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언제부터 이렇게 불편했을까. 조용히 들여다보니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던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이 멀다는 핑계로 내려가지 못했던 나는, 엄마의 “괜찮다”는 말을 믿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 가봐야 했다는 걸 안다. 엄마는 입원 후 달라졌다. 매일 전화를 걸어왔고, 내가 전화를 걸 때도 있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일상적인 통화가 불편하게 느껴졌던 나는 어디선가 꼬여버린 내 마음의 매듭을 풀지 못했다. 그 불편함은 엄마로부터 멀리 도망쳤던 지난날의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매일 걸려오는 전화를 통해 엄마의 건강을 가늠한다. “목소리가 힘이 없네, 오늘은 맑은데?” 같은 소소한 관찰을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엄마는 늘 “밥 먹었어?”라고 물었고, 나는 “먹었어”라고 밋밋하게 답한다. 그러면 엄마는 웃었고, 나는 “엄마, 뭐 해?”라고 묻는다. 병실에서 TV를 보거나 휴게실에서 쉬고 있다는 엄마의 대답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그 평범함 속에 스며 있는 고독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일주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입원은 점점 길어졌고, 병원비는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돈을 송금했지만 부족했다. 병원 원무과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금액은 아찔했다. 결국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동생의 목소리도 무거웠다. 오후 내내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있다가 동생으로부터 “누나, 엄마 건강하더라. 내가 더 잘 챙길게.”라는 문자를 받았다. 울컥 눈물이 나려 했지만 참았다. 나도 따로 엄마에게 돈을 보냈지만 그깟 돈이 뭐라고! “누나가 다 낼게.”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결국 “누나가 미안하다”는 짧은 문자를 보냈다. 나 혼자 모든 걸 감당하는 듯한 기분에 남편이 이유 없이 미워졌다.
오십이 되면 지천명이라고 했던가!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늠름하게 살아낼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세상을 조금 더 안다는 건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되는 일이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위태롭게 쌓아올린 블록들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진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두려움과 맞서는 일이리라.
그럼에도 나는 다짐한다. 두렵더라도 무너져선 안 된다. 인생이라는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 더 성숙한 내가 되기를 바라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그래, 어디 와 봐. 내가 쉽게 무너질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