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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준비 된 부모

by tangerine

노후 준비가 된 부모만큼 든든한 건 없다.


나는 일찍이 양가 조부모님들 때문에 고생한 부모님을 지켜봐서 노후 준비 안 된 부모를 케어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나의 조부님 들은 모두 70, 80, 90대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재산이 꽤 있으셨음에도, 국민연금이 잘 되어 있지 않으셨어서 돌아가실 때까지 4명의 자식들에게 각각 40만 원~60만 원을 용돈으로 받아 노후에 생활을 하셨다.

가진 현금은 무서워서 예금에만 두며 30년 넘게 쓰시고, 살고 있는 집은 죽어도 팔지 않겠다고 고집하셨기 때문이다.


그 팔지 않은 집이 강남에 있었거나, 개발이라도 되는 입지였다면 그 효과가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할아버지의 집은 구입했을 때 보다 몇억 정도 올랐다.


그래도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그 아파트를 4명의 자녀들이 균등하게 나눠 상속받았다.


아빠의 부모님들은 노후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매일 싸웠다. 원래도 사이가 안 좋았지만, 병원비에 약값에 수술비까지 들어가게 되자 할머니 할아버지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매일 같이 싸웠다. 둘은 결국 이혼했다. 물론 시댁의 준비되지 않은 노후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둘의 절대 섞일 수 없는 성격에 더해, 그저 자식들에게 폐가 될 까봐 연락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는 엄마의 부모님과, 아들 부부에게 바라는 것 많은 아빠의 부모님의 성향 차이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나와 남편은 이런 불행한 일을 막기 위해서 결혼 전부터 약속을 했다.


양가 부모님에게는 매달 용돈을 드리지 않는다.


부모님이 금전적으로 도와주시면 감사하게 받고, 그 돈을 써버리지 않고, 잘 투자를 해서 우리 노후 준비를 탄탄하게 하자.


부모님이 미래는 생각 안 하고 몇만 원, 몇십만 원의 돈을 당장 쓰면서 믿는 구석을 우리로 생각하신다면 나중에 병원비 드릴 필요 없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쓰시는 건지 확인하기로.


양가 부모님이 우리 결혼 이후부터 피부과에 돈을 쓰고, 장신구나 고가의 옷 같은 곳에 돈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서 의미 없는 술을 마시고, 어리석게 투자를 해서 돈을 날리고, 필요 없는 물건을 계속 사고, 해외여행을 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번 밥을 사면서 사시는 건 나중에 우리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만큼 노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니, 나중에 병원비를 달라고 하셔도 드리지 않겠다고.


부모님이 가진 부동산부터 금 붙이 까지 팔아서 알아서 하시라고 할 것이다. 젊을 때 쓰고 싶다고 다 쓰며 사셨으면, 그 책임은 본인들이 지셔야 한다:


나와 남편은 부모님들의 믿는 구석이 될 생각이 없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양가 부모님 중 누군가의 믿는 구석이 될 생각이었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다.

부모님 중 누구라도 자녀에게 노후에 기댈 생각이라면, 그 자녀를 결혼시켜서는 안 된다.


자녀가 결혼도 했으면 좋겠고, 아이도 낳았으면 좋겠고, 자녀의 배우자가 그러면서 일도 했으면 좋겠고, 내가 해주는게 별로 없더라도 나한테 살갑게 대하면 좋겠고, 주변 다른 노후 준비가 된 사람들처럼 돈도 쓰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은데, 명품도 좀 갖고 싶고.

사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 10개를 전부는 못 사더라도 그중 한 개는 죽어도 사고 싶어서 주변 친구들이 가진 것보다는 더 저렴한 몇 만 원 몇 십만 원짜리를 사며 ‘얼마 안 하니까!’라고 정신 승리하다가, 그러다 노후에 돈이 없으면 그때는 자녀가 날 혹여 죽게 내버려두겠어? 어찌 저찌 돈 구해다 주겠지 그 정도는 버는 애고, 그 정도는 요구할 만큼 난 내 자녀를 멋지게 키웠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현재 가진 돈을 아까운 줄 모르고 쓰는 철없고 분수 모르는 부모는


우리 아빠의 부모님으로 충분하다.


돈 쓸때 제일 행복해 보이는 부모. 늘 몇 만원이라도 쓰고 싶어 안달난 부모.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부러워 하는 부모. 그런 부모가 노후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자녀는 부모에게 경고해야 한다.

늙고 아파 더이상 돈을 벌지 못할 때를 대비해 지금 번 돈 한푼이라도 더 미래로 보내 놓으라고.


우리 아빠는 형제가 4명이었고, 나는 2명, 남편은 외동이다. 옛날과는 쪽수가 다른 자식들에게 부모님이 기댄다면 자식들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우리 부부는 딩크이지만, 아이를 낳지 않아서 생기지 않은 지출을 부모님에게 쓸 생각으로 딩크를 하는 건 아니다. 우리의 재산은 우리의 노후 자금이고, 우리가 현재 참고 인내해서 불린, 우리가 미래에 써야할 노후자금을,

젊은 시절 대책없이 돈을 쓴 부모님에게 드릴 생각은 없다.


우리 아빠는 원래 효자였고, 본인의 엄마를 매우 사랑했었는데, 할머니가 자식의 돈은 쉽게 생각하며 늘 그 몇만 원, 몇십만 원, 몇백만 원은 그냥 네가 내줘~라는 식으로 나오자 돌아가실 때는 할머니만 생각하면 한숨을 쉬었다. 할머니는 본인 분수를 생각 안 하고 늘 잘 사는 집 여자들과 본인을 비교하면서, 그 여자들이 하는 것의 반의 반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셨다.


그렇게 살다가 나이 들어서 요양원에서 3년 계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와 형제들 중 그 이후로 할머니를 존경하거나 그리워하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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