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맞춰 3층 교실로 가니 교실은 텅 비워져 있고 조용했다. 마침 복도를 지나는 선생님께 3반 선생님을 뵈로 왔다고 하니 그 선생님이 복도 끝을 향해 "00 선생님 학부모님 면담 오셨어요." 하고 소리치니 금방 저쪽 복도에서 바짝 마른 체구의 중년 여성이 나타났다. 옆반 선생님이 맨발로 복도에 서있는 내게 친절하게 실례화를 챙겨 주셨다. 그런데 담임이라는 여자는 1미터 거리까지 좁혀졌는데도 눈도 안 마주치고 살짝 인상을 구기며 인사도 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오세요. 하며 교실로 안내했다.
들고 간 족발 봉투를 건네며 선생님 출출하실 때 동학년 선생님들과 나눠 드세요. 고맙다 말도 없이 노골적으로 불만 가득한 얼굴로 한숨인지 대답인지 모를 바람 새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몇 초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받을 생각이 없어 보여 교탁 옆에 살짝 놓았다.
아무리 마음에 차지 않는 하찮은 것이라도 학부모가 들고 온 성의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예의라고는 밥 말아먹은 이 여자가 올 한 해 30여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갈 시후의 담임선생이란 사실에 적잖이 실망스러웠지만 아이를 맡긴 을의 자리인지라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입을 삐죽이면서 하는 말이 "어머니 시후가 이번 중간고사에서 수학성적을 60점 받았어요."
"학원을 안 간다고 들었어요." "네 작년까지는 학원 안 보내도 전 과목 8-90점은 받아서 그렇게 뒤쳐지지는 않아 안 보냈어요. 아이가 원하지 않기도 하고 공부가 전부가 아닌데 초등 저학년부터 입시생처럼 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싶지 않아서요."
또 한숨을 푹 쉬며 시선은 딴 곳으로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 시후가 반 평균점수를 까먹습니다. 학교방침이 '낙제점수 제로 만들기'라 기말고사에서 낙제점수받으면 방과 후에 남아야 합니다." "그럼 남은 아이들은 따로 교육을 시키나요?" "아니요. 자율학습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점수가 안 되는 아이들이 문제를 풀지 못해서 남기는 거라면 푸는 방법을 친절히 가르쳐야지 붙잡아만 놓으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한마디로 정해진 수업시간 외의 업무는 연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알아서 학원을 보내라는 뉘앙스를 보냈다. "알겠습니다. 학원도 알아보고 신경 쓰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몹시 불쾌해 다시 가서 따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요즘 대부분의 선생들은 학생들 공부에는 신경도 안 쓰고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가 월급 받아먹고 본인들 편하려고 사교육을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그러기에 학원을 안 보내는 학부모를 외계인 취급하며 무시하는 경향이 다분히 있었다. 사교육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터져 나오지만 정작 공교육을 책임져야 할 교사가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하다 보니 학부모들이 너도 나도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경쟁적인 구조로 가고 있는 건,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나는 집에서 가까운 곳 위주로 몇 군데 영어와 수학학원을 돌며 상담을 받아봤지만 썩 끌리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우리 가게의 단골고객의 소개로 업계에서 실력 좋기로 유명하다는 영. 수 전문학원을 보냈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학원이었다.
학원을 보낸 후에 두어 번 더 학교에 수학 쪽지시험 문제를 못 풀어서 남은 적이 있었다. 학원에서 시후가 안 온다고 해서 학교에 전화를 하니 다 하교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시후한테 물어보니 학교에 남았었다고 했다. "남은 아이들이 몇 명이었어?" "다섯 명요." "선생님이 가르쳐 줬어.?" "아니요. 옆반 선생님이랑 얘기하며 놀았어요. 가끔 전화통화도 하고요." " 그럼 너희들은 뭐 했는데?" "문제 풀다가 모르겠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이게 공교육의 현실이었다. 소위 그들이 말하는 반 평균점수를 까먹어 쓰레기 취급당하는 낙제생들을 남게 하여 모욕을 주고 괴롭히고 방치하며 적당히 시간 때우면서 나라 세금을 축내는 작자들이란 현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 마음 같아서는 남겨서 가르치지 않을 거면 학원 갈 시간을 빼먹게 하면서 붙잡아 두는 이유가 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고 내성적인 시후를 더 벼랑 끝으로 내모는 행위라는 생각에 꾹 참았다.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격일수도 있기에 한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어제까지 멀쩡하던 시후의 몸에 열이 들끓고 힘없이 축 늘어져 도저히 학교를 보낼 수없어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수화기를 들었다 "선생님 저 시후 엄마입니다." 하니 대뜸 격앙된 목소리로 "와.. 와.. 와.. 연거푸 세 번이나 반말투로 내뱉는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에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자신이 아는 사람으로 잠시 착각했나?" 하는 불쾌하고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녀의 유리 긁는 목소리가 잠시 끊기는 틈을 타 시후가 몸이 좀 안 좋아 오늘 하루 결석해야 할 것 같아 전화드렸습니다." 했더니 갑자기 상냥한 말투로 변하더니 "네. 어머니 시후 몸조리 잘 시키고 푹 쉬게 하고 내일 보내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황당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불쾌한 언사에 깊이 신경 쓰기엔 나도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학원을 보낸 지 3개월이 경과한 어느 날 시후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오늘 선생님한테 칭찬 들었어요." "무슨 일로?" 오늘 기말시험에서 수학점수 100점 받았다고 잘했다고 말해주셨어요." 그래 시후야 잘했다. 학원 간 보람이 있구나. 너도 기분 좋지."네" 우리 시후도 열심히 하니까 되는구나. 머리가 나쁜 아이가 아니었어. 그날은 치킨과 피자로 기념파티를 열고 마음껏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내 마음 저 밑바닥에서 아이의 점수가 인성을 대변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가 되는 속물적인 엄마는 되지 말라는 각성의 소리가 들렸다. 또 마음이 여린 시후가 그동안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몇 차례의 호명과 다른 아이들과의 차별대우에 알게 모르게 모멸감과 자책을 느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 이 짠했다.
"시후야 엄마는 시후가 꼭 공부를 1등 하기를 원하지 않아. 공부보다 건강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 성장했으면 해. 학교에 남으면 네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로 인해 공부가 부담되고 의욕을 잃어서 행복하지가 않을 거야. 그러니 선생님 눈총 안 받을 정도의 기본만 충실하면 돼. 알았지?" "알았어요. 엄마"
물론 자식이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 선생님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고 나중에 명문대학을 가면 그보다 더한 보람과 기쁨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인생을 살아본 바로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세상 이치고 구조였다. 나의 예민한 성격을 그대로 닮은 시후는 별것 아닌 남의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 터라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거나 인정받기 위해 에너를 쏟는데 신경 쓰는 바람에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해 상처로 곪아 터질 수 있는 상황을 간과할 수 없었다.
시후는 그 후로 별 탈없이 성적도 상위권으로 안정적이었고 5학년을 거쳐 6학년이 되었다. 조용한 성격이라 크게 눈이 띄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통해 학부모 "참관수업"에 참석 여부를 물어왔다. 초등학교 마지막해이니 큰맘 먹고 참석을 하게 되었다. 교실 맨 뒷좌석에 10여 명의 학부모들이 앉아서 수업모습을 참관했다. 그런데 수업 내내 시후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업하시는 선생님과 칠판을 응시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수업을 마무리했다. 거리가 있어 고개 좀 들라고 말도 할 수없어 나 혼자 안절부절못했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날 집에 가서 왜 수업시간 내내 고개를 밑으로 숙이고 있냐고 물으니 "선생님 설명을 필기하고 있었어요. " 내가 말했다. "수학문제는 칠판을 보고 설명을 들어야지 라디오 강의도 아니고 어떻게 목소리만 듣고 이해가 되니?" "아무튼 듣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이 멍청하고 눈치 없는 엄마인 나는 그런 줄만 알았다.
"어머니 시후가 좀 이상합니다.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앉아있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고 친구들과도 잘 놀지도 않습니다. 학교 상담실에서 진행하는 우울증에서 우울지수가 꽤 높게 나왔어요." 2학기가 시작되고 두어 달 때쯤 지났을 때 담임교사로부터 온 전화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에서도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했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센터로 상담을 권유받았다. 곧바로 신청해서 방과 후에 바로 상담을 받고 학원을 가는 식으로 시후와 합의를 했다.
"시후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니? 아니면 친구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거니? "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 시후는 자꾸만 대답을 회피했다." "시후야 힘들면 힘들다고 엄마에게 털어나 봐.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 그러니 속시원히 털어나 봐. 당장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런데 시후야. 엄마는 기다릴게. 네가 마음이 정리되고 말하고 싶어지면 그때 말해. 강요는 안 하겠지만 시후야. 너무 늦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축 처진 어깨로 학교와 상담소, 학원을 오가는 시후를 바라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던 시후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는지 어느 날 학원에서 돌아온 후 그동안 꾹꾹 참았던 서러움을 눈물로 다 토해 내더니 전학을 시켜달라고 했다. 고개 숙인 아이라고 온 학교에 소문이 나서 고개를 더 들 수 없고 급식소 이모들까지 자신을 보면 수군댄다는 것이었다.
(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