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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 Mar 04. 2024

전역 실패

또 다른, 그리고 이어진 삶의 시작

5년 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어 호기롭게 전역지원서를 제출했으나, 육군 본부 5년 차 전역 심사에서 반려되었다. 

다른 동기들처럼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었기 때문일까?,  군에 대한 스트레스를 스스로 견뎌내 버리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기대지 않은 탓일까? 주어진 임무에 항시 충실하고 신독의 자세를 줄곧 견지해 버린 탓일까? 누구에게 질문하기 조차 조심스럽고 답을 궁금해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나 싶기도 하나,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5년 간의 생활이 마침표가 아닌 쉼표가 되어버린 이 변덕스러운 우연에 몹시 당혹스럽다. 아직 몸과 마음이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 하였지만, 어쩌면 좀 더 나은 길로 인도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해본다. 

삶과 당면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어떠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삶을 대하는 정당한 태도일 것이라 생각해 왔으나, 무의미도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다소 희망적인 생각으로 자위해 본다. 주어진 소명에 한 없이 감사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찬찬히 하루를 경험한다면 원하는 이상향에 한 걸음 더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과거와 미래를 엉성하게 이어주는 지금 이 순간을 한탄하기에는 남은 삶이 아직 찬란히 많다. 스스로에 대한 불친절과 눈앞에 놓인 나태를 불용하는 것이 오늘과 내일의 영원한 숙제일 듯 하나 나의 무가치함을 끝까지 허용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그리고 이어진 삶의 시작에 겸허히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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