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아이의 마지막 시험 날이다. 시험은 아이가 치는데 엄마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이렇게 요동치는데 아이 수능 시험 날에는 오죽할까 싶었다. 등교하는 아이에게 불현듯 “화이팅!”이라고 외친다. ‘뭘 파이팅하라는 거지?’ 외쳐놓고도 민망해서 아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본다. 간밤에 공부를 제대로 못했는지 아이 얼굴에 그늘이 진다. 그깟 시험이 뭐라고 싶지만 엄마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다. 아이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성공 하나도 놓치지 않길 바라는 욕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니 말이다.
오늘은 도서관에 그림을 그리러 가는 날이다. 가족들이 모두 집을 떠난 뒤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한다. 날이 춥다고 해서인지 히터를 틀어서 버스 안이 따듯하다. 졸음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요즘 이렇게 버스를 타기만 하면 따듯한 햇살을 이고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가 된다.
버스를 내리자마자 갈아탈 버스가 신호를 받아 대기 중이다. 사소한 일에도 좋은 일을 기대하며 달려가서 버스를 탄다. 이 버스도 히터를 틀어서 따듯한 기운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본다. 가을도 끝자락인지 낙엽이 스산하게 날리고 있다. 지금쯤 아이는 시험을 잘 치고 있으려나 생각하며 시험을 잘 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엄마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점점 새가슴이 되어간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도서관에 도착했다. 오늘 드로잉 수업은 ‘그림 저널 만들기’이다. 이제 이 수업도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리는 쌀쌀하다며 먼저 티타임을 갖는다. 커피를 타고 과자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 서로 그려온 그림을 보여주며 그림 감상 시간도 가져본다. 칭찬 일색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누군가 화백이라고 하자 교실 안이 웃음꽃으로 가득해졌다.
뭘 그릴까? 사진첩을 들척이다가 지난 주에 남편과 갔었던 소풍정원을 그리기로 한다. 그때만 해도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졌는데 이제 가을도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고 있다. 오늘도 스케치는 생략하고 수채 크레파스로 대략 구도만 잡고 마음대로 그린다. 알록달록 단풍이 든 나무들을 그리고 나무들이 비친 물을 그리고 파란 가을 하늘을 그렸다. 그러면서 “어쩌면 인생도 그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어제의 일상과 오늘의 일상은 다르다. 지나간 시간은 흑백으로 남고, 오늘은 알록달록 천연색으로 그려진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오늘 하루는 어떤 그림으로 남을지 고민한다. 어제를 반성하고, 더 나은 나와 아이를 위해 오늘이라는 붓으로 인생을 그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