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사랑하지만 아플 수밖에 없는, 이 특별한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책을 만났다. 엄마에게 딸이란, 딸에게 엄마란 존재는 참 가슴이 아리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남편이나 자식보다 더 의지가 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내가 결혼했을 때 상실의 아픔을 느꼈다고 했고, 나는 엄마를 두고 떠나며 아기를 두고 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친정 갈 때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친정을 떠나 시집으로 향하는 신사임당 못지않게 더뎠고 시렸던 기억이 난다. 딸이 없는 나로서는 <엄마에 대하여>를 통해 엄마와 딸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엄마가 가장 유약한 모습이었을 때 지금의 내 나이였다는 것을 생각한다."
"어떤 말들은 상처를 위해 태어난다. 나는 그런 말들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
그 말들의 종착지는 대체로 엄마였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스며든 문장들이다.
그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본 엄마의 모습은 거대한 거인이었고 어떤 고난이나 슬픔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헤쳐갈 수 있는 철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내가 엄마의 그 나이를 지나칠 때는 그저 나이 먹은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나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딸처럼 엄마를 향해 모진 말들을 내뱉은 적이 있다. 응당 엄마라면 모범답안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시험 답안지를 채워가는 것처럼 엄마의 삶 또한 모범적이기를 바랐다. 지나고 보니 사람은 죽을 때까지 완전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알겠다.
엄마와 딸, 마침내 함께할 여자들에 대한 소설가 6인의 테마소설 <엄마에 대하여>가 딸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어디에서도 펼쳐놓지 못한 내 마음속의 말들을 이 책에서 대신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현, 조우리, 김이설, 최정나, 한유주, 차현지 6인의 소설가가 엄마와 옛 노래를 버무려 이야기를 펼쳐냈다. 각 소설 속에서 딸과 엄마는 때론 서로를 원수처럼 공격하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같은 발걸음을 걷는 여자이기도 하고, 엄마와 딸을 떠나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지이고 전우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들 사이로 김치켓의 「사랑의 역사」가 흐르고,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김연자의 「기타부기」 등이 흐른다.
딸이면서 여자이기도 한 우리는, 엄마가 여자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엄마에게도 첫사랑이 있었고, 꿈을 품었던 소녀 시절이 있었다는 걸 말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엄마가 완벽하기를 바랐다. 그러다가 나이란 게 먹는 만큼 어른스러워지지는 않구나! 그때 엄마도 이렇게 나처럼 세상에 대해 작은 존재였구나! 엄마도 나처럼 두려웠겠구나! 생각하면서 엄마를 따라 나이를 먹어간다.
엄마가 마치 적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쓰라린 말들은 엄마를 향해 뱉어버리고 전사가 된 것처럼 우쭐했던 우리는 또 그때의 엄마처럼 내 딸들에게 그런 총알받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속으로 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도 꼭 너 같은 딸을 낳아서 키워 봐!”
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대신해주는 <엄마에 대하여>. 이 책을 통해 엄마를 향한 나의 말을, 또 나를 향한 엄마의 말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