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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별 Oct 30. 2024

반짝반짝 빛나는



나에게도 한때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활짝 핀 모란처럼 화려하고 무지개를 탄 듯 뭐라도 할 수 있었던 시절! 떠올려보면 그 시절은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 5반 담임 선생님은 출산을 앞둔 임산부였다. 중학교 시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으로 떠올리는 건 그 선생님의 사소한 칭찬 한 마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학교때는 아침 명상시간이 있어서 수업 전 30분 동안 명상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어느 날 조회 시간에 명상노트를 잘 정리한 사람을 칭찬한 적이 있었는데 한 친구와 더불어 내 이름을 호명하면서 칭찬하셨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 앞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데 얼마나 설레고 뿌듯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런 칭찬 한 마디가 인생을 무지개빛으로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




  요즘 내가 몰아서 보고 있는 드라마는 ‘나의 아저씨’다. 사실 이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을 때는 반응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보지는 않았다. 이후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박해영 작가를 알게 되었고 요즘 떠올라서 찾아보고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슴프레 느끼게 된다. 사는 것 자체가 암흑인 지안에게 키다리 아저씨같은 박동훈 부장이 우연처럼 등장했고 그 우연은 지안의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준다. 세상에 내 편은 한 명도 없을 것 같은 막막한 세상에서 내 편을 얻는다는 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반짝이게 하는 지 이 드라마를 보고 느끼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그 반짝거림은 중학교 2학년 5반 담임 선생님이 아니였나 싶다.




  생활기록부에 적었던 글귀도 기억이 나는데 ‘자기 할 일은 제 스스로 할 줄 아는 학생입니다.’라는 글귀가 참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보면 지나가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고 크게 칭찬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그 한 마디가 그 뒤의 삶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바쁜 엄마는 나를 칭찬해 줄 시간이 없었기에 생활기록부에 적은 선생님의 한 마디가 사춘기 내내 등대처럼 내 앞을 밝혀줬다.




  이후 만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에 나오는 니나도 어두울 것 같은 내 사춘기에서 나를 반짝일 수 있도록 지탱해준 인물이다. 자신에게 손을 뻗는 의사 선생님을 외면하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맞서가는 니나의 용기가 나에게 견딤을 알게 했다. 이 견딤이란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지안의 견딤과도 조금은 일맥상통할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라고 해야할까!  그 뒤로 내 삶은 잠깐씩 반짝반짝 빛이 나기도 했다. 만일 내 사춘기에서 중학교 선생님과 니나가 없었다면 나는 그 터널을 건너기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내 사춘기가 반짝반짝 잠깐이라도 빛을 낼 수 있었다면 저들의 힘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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