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글쓰기 수업 합평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내 글을 소리내어 읽으니 반복되는 글들이 보였다. 좋은 글의 완성은 퇴고라고 하는데 합평을 통해 필요 없는 문장이나 단어가 많이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도 빼고, 저것도 빼고 필요 없는 가지를 자르듯 불필요한 부분을 쳐내니 문장이 담백해졌다. 합평 시간을 가진 후 나는 글을 쓸 때 이 문장이 꼭 있어야 하나 살펴보기도 하고, 반복되는 단어는 과감히 생략하기도 한다.
저녁에 온라인으로 작가 강연을 들었는데 글을 쓰는 사람은 창의적인 나와 논리적인 나로 나눠져야 한다고 했다. 창의적인 자세로 신나게 글을 쓰고, 그렇게 쓴 글을 읽을 때는 논리적인 내가 되어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단다. 그게 참 힘들다. 강연을 듣고 깜빡이는 커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 글이 또 어디를 헤매나, 내 의도를 꿰뚫고 목적지로 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며칠 전, 도서관 글쓰기 마지막 수업에는 합평 대신 ‘작은 낭독회’가 열렸다. 자기가 쓴 글 중에서 한 편을 낭독하고, 읽고 싶은 글을 낭독하면 된다. 작은 낭독회는 지도 강사의 작은 연주회로 시작되었다. 롤스크린에 멋진 가을 풍경이 흘렀다. 따듯한 조명 아래 한 편의 글이 낭독되고 이어서 해금 연주가 있었다. 아버지를 추억하는 내용이라 왠지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 멋진 글과 연주를 들은 우리는 신나게 박수를 쳤다.
다음 순서는 나였는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작가가 된다면 이런 낭독회나 북콘서트를 열겠지! 이런 상상을 하니 별안간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내가 쓴 글 중에서 《봄밤의 산책》을 낭독했다. 소리를 내어 읽으니 그 글을 쓸 때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어서 낭독한 글은 학창시절 내가 좋아했던 이효석 작가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이다. 이 수필을 읽기 전에 어릴 적 외갓집 얘기가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외갓집에는 소여물을 끓이는 아궁이가 있었다. 저녁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데 불쏘시개로 바싹 마른 콩깍지를 이용했다. 콩깍지를 넣으면 아궁이 속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들렸다. 불이 붙으면 마른 장작을 넣는데 그 따스한 불길이 좋았다. 아궁이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그 때문인지 나는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수필이 좋았다.
‘작은 낭독회’를 통해 작가가 북콘서트를 하는 것처럼 자기가 쓴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눈다. 작가가 아닌 우리는 작가처럼 글을 쓰고 합평을 하고 완성된 글을 낭독한다. 그때만큼은 왠지 작가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솜사탕처럼 달콤해진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 속에 내 목소리가 허공을 떠돈다. 긴장을 해서 관객들 표정을 살피지 못하지만 나중에 작가가 된다면 나를 찾아온 관객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가는 것은 특별한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