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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07. 2023

우리는 원팀

남편 아님 주의

주말에 달수씨와 강아지 놀이터에 놀러갔습니다.     



달수씨가 다른 보호자분 가방을 또 뒤졌습니다. 제가 당황해서 ‘어머, 죄송해요. 달수씨! 그러면 안 돼. 얘가 왜 이렇게 말썽을 부려?“라고 말했더니 옆에 계셨던 시월이 보호자분이 쟤는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 예전부터 가방을 보면 저러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그분이 달수씨의 비행을 알고 계실 줄 몰랐거든요. 전과가 이렇게 무서운 거였습니다.      

강아지 놀이터에 와서 기분 좋은 불곰 달수씨

어쨌든 그날 많은 강아지들이 모여서 그런가 놀이터 안에 남의 가방을 뒤지는 양아치 강아지가 있듯이, 입질하는 사나운 개들도 있었습니다.     


달수씨가 어떤 강아지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달수씨가 도망가도 끝까지 따라와서 으르렁거리며 주둥이로 몸통을 찍었습니다. 그럴 때는 다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달수씨와 그 강아지와 싸우고 있는 곳에 가까이 가서 다리를 약간 벌리고 표나지 않게 허리를 조금 숙입니다. 그러면 달수씨가 강아지와 싸우다가 저한테 뛰어와서 다리 사이를 통과하면서 몸통을 살짝 스치고 뛰어나갑니다. 마치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용맹하게 뛰쳐나가서 다시 싸움꾼 강아지에게 달려들어 앞으로 뛰었다 뒤로 뛰었다 하며 위협을 합니다.     


달수씨가 아무리 애를 써도 수세에 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걸음아 나 살려라 목숨을 걸고 뛰어와 제 다리 사이에 섭니다. 그러면 제가 번개처럼 달수씨를 들어올립니다. 우리는 원팀입니다.     


그러면 달수씨가 그 난폭한 친구를 쫓아버릴 때는 어떻게 되냐고요? 늠름하게 제 옆으로 지나가는 달수씨를 향해 몸을 기울여 강아지 몸통 높이로 오른손을 내밉니다. 그러면 달수씨가 제 손바닥에 몸통을 가볍게 문지르듯 스치고 다시 다른 강아지들이 있는 곳으로 놀려고 뛰어나갑니다. 글쎄요, 일종의 하이파이브라고 해두죠. (제가 대단히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사춘기 강아지에게 괴롭힘 당한 모습 같지만 사실은 혼자 땅 파고 놀다가 찍힌 모습


그날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달수씨를 보고 제가 ’달수씨! 아줌마 여기 있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사나운 강아지 보호자분이 괜찮다고, 당신의 강아지는 원래 거칠게 노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강아지 놀이터도 옛날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갔던 아이들 놀이터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악당 강아지 보호자분은 자리에 앉아서 꼼짝도 안 합니다. 순한 강아지 보호자들만 전전긍긍하면서 강아지들을 따라다니고 있었어요. 


물론 그 안에는 우리처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팀도 또 있을 것입니다. (음, 역시 제가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그렇지만 어제 만난 강아지는 우리가 힘을 합쳐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싸우자는 게 아니라 놀자고 쫓아다니는 거라 달수씨가 아무리 크르릉 위협해도 먹히지가 않았습니다. 해맑은 표정으로 꼬리를 치고 달려들면서 달수씨를 끌어안고 뒹굴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제가 달수씨를 안아올렸을 때는 얘가 너무 심하게 흥분해서 버둥거리는 바람에 팔이 긁히고 제 입 속에까지 흙이 다 튀었습니다. 이건 뭔가 예사롭지 않다.     


강아지가 아직 어린가요?     


저는 미소를 지으며 강아지 보호자분께 물어봤습니다.     


네, 10개월이에요.     


크흡, 역시... 저는 시계를 보고 놀란 시늉을 한 다음 자연스럽게 짐을 챙겨서 개놀이터를 빠져나왔습니다. 사춘기 강아지가 아쉬워하며 가지 말라고 컹컹 짖었습니다. 양아치 달수씨는 또 만신창이가 됐고 제 옷과 머리카락에는 흙이 많이 묻었습니다.     


우리는 길을 걷다가 때때로 몸을 털었습니다. 우리는 원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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