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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28. 2024

스스로 방 청소 하는 아들

사춘기 아이가 스스로 방을 정리하게 만드는 비결

스스로 자기 방을 정리하고 분리수거까지 하는 아들에 대해 자랑하려고 글을 씁니다.


어제 낮에 시험 문제 내기가 너무 싫어서 아들 방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코 푼 휴지, 각종 프린트물, 문제집에 먹다 남은 과자 봉지, 빈 빵 봉지, 딱딱하게 굳어버린 피자 도우 등 여러 가지 사물과 음식찌꺼기들이 책상 위에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흐흐, 드럽구만.


저는 시험 문제 내기가 정말 싫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가 책상 위에 흩뿌려진 빵가루를 보자 이러다가 벌레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아이가 얄밉기도 해서 골탕을 먹여주자고 결심했죠.


그래서 몸서리를 치면서 거실로 뛰어나가 큰일났다, 네 방에 벌레가 생겼다고 외쳤습니다.


아이가 깜짝 놀랐다가 미심쩍은 얼굴로 거짓말이죠? 라고 물었습니다.


아니, 진짠데.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야.


에이, 그게 뭐예요.


음식물을 저렇게 쌓아두면 벌레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거지 뭐.


헤헤. 그렇구나.


큰아이가 웃다가 문득 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니죠. 벌레 생겼죠?


아니라니까


솔직히 말해 봐요. 벌레가 있었죠?


아니라고.


진짜?


글쎄 아니라니까 그러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의심을 풀지 못하지만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될 정도로만 밀고 당겨야 한다는 점이에요. 벌레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면 깔끔한 척하는 저 녀석이 저 방에서 안 자려고 할 것이고, 벌레가 없다는 확신이 들면 긴장이 풀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자기 방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재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종이류는 박스 안에 넣고 음식물은 싱크대로 옮기고 (으악, 내 싱크대!) 빨래는 세탁실로, 책상 위는 싹싹 닦아냈습니다.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청소하려고 했는데!!!!!


이제 시험 문제를 내야하는구나. 


저는 좌절해서 거실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큰아이가 제 노트북을 잠깐 빌려달라고 해서 가져다주었습니다. 큰아이는 갑자기 킬킬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제가 이거 반납했을 때 엄마 노트북 USB 꽂는 곳에 바퀴벌레가 들어앉아 있을지도 몰라요.


글쎄, 내 생각에는... 바퀴벌레가 서식지를 고르려고 한다면 딱딱한 노트북 구멍보다는 컴컴하고 촉촉한 네 귓속을 더 선호할 것 같은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아이가 으헤헤헤헤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저를 물려고 달려왔어요.


저는 기겁을 해서 도망치다가 하마터먼 문틀에다 머리를 박을 뻔했어요. 자꾸 아들 자랑을 해서 좀 그렇지만 좀비 연기는 쟤가 참 잘합니다. 그리고 큰아이 방은 아직도 깨끗하지요.


살다보니 아들 자랑하는 날이 다 옵니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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