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1화) 아들의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여자

by 피닉스

야, 이 c8 년아. 거친 쌍욕이 무거운 공기를 찢음과 동시에 나의 머리채는 속수무책 그의 손아귀에 낚아 채인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무자비한 발길질이 허리와 허벅지를 가격하고 더욱 거세게 힘을 주어 당기는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이미 나의 머리칼이 한 움큼 뽑혀 엉켜 붙어 있다. 머리가죽이 얼얼하고 감각이 둔해지면서 머리채가 통째로 뽑힐 것 같은 통증보다, 구역질 나게 치욕스러운 기분보다 더 두려운 건 가슴속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꿈틀거리는 생존 본능이다.

이럴 때는 나의 입에서 욕설이라도 튀어나오면 그를 더욱 자극시키는 행위므로 이런 개망나니 짓거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멈추게 하려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집에 키우는 개돼지한테도 이런 잔인한 짓을 하는 놈은 없을 것이다. 낳고 키워준 어미한테 이런 잔혹하고도 배은망덕한 짓을 서슴지 않다니.. 순간 하늘로 치솟는 수치심과 함께 이런 개망나니 같은 자식 놈을 죽여버리고 나 또한 이 구차한 삶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뇌리를 장악함과 동시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러다가도 10초도 안돼 이런 생각 자체가 무슨 천벌 받을 짓인가 싶고, 그래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소중한 자식인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죄인이다 싶어 심장을 난도질당하는 기분이다.


아무리 세상을 한탄하고 죽고 싶다는 말이 평소 입버릇처럼 나와도 막상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이 닥치면 살고 싶어 진다는 게 더 견딜 수 없는 치욕으로 꿈틀댄다. 이미 눈깔이 돌아버리고 이성을 잃은 아들놈한테 "시후야. 이러지 마라. 말로 해 이손 좀 나봐."라는 절박한 소리가 목숨을 구걸하는 버러지 같다는 생각에 나를 죽이고 싶도록 경멸스러워진다.


그놈의 발길질에 무자비하게 당할 땐 마치 영화 속의 장면인 듯한 착각마저 들고 안갯속을 헤매듯 비현실적이 다. 제정신 모드로 이 기막힌 현실을 바라보기엔 견딜 수 없기에.. 하지만 이 비현실 속에 담근 몸을 재빨리 빼야 한다. 그 길에 안주할까 봐, 이런 것에 무감각해져 당연하게 받아들여질까 봐 그것이 또 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 숨통을 옥죄어 다.

시후는 늘 사소한 것에서부터 광적인 발작을 일으킨다. 오늘도 밥 먹다가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했다. "다음에 사줄게. 아니 너 스스로 나가서 사 먹어. " 그 말에 기어이 폭발해 버리고 만다. 변두리로 이사 온 후로는 배달음식을 잘 못 시켜 먹었다. 멀기도 하고 같은 방향의 집을 두세 군데씩 묶어서 오는데 수요가 없다 보니 꺼려하는 눈치여서 될 수 있으면 직접 매장을 가서 시켜 먹곤 한다.

평소엔 자극적인 말에만 격한 반응을 하던 아들이 이제는 잠자다가도 혼자서 격분해서 발길질을 하고 침대에서 나를 떨어뜨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는 게 일상화된 지 오래이다. 집에 전자제품이 멀쩡한 것이 없을 지경이다. 선풍기도 몇 번 집어던지더니 장롱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기어이 선풍기 목이 두 동강 나고 만다.


우리 부부는 족발집을 운영한다. 내가 새벽 1시쯤 퇴근하면 뒤에 남은 남편이 마무리를 하고 집에 도착하면 새벽 3시쯤 된다. 가끔 바쁠 때면 4시도 된다. 남편이 늦게 잠자리에 드는 만큼 곁에 누군가가 있으면 제대로 숙면을 취할 수 없어 나의 배려로 혼자 안방을 차지한다. 그러나 정작 이유는 따로 있다. 자다가 혼자 고함을 지르거나 난폭해져 폭력을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는 시후 때문에 이웃집에 피해 주는 것을 제지하기 위해 내가 고안해 낸 특단의 조치로 시후와 내가 한방을 쓴다. 처음에는 시후와 내가 안방을 사용하고 작은방을 남편이 사용했었다. 그러나 창문을 열면 바로 뒷집이 마주 보고 있어 소음이 새어나갈걸 우려한 나와 아들이 부득이하게 다른 쪽으로 창문이 난 세평 남짓한 작은방으로 옮겼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웃에 피해 주는 것에 극도로 예민한 우리 부부이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편이다. 시후 때문에 창문을 꽁꽁 닫아도 시골 마을 특유의 고요함은 소리의

파장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아파트 층간소음을 우려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급 아파트를 팔고

변두리의 주택을 사서 이사를 한 지 1년 남짓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발로 방문을 차거나 바닥을 물건으로 내리치는 틱장애까지 생겨 아래층으로부터 제지를 받고는 불안증세에 시달리다 아파트를 떠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격한 틱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인터폰과 전화벨이 번갈아 요란스럽게 발작한 적이 있었다. 아들을 씻기거나 뭔가를 하고 있어 인터폰이나 전화를 미처 받기도 전에 끊어져 버렸다. 아마도 경비실을 통한 아랫집에서 온 전화인 듯했다 내가 일하러 갔을 때도 발로 방문을 몇 차례 차는 중에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렸다했다.


그 둔탁한 소리가 마치 공사현장에서 나는 드릴이나 망치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서 양심상 모른 척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오후쯤 아래층 집 초인종을 눌러 위층이라 했더니 젊은 여자가 나왔다. 그전에 오 가며 인사 정도 하고 지내는 사이인지라 먼저 사과부터 드렸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해요. 며칠 전에 전화하셨죠? 저희 아이가 틱장애가 있어서 통제가 불가능해요. 그러니 이해 좀 해주십사 하고 부탁

" 했더니 의외로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으로 "아 그렇군요. 제가 전화는 했어요.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그런데 예전에는 조용하던데 한 2주 전부터 좀 시끄럽더라구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최대한 불쌍한 티를 내며 내가 덧 붙였다. "우울증이 심해지더니 최근에 틱 증세가 나타났어요.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집을 내놓았으니 조금만 참아 주세요." 아래층 여자와는 서로 얼굴 붉힘 없이 대화가 순조롭게 마무리 됐다.

이참에 아예 조용하고 한적한 전원주택을 알아보기로 하고 남편과 나 시후 셋이서 나는 대로 교차로 신문에 나와 있는 부동산 위주로 전원주택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집을 보러 다니는 틈틈이 우리 가족은 집 부근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산행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된 지 오래이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적인 질병엔 운동이 좋다고 들었다. 더구나 자연인처럼 자연을 가까이 끼고 살아가는 생활이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는 정신과 의사에게서도 유튜브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전망이 좋으면 교통이 불편하고 교통이 좋으면 주변환경이 소란스러워 운명처럼 끌리는 집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3여 년을 물색한 끝에 찾은 집이 현재의 집이다. 거의 매일 승용차로 우리 셋이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허탕 치는 날이 많아지자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 혼자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틈틈이 물색해 찾은 보물 같은 집이다.


"지혜야 드디어 우리에게 꼭 맞는 집을 찾았어."어느 날 남편이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보내온 사진상에는 대문에서 길게 잔디길이 이어져 있었다. 하얀 철대문 안에서부터 잔디로 깔린 좁은 길이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고 양 옆으로는 각종 정원수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즐비했다. 그 미로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산책로가 현관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입구는 좁은 형태이나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이백여 평의 마당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집 역시 요술의 집처럼 지붕에 원뿔모양이 세 개나 솟아있는 점도 마음에 쏙 들어 탄성이 절로 나오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집이었다. 지금까지 몇 년을 쏘다녀 봤지만 이만한 집 구하기도 어렵다는 걸 충분히 온몸으로 체감했기에 놓치고 싶지 않아 일사천리로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도시의 집처럼 담하 나를 두고 손 뻗으면 좌 우 앞뒷집 사람과 악수할 정도의 협소한 공간도, 사소한 대화에도 옆집사람들이 들을까 봐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숨 막히고 무미건조한 도심의 주택가가 아니라서 좋았다. 또 시선 가는 곳마다 산과 들이 펼쳐진 시골과 도시가 공존하는 경계점이라 더 좋았다. 시내로 편입되기 전 옛날에는 농사꾼들이 모여 살던 시골동네라 주로 7-80대 노인세대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어디든 살아보니 장단점은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주민에게 관심가지는 시골 노인들의 특색 때문에 우리 가족이 타깃이 되곤 했다.

분노조절 장애, 조현병, 공황장애, 틱장애, 강박증, 대인기피증 온갖 정신병을 복합적으로 앓는 시후가 부모에게 부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한 달에 두세 번은 경찰이 출동하는 비극을 낳았다. 그 바람에 우리 집 사정을 어느 정도 눈치챈 동네 할머니들의 눈이 무서워 피해 다녔다. 산책 중에 부딪치면 어쩔 수 없이 인사를 드리지만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어느 날은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할머니 한분이 마주쳐 인사를 드렸더니 눈도 안 마주치고 저만큼 지나치는가 싶더니 고개를 휙 돌리시며 대뜸 "왜 사람을 피하네"라고 하셨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이던 찰나에 다른 할머니가 논에 가시는 듯 꽃무늬 몸빼바지에 장화를 신고 수레를 끌고 지나가다 나의 인사도 받고 두 할머니와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사실은 동네 할머니들을 자세히 본 적 없어 우리 동네 주민인지 아닌지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 동네 어귀에서 나오니 동네 할머닌가보다 할 정도였다. 동네의 주민들은 90%가 할머니들이고 할아버지가 두어 분 보였다.


그나마도 가까이서 뵌 적이 거의 없기에 할머니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 못 했다. 또 기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할머니들은 나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듯이 외지에서 들어온 40대의 젊은 사람은 우리 부부밖에 없고 다들 예전부터 살아오던 토박이 주민이기 때문이다. 동네 입구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옆에는 20 여호의 집이 게딱지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모여있고 왼쪽길 옆에는 우리 집 밖에 없어 평소에 부딪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동네로 들어오는 입구에 할머니들의 아지트인 정자가 있어 마트나 다른 볼일을 볼 때는 그 길을 통과해야만 하는 구조였다. 그 정자에는 눈비 오거나 추운 겨울 빼고는 많을 때는 20여 명 적을 때는 10여 명 정도의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차마 그 앞을 지나갈 용기가 안나 다른 길로 둘러서 갔더니 할머니들이 피해 다닌다고 수군거린 모양이었다.


야속했다. 내가 피해 다녔기로서니 자기네들한테 솔직히 피해준거라도 있나? 대 놓고 안 좋은 기색을 하다니.. 뭔가 내 처지를 변명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에 "죄송합니다. 아이가 정신적으로 좀 예민하고 과격해서 저도 모르게 자격지심도 있고.. 움츠려 들어서 피하게 되네요. 제가 못 죽어서 살아요. 그러니 이해 좀 해 주세요." 숨길 수 있으면 죽을 때까지 숨기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힘드니 알아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었고, 변명 아닌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나도 모르게 봇물 터지듯 뜨거운 액체가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렀다. 길바닥에 엉거주춤 선 채 어깨를 들썩이는 내 눈에서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억울함과 서러움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2화에서 계속..)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