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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별 Nov 17. 2024

그리운 것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외갓집은 꽤 큰 기와집이었다. 청색 기와를 얹고 있는 기와집. 외할아버지는 농사도 지었지만 소를 팔아 부자가 되었다고 했다. 송아지를 키워 그 송아지가 소가 되면 장에 내다 팔았다. 그렇게 해서 땅을 샀고 땅 부자가 되었다. 후에 그 땅이 개발지구에 묶이면서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언젠가 은행에서 나오며 은행장의 배웅을 받던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은행 간부들의 90도 꺾인 인사를 받던 할아버지는 나에게 큰 나무처럼 보였다. 

    

외갓집인 청색 기와집은 탱자나무를 담장처럼 두르고 있었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뒷문을 열어놓으면 작은 새들이 탱자나무 사이를 시끄럽게 오갔다. 기와집 마당 건너편에는 포도나무, 사과나무, 살구나무가 있었고 소를 매어두는 뒤켠으로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가을이 무르익을 때면 긴 장대를 들고 홍시를 땄다. 잠자리채처럼 생긴 긴 장대로 홍시를 톡톡 건드리면 홍시가 채 안으로 살포시 떨어졌다. 그렇게 딴 홍시들은 외할아버지 입가심 간식으로 찬장 속에 고이 옮겨졌다. 외할머니는 가끔 나에게도 슬쩍 홍시 하나를 주셨다. 내가 가을이면 홍시를 먹게 되는 건 순전히 그 기억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와집 앞쪽으로는 큰 철문이 있었지만 뒤쪽으로는 돌담 사이로 싸릿문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소를 몰고 들로 나갈 때 늘 이 싸릿문을 이용했다. 그 싸릿문 옆에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끝도 보이지 않는 그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밑으로 빠질까봐 늘 겁이 나곤 했었다. 삐걱거리는 싸릿문을 열고 100미터 쯤 걸어가면 큰 개천이 나왔다. 외할머니는 외숙모가 첫애를 낳았을 때 빨래를 그곳에 가서 했다. 그때 외할머니가 빨던 기저귀들이 생각이 난다. 평평한 돌판에 기저귀를 얹고 방망이를 두들기던 할머니. 나는 가끔 친구들과 그곳에서 가재를 잡았다.     


삐걱거리는 철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양철지붕을 얹은 작은 집이 나왔다. 그 집은 세를 주어서 젊은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살았다. 그 곁에는 우물이 있었고 그 우물 옆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사용하지 않은 우물에서는 누가 넣었는지 이름 모를 물고기가 살았다. ‘첨벙’ 두레박을 우물 안에 던져서 물을 길어 올리기도 했다. 

     

그 동네엔 어린 시절 내 친구들이 살았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을 친구들. 마을 아래 초가집에 살았던 친구, 마을 위 과수원에 살았던 친구, 내 학교 단짝이던 문영 이란 친구까지! 그 친구들은 모두 잘 살고 있을까? 오늘처럼 찬바람이 불어 마음이 시린 날에는 자꾸 그 시절 생각이 난다. 기억이 희미해져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어려워졌지만 그 시절이 그립다. 겨울이면 호호 거리며 단팥이 든 호빵을 먹는 것처럼 나는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운 것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문득, 그리워지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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