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의 무술 주짓수
2023년 여름 강원도 양양에서 벼락사건을 겪었다. 강원도 설악해변에서 캠핑을 하기 위해 텐트를 설치하고 한창 신나게 서핑을 하고 있었다. 흐릿한 하늘에서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가닥씩 내리던 빗방울은 이내 시야를 가릴 만큼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선 천둥번개가 쳤다. 나와 친구들은 천둥번개를 피해 퇴수 했다. 그러나 여전히 바다엔 파도값으로 목숨을 지불한 사람처럼 파도를 기다리며 떠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는 폭풍이 몰아치듯 더욱 거세졌다. 서핑샵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해변으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나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텐트에서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샤워를 하기 위해 서핑샵으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쾅!!!" 서핑샵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고막을 찢을듯한 굉음이 들렸다.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나는 순간 폭탄이 떨어진 줄 알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한껏 수그렸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소리는 처음이었다. 몇 초가 지나고 해변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벼락 맞았나 봐!!"
나는 놀라서 다시 텐트로 뛰어갔다. 그곳엔 함께 온 여자친구와 반려견 오싱이 있었기 때문이다. 텐트로 들어서자 놀란 얼굴을 하고 서있던 여자친구가 얘기했다.
"오빠 나 벼락 맞았어"
"뭐라고?!"
이때까진 장난인 줄 알았다. 벼락 맞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서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벼락소리에 놀라서 한 얘기인 줄 알았다. 서둘러 필요한 짐만 챙기고 여자친구와 오싱을 데리고 서핑샵 안으로 피했다.
조금 진정이 된 여자친구에게 들으니 해변에 있는 서핑보드를 가지러 가는 중에 순간 눈이 번쩍하며 뒤로 쓰러졌다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여자친구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쓰러졌다가 일어났다고 한다. 놀라서 떨고 있는 여자친구와 오싱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살펴보았다. 벼락이 해변으로 떨어져서 그곳에 앉아있던 사람뿐 아니라 해변 위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감전됐던 것이다. 벼락이 떨어진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심폐소생술을 하며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하였고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태우고 그곳을 떠났다. 당시 그곳의 분위기는 공포 그 자체였다.
다음 날 친한 관장님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전 날 SNS에 올린 영상을 보고 내가 강원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전화한 것이다.
"관장님 강원도에 계시죠?? 어제 벼락 떨어진 거 알고 계세요??"
"네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정말요?! 그때 벼락 맞고 돌아가신 분이 OO사범님이랍니다.."
"네!? 뭐라고요!?"
전 날 벼락에 맞아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네트워크의 사범님이었고 몇 번 만나 인사도 나눈 사이었다. 평소 사적으로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다 보니 그곳에 계신지도 몰랐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충격에 말을 잃었다. 30년 넘게 살면서 벼락에 맞았다는 말을 해외 뉴스에서나 접해봤지 실제로 눈앞에서 겪고 심지어 피해자가 지인이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눈앞에서 목격했지만 모두 거짓말 같이 느껴졌다.
인천으로 운전하여 돌아오는 3시간 동안 차 안에는 나와 여자친구, 오싱뿐 아니라 말도 설명하기 힘든 감정도 함께 타고 있었다. 벼락이 떨어진 위치는 퇴수 하며 지나왔던 그 위치였다. 몇 분 그 간발의 차로 우린 살아남은 것이다. 서핑을 취미로 하며 몇 년간 매주 양양을 다녔던 나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체육관 운영이 힘들어져 한동안 양양을 가지 못 했었다. 여러 고민거리와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어 오랜만에 무리하여 떠났던 양양에서 그 일을 겪은 것이다. 양양으로 향할 때 가지고 있던 나의 고민들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하찮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온 후 며칠 동안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처럼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온종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벼락을 맞은 게 만약 나였다면 지금 내 생이 여기서 마감한다면 나는 그동안의 삶이 만족스러울까? 이러한 생각들조차 죽음 앞에서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끌어당김의 법칙일까? 진부하게 느껴졌던 철학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니체를 만났고 니체의 철학에 빠지게 되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사랑하라',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이 두 문장은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다. 매일 하루를 온전히 다 느끼며 살아가려고 했다. 당근마켓에서 중고 오래된 카메라를 구입하여 밖에 나가 그동안 매일 보았지만 보지 않았던 것들을 찍었다. 집 앞에 자라난 이름 모를 풀, 동네 산책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노을에 비친 노부부, 학익진을 펼치며 헤엄쳐가는 오리들 등...
그리고 아라뱃길 강 건너로 넘어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바라보았다. 항상 건너편을 바라보며 강 건너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강 건너로 넘어와 바라본 나의 동네도 너무나 예뻤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나의 삶을 바라보았다. 강 건너에서 내 삶을 바라보는 제삼자라면 내 삶을 바라보며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내린 나의 결론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10년간 운영하던 체육관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은 제주도에 내려와 인생 2막을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명상과 마음공부를 하며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주짓수라는 도구를 통해 몸으로 하는 명상을 알려주고 있다.
주짓수는 알아차림의 무술이다. 주짓수는 몸으로 하는 명상이다. 명상은 알아차림이다. 나는 주짓수를 통해 명상을 배웠다. 이 장에서는 주짓수를 명상의 도구로 사용하는 법을 얘기하려고 한다. 나도 이것을 알기 전엔 주짓수는 곧 삶이라는 많은 주짓수 대가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또한 주짓수가 유술이라는 말도 주짓수를 명상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와닿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