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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0화) 호주 여행과 푸닥거리

by 피닉스

이역만리에서 오는 우리 가족을 반기기라도 하는 듯 호주의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호주의 수도이자 정치의 중심지 캔버라, 호주 원주민의 예술품부터 세계각국의 다양한 예술품이 전시돼 있는 대규모의 미술관으로 유명한 국립미술관, 국회의사당, 전쟁기념관을 거쳐 세계적인 명소 본다이비치까지 장장 6박 7일의 여정을 끝내고 호주여행을 다녀온 뒤 시후는 한동안 컨디션이 좋은 듯했다.


정신적인 질병은 어느 한 가지만 국한돼 나타나는 게 아니라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시후의 기분도 금방 좋다가도 침울해지는 등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랬다 저랬다 예측 불허였다.

약을 먹으면 질병보다 더 강도 높은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고 안 먹어도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차라리 약을 안 먹고 질병에 시달리는 편이 더 낫다고 했다. 이제 약의 부작용에 대한 노이로제 때문에 정신과 병원 자체도 떠올리기도 조차 싫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쇠뿔도 당김에 빼랬다고 시후는 그해 사이버 대학 가을학기의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의학이 크게 발전하지 않는 이상 제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질병인데 다른 과를 선택해도 어차피 써먹기도 힘들어요." "복지사"는 남을 돕는 직업이니 그나마 나를 필요로 하는 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하는 시후의 말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정신질환자로서 선택의 폭은 좁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 시후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 세상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남을 돕고 싶어도 신체적인 장애 때문에 오히려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지 않니? 그래도 너는 신체적으론 건강해서 어디든 갈 수 있고 남의 손과 발이 되어줄 순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니? "

"그렇긴 한데 엄마, 정신병도 여기서 더 심해지면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해서 남의 도움 없인 못 살아가요. 더 심해지지 않기를 바라야죠."

"시후야. 엄마도 그 생각을 안 해 본건 아닌데 이 분야의 박사들이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으니 가까운 미래에 신약이 출시돼 꼭 정복할 수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할 것 없어."

"네..."

"시후야. 너 노래 잘하잖아. 컨디션 안 좋을 때나 스트레스 쌓일 때 노래를 불러봐. 마음속에 쌓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털어내. 그게 병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방법이야."

"네 그렇게 할게요."


그동안 숨겨왔던 시후의 병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지인들이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 조현병은 귀신병이라서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으니 굿을 해야 된다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부터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말을 쏟아냈다. 다중 인격자처럼 난데없는 할머니 목소리가 "아가 와 이러노? 이것들아 어서 안 고쳐 주고 뭐하노?" 하며 호통을 치는가 하면 " 내 손주가 이리 되도록 너희들은 뭘 했느냐? 에에험 쯧쯧." 조상인듯한 굵직하고 위험 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입이 벌어진 채 꼼짝 못 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들이 나올 때는 시후의 눈빛도 근엄한 할아버지 표정으로 비치다가 또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화기도 했다. 현실감이 떨어져 몇 번이나 볼을 꼬집어 봤으나 지금 21세기의 우리 집 거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명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할머니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호통을 치고 난 시후는 눈이 허옇게 뒤집히며 소파에 쓰러져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그럴 땐 나와 남편은 한참을 넋이 나간 채 주저앉아 움직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 후 서서히 현실을 인지한 나는 "시후아빠 시후 몸에 정말로 조상신이 들었나 봐." "귀신이 어딨 어." "지금 시후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도 귀신이 없다는 거야?" "그러게 귀신이 곡할 일이네. 너무 자책하지 마. 원기가 부실해서 헛소리가 나올 수도 있어." 그때 시후가 부스스 일어나며 "엄마 아빠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시후야 너 아까 네가 한 말 기억나니?" "무슨 말요? 제가 무슨 말했어요?" "아까 우리한테 할아버지 할머니 목소리로 호통쳤잖아. 너 안 고쳐 준다고." "무슨 말씀이에요. 제가 언제 그런 소릴 했다는 거예요?"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정작 당사자인 시후는 전혀 기억을 못 하는 것이었다.


병원 가서 상담하면 그냥 한청이 들려 따라 하는 거라고 하고 다중인격처럼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맥 빠지는 소리만 돌아왔고 중요한 건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약은 아무리 복용해도 낫기는커녕 부작용으로 오히려 몸을 망치기만 하니 약은 더 이상 복용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즈음 친구나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사람들한테 받는 스트레스로 사람이 싫어지는 증상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감당할 수 없는 발작 비슷한 증상에 끊었던 약을 또 먹여서 더 큰 부작용에 절망하면 주위에선 그 독한 약을 계속 먹여 사람 잡는다고 난리치고 또 한동안 끊고 있으면 그렇게 넋 놓고 있으면 자식 병을 어떻게 고치겠냐고 비난했다.


이래도 탈 저래도 탈 온통 나를 몰아붙였다. 그들은 내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되는 것보다 걱정과 위로를 가장해 아픈 곳을 찔러대는 악마로 비쳤다. 이러다 나까지 정신병 오겠다 싶어 친구와 가까운 지인들 일체의 왕래를 끊었다. 그들이 보기 싫어서도 이 도시를 떠나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2년 전부터 시후에게 수도꼭지를 내리쳐 고장을 내거나 물건을 들어 내리쳐 박살 내는 틱장애로 전원주택을 찾고 있던 시기였다. 금방 찾을 줄 알았던 전원주택은 집을 매물로 내놓은 시점에서 3년이란 시간을 건너서야 운명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주택으로 가고 나서 시후의 상태는 날로 심해져 갔다. 가만있다가도 엄마든 아빠든 달려들어 욕을 하고 차고 밟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길게는 한 시간 짧게는 30분간의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그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방금 전 있었던 일을 기억을 못 할 때도 있고 기억을 하는데 드라마에서 일어난 일인 듯 약간의 미안함은 내비치지만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다. 내가 화가 나서 왜 그랬냐고 추궁하면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제안에 또 다른 자아가 살고 있어요. 제가 아닌 그 존재가 벌이는 짓이에요." 이러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나도 남편도 지쳐갔다. 정말 어떨 땐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질병 때문에 벌인 짓이라 해도 이젠 우리에게도 한계가 온 것인지 이러다가는 나도 모르게 무슨 일을 벌일 것만 같아 무서움이 밀려왔다. 정말로 시후의 몸에는 다른 존재가 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제는 한술 더 떠 끊임없이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중얼거리는 증상도 더해졌다.


의학적인 약도 소용없으니 이젠 지인들 말처럼 종교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교회를 데러 갔더니 예배시간 한 시간을 못 참고 자꾸 예배당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바람에 잡으려 다니다가 기도 한번 못하고 예배시간이 끝나버렸다. 예배시간이 끝난 후 목사님과 몇몇 집사님들이 따로 기도를 해 주셨지만 여러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교회에 나가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인이 귀신 쫓는데 유명한 스님이 있다고 해서 또 세 시간을 운전해 찾아갔다. 기치료와 등에 부적을 그려주시며 단 한 번의 치료로 7백 명을 넘게 치료해 줬다며 자신만만하게 완치를 장담했지만 비싼 떡 한번 거나하게 사 먹은 셈 쳐야 했다. 또 다른 절 두 곳도 가서 역시 허탕 쳤다. 시후도 종교적인 방법을 동원해 보자고 애원을 했고 어차피 약으로도 고칠 방법이 없는데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나중에 여한이 안 남을 것 같았다. 또 시후에게도 부모의 선에서 할 만큼 했다는 소리를 자신 있게 할 수 있고 원망은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또 다른 지인의 소개로 이번에는 점집을 찾아갔다. 할머니 무속인은 왜 이제 왔냐고 호통을 쳤다. 나에게도 소중한 손자가 있다며 안타까워서 그러니 원래 이천만 원 짜린데 최소 금액 오백만 내면 책임지고 낫게 해 준다며 큰소리쳤다. 별 기대는 안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또다시 마지막 동화줄에 매달려 보고 싶었다. 유튜브에 귀신 들린 사람들이 감쪽같이 낫는 장면만 찾아서 보고 또 봤다. 방송에 대해 한번 속은 터라 저것도 속임수겠지 하면서도 나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유혹이 내 영혼을 잠식해 왔다. 무당할머니왈 시후는 정신병도 있고 그 약해진 틈을 타 귀신이 스며들었다고 했다. 솔직히 정신병 자체는 못 고치지만 귀신 든 것은 빼줄 수 있다고 장담해 왔다.

먼저 시부모 산소를 찾아 푸닥거리를 한번 하고 뒷날 정식으로 성대한 굿판이 벌어졌다. 무당의 몸을 빌어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도 찾아오고 비명횡사한 친정오빠와 시아주버님도 찾아와 낫게 해 준다는 약속을 하고 사라졌다. 오전 9시에 시작한 굿판이 모든 기를 소진하고서야 저녁 6시에 끝이 났다.


(1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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