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도에 내려와 주짓수 체육관을 새롭게 오픈했다. 체육관 이름은 'Jiujitsurf Academy'다. 주짓서프는 주짓수와 서핑을 합친 말이다. 체육관에 오면 누가 봐도 서핑하는 주짓수 관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인테리어로 내가 타던 서핑보드들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체육관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관장님이 서핑을 좋아하셔서 주짓서프 아카데미라고 지으신 거예요??" 그럴 때마다 진지충이 될까 봐 그렇다고 대답하곤 한다. 하지만 이 주짓서프라는 이름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매트 위에서 도복을 입고 구르는 주짓수와 파도 위에서 슈트를 입고 보드를 타는 서핑 사이엔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엔 내가 찾은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주짓수와 서핑 둘 다 '불확실성에 저항하지 않고 즐기는 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주짓수는 내게 어떤 공격을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대방을 항상 상대해야 한다. 주짓수를 수련하는 사람은 서로 완전히 똑같은 기술을 구사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주짓수엔 '백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개의 주짓수가 있다'라는 말이 존재한다. 주짓수인들은 다른 팀에서 진행하는 '오픈매트'(주짓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운동에 참여하는 모임)에 참석하며 이러한 불확실성을 찾아다니며 즐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스파링을 통해 본인의 기술을 테스트해 보고 새로운 기술을 겪으며 성장해 나간다.
서퍼들은 바다라는 불확실성에 뛰어든다. 단 한 번도 똑같은 파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는 매번 서퍼들을 테스트한다. 마치 '네가 이 불확실성 위에서 얼마나 즐기는지 보겠어'라고 하는 것 같다. 서퍼들은 매번 다른 파도 위에서 파도가 만들어주는 길을 따라간다. 아무리 잘 타는 서퍼도 파도의 언어를 잘 못 읽으면 더 이상 서핑을 이어가지 못하고 떨어진다.
이렇듯 주짓수와 서핑은 불확실성에 저항하지 않고 즐기는 법을 찾았다. 많은 주짓수인들이 서핑을 즐기고 서퍼들이 주짓수를 즐긴다. 주짓수 월드 챔피언 마커스 '부셰샤' 알메이다 선수는 주짓수를 수련하는 시간보다 서핑하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할 정도로 서핑에 진심이다. 나는 위에 말한 공통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본인도 모르게 주짓수와 서핑에 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짓수를 몇 년 정도 수련했을 때도 해외의 유명한 주짓수 지도자들이 "주짓수는 삶이다"라고 말할 때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서핑은 삶과 닮아있다"라고 얘기하지만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둘 다 각각 상대방, 파도라는 불확실성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자 그제야 주짓수가 삶이라는 말이, 서핑이 삶이라는 말이 공감되기 시작했다. 삶은 우리를 불확실성이라는 디스코팡팡 위에 올려놓고 마구 흔들어댄다. 이때 애써 중심을 잡으며 저항하면 삶은 우리를 떨어트리려 더 강하게 흔들어댄다. 우리가 손을 놓치고 떨어져 다시 봉을 잡고 매달려도 기다려주지 않고 다시 떨어트리기 위해 더 강하게 흔든다. 이렇게 저항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숙련된 직원은 격하게 흔들리는 디스코팡팡 위에서 안정감 있게 걸어 다니고 심지어는 백텀블링을 하기도 한다. 디스코팡팡 위에서 즐기는 법을 배우고 연습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삶이 던져주는 불확실성에 저항하며 살 것인지, 즐기는 법을 배우고 즐기며 살 것인지. 나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주짓수와 서핑을 통해 삶에 저항하지 않고 즐기는 법을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Jiujitsurf Academy라는 이름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