듯 사라져 버렸고, 남은 것은 35살 나이에 땡전 한 푼 없어서 부모님께 긴급지원을 요청해야 하는 늙다리 고시생(을 가장한 게임백수) 뿐이었습니다.



(3) 돈 떨어지면 지옥


돈이 떨어지는 순간. 30대 중반에 유일하게 붙들고 있었던 자부심이 녹아내리는 순간.


고시원은 지옥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나 자신을 파먹어 들어가는 무덤이었습니다.


화창한 봄날. 한국나이 35살의 고시생은 하루에 20시간씩 잠을 잤습니다. 깨어나면 하루 밤을 꼬박 새기도 했지만 다시 잠들면 20시간 이상 자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야 한 끼 덜 먹거든요.


아니, 정확하게는 한 끼 밥값을 아끼려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겁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고 잠시 꿈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겁니다.



어느 날인가, 고시원 벽에 걸려 있는 넥타이를 봤습니다. 3년 전에 회사로 출근할 때 목에 둘렀던 넥타이. 푸른색 넥타이.


그 넥타이가 눈에 후욱 들어왔습니다. 넥타이를 다시 목에 걸고 고리를 만들어 문 손잡이에 매달고 뒤로 드러눕는 상상을 하게 되더군요.


순간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높은 건물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고서 편안함을 느낀 후 거대한 공포에 부들부들 떠는 것처럼, 좁은 고시원 단칸방에 있던 35살의 고시생도 큰 공포를 느끼고서 전율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부터 취직 자리를 알아봤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저에게는 '1년9개월 경력'이 있었습니다. 완전 쌩신입은 아니라서 그나마 면접 보러 오라고 하는 회사가 있더군요. 신입 때보다 -30% 깎인 연봉에 근무환경은 블랙기업 그 잡채였지만 아무튼 다시 취직했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오늘의 주제와 무관하니 이 글에서는 아주 짧게 요약하겠습니다. 재취업한 지 얼마 안 되어 결혼했고 와이프 덕분에 경기도 2주택자가 되었다는 정도? 고시원 생활자 시절보다는 훨씬 낫죠.



(4) 감옥은 어떨까


얼마 전, 한때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1.5평짜리 독방에 갇혀 있다는 식의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에어콘이 안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 기사를 본 제 생각은... '고시원이랑 비슷하잖아?'


뭐, 대통령 내지 영부인이었던 사람들은 고시원에 살아 본 적이 없을 겁니다. 특히 신림2동 언덕 꼭대기에 있는 월세12만원짜리 고시원은 더더욱 살 일 없었겠죠. 한때 고시원 생활 코스프레 하다가 '피해호소인'이라는 유명한 헛소리를 유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권변호사 출신 선출공무원도 12만원짜리 고시원에 살지는 않았었구요.


저는 감옥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만, 제가 살았던 고시원은 감옥 독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감옥 독방은 방 안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으니 더 좋겠죠. 냄새...는 좀 거시기 하겠지만.



다시 고시원 생활을 할 일은 없고 감옥에 갈 일도 없습니다만, '적절한 보상'으로 제 가족이 잘 될 수 있다면 한번쯤 감옥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제 가족이 잘 된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다는 거고, 가족이 망가질 상황이라면 절대 감옥 가면 안 되겠죠. 독하게 낙엽처럼 착 달라붙어서 직장생활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 게 '헬조선 회사원'이죠.



(5) 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고시원 생활


현실 고시원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제 소설 속 인물들도 가끔 고시원 생활을 합니다. 주로 '밑바닥부터 다시 기어 올라오는 주인공'을 묘사할 때 고시원 설정을 이용하곤 하죠.


소설 속 인물 중 처음으로 고시원 생활을 한 건 [네안데르탈 : 각성차원의 지배자]에 나오는 주인공 '강건타'입니다. 고딩 때 부모님을 모두 잃고 야간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하며 법학대학을 다니고 있는 성실한 캐릭터인데, 얼굴이 겁나 못생겼어요. 그래도 심성은 착합니다.


두 번째 고시원 생활자는 [~그녀들] 시리즈의 주인공 '강태근'입니다. 강할 강 클 태 뿌리 근. 뿌리가 아주 크고 강한 남자(...)입니다. 작중 별명은 '한뿌리'.


원래 태근이는 중산층 집안의 외아들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미국에서 자리잡고 잘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녀들 시리즈 2편까지는 태근이에게 생활비도 팍팍 보내 주고 수도권 원룸도 얻어 주며 중산층의 삶을 보장해 줬었죠. 주인공이 군대 갔다오고 3편 시작하면서 경제사정이 어려워졌을 뿐.


적절히 잘 살다가 갑자기 고시원으로 밀려나고 생활비도 직접 벌어야 하는 상황. 태근이는 꽤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나름 현실에 적응합니다. 3편 말기에는 하렘(!)도 복구하고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서 원룸으로 이사하죠. 해피엔딩...일까요?


(참고로 위 두 작품은 모두 19금입니다.)



앞으로 제가 쓸 소설에도 '고시원 생활자'들이 등장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당장은 힘들지만 그 고난을 극복하고 나면 한층 더 단단해지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줄 겁니다. 15년 전에 고시원 생활자였던 작가 본인의 경험을 살짝 반영하겠죠.


고시원의 추억. 과거 한 때는 스스로 목을 메는 상상을 할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이제는 추억(追憶)이라 부를 수 있게 된 기억.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암세포도 생명이야! - 암세포의 소설적 활용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