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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Oct 27. 2024

오빠 생각

  하얀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꽃잎들이 순풍을 따고 날리는 초봄. 연한 새싹들은 수줍게 고개를 조금씩 내밀고 태양 바라기를 하고 있다. 오빠 농장 옆에 개울물 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송사리가 헤엄치고 파릇파릇 돌미나리가 돋아나 있다.


  봄볕은 적당히 따뜻해 까만 밤을 하얗게 새운 몸은 노근 해 몽환적 환상을 일으킨다. 만개한 매화 꽃잎이 눈처럼 날린다. 이렇게 미치도록 좋은 봄날에 오빠는 무엇이 그렇게 바빠 겨우 환갑을 넘기고 갔을까. 아무리 소풍 가기 좋은 봄날이라도 가족에게 인사도 없이 그리 급하게 갈 것은 없지 않은가. 영구차가 오빠의 손때가 묻은 농장에 도착하자 어디선가 “왔냐.”하는 오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각가인 오빠는 나와는 3살 차이로 성격이 온화했다. 엄마가 일찍 떠나시고 오빠는 나에게 아빠였고, 엄마였고, 친구였고, 보호자였다. 까칠한 누이동생에게 오빠 소리도 제대로 못 듣고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온갖 투정과 떼를 다 받아줬고, 영원히 변하지 않은 부하 노릇을 자처했다.


  누이동생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혼자 울고 말지, 여동생을 때리거나 구박하는 일은 없었다. 어딜 가나 상항 내 곁에는 오빠가 있었다. 언젠가 내가 물었다. “오빠는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못살게 구는데도 왜 한 대도 때리지 않았냐”고. 말수가 적은 오빠는 딱 한마디 했다. “때릴 때가 어딨다고 보기만 해도 아까운데 동생을 때리느냐”고.


  난 늘 오빠와 놀았다. 팽이치기, 연날리기, 구슬치기, 자치기, 딱지치기를 하며 오빠 친구들과 남자들이 하는 놀이를 했다. 내 성격이 남자 같은 것은 오빠의 영향이 크다. 오빠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 따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6남매였다. 엄마가 아파 젖을 얻어먹지 못해 둘째 남동생이 아기 때 가고, 5남매가 되었다. 그중 셋째인 나는 위로 언니 오빠와 밑으로 남동생 여동생이 있다. 오방 중에 중앙이라 동, 서, 남, 북이 튼튼하게 지키고 있어 무서울 것이 없었다. 덩치가 큰 아이들한테 겁 없이 덤볐던 것도 언니 오빠가 뒤에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그 한쪽이 무너져 내려 쓰나미보다 더한 것이 밀려오는 것 같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함께해 언제든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오빠의 부고를 받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고, 숨이 콱콱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 남의 죽음을 보는 것도 마음 아픈데, 가족의 죽음은 언제나 큰 고통과 슬픔을 남긴다. 살면서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가 없다.


   오빠의 몸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작은 항아리 속에 들어가 있다. 이제는 누이동생의 떼를 받아주지 않아도 되니 안심하고 떠난 것은 아닌지. 정신적 지주인 오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 억장이 무너지고 고통스러워 눈물이 멈추지 않는데, 이놈의 봄날은 장례식 내내 더럽게도 좋다. 매화 꽃잎 따라 봄 소풍 떠난 오빠, 부디 엄마 아빠 만나 편히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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