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적성에 안 맞는 사람-7
후회, 자괴감의 반복
이 세상은(특히 한국사회는) 엄마라면 엄연히 숭고한 모성을 갖추길 기대한다.
아무리 철 없던 사람도, 이기적이던 사람도 엄마가 되면 자기를 희생하여 아이를 돌보고 싶어질거라고 한다.
엄마가 처녀일 때 꿈꾸던 것들이 다 하찮아지고 오로지 아이를 위해 살며 그것을 행복해한다고, 그게 모성이라고 정한 것만 같다.
세상의 그런 기대치는 친정엄마로부터 들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신 모성의 모습.
본인 옷을 사는 것보다 내 옷을 사는 것이 더 행복했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좋은 곳을 여행해도 나와 함께가 아니라면 즐겁지 않다고 했다.
"너도 엄마가 돼 봐라. 너도 똑같이 그럴걸." 하며 웃으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감동에 마음이 벅차오르기보다는 뭔가 답답한 기분이었다.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엄마가 나만 바라보며 웃는 거 정말 싫은데. 내가 있든 없든 개의치 않고 신나게 깔깔 웃으며 지내면 좋겠는데.
역시나, 엄마의 말과 달리 나에게는 세상이 기대하는 만큼의 숭고한 모성이 생기지 않았다.
물론, 엄마가 되자 마자 강제적으로 내 삶은 내 딸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나의 커리어도, 소비 습관도, 여가 생활도.. 하루 일과의 최 우선순위는 딸아이의 돌봄이었다. 아무리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하교를 안 했어도 옆 반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딸아이 하원시간에 맞춰 퇴근해야 했다. 내가 사고 싶은 물건보다 딸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먼저 사게 됐고, 요리를 지독히도 싫어하며 외식을 사랑하는 내가 한살림에서 식재료를 사서 낑낑거리며 딸아이의 반찬을 만들었다. 저녁식사 후 나의 자기계발 대신 딸아이와 놀아주다가, 씻기고 어르고 달래 재웠다.
표면적으로는 세상이 기대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세상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가 되자마자 달라져버린 일상에 좌절하고 분노했다.
하루가 보람이 아닌 의무감으로 채워졌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배가 불러야 하는데, 세 식구 오손도손한 모습이 행복해야 하는데 나에겐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늘 사무치게 혼자 있고 싶고 어디론가 숨어서 자유롭게 쉬고 싶었다.
옛날 친정엄마와는 다르게 딸아이의 옷보다는 내가 입을 예쁜 옷을 사는 게 좋았다. 딸아이가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보다, 애기엄마가 아가씨같다는 말을 들을 때 진심으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친정엄마와 반대로 딸아이를 데리고 좋은 여행지나 맛집에 올 때마다 '다음에는 여기, 나 혼자 편하게 와서 신나게 놀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 끝에는 꼭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고 있구나.
그러면 난 엄마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너무 매정하고 이기적인 엄마인 것 같구나.
고민도 안 하고 결혼은, 출산은, 육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일을 크게 벌렸나
스물여덟 살의 내가, 서른 살의 내가 뭘 안다고 섣불리 그런 결정을 했을까.
때때로 불특정 다수의 어른들이 원망스러웠다.
당신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꼰대처럼 충고한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한 통찰 없이 그 엄청난 것들을 시작했다고.
여자 나이 더 늦기 전에 그런 당연한 것들을 빨리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 사회를 탓했다.
시험 전 날 밤새 벼락치기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잠든 날 안 깨우는 바람에 시험을 망쳤다고 떼 쓰는 중2병 걸린 소녀처럼.
2016년부터 약 5-6년동안. 우리 딸이 태어나 유치원에 다니기까지.
이런 생각들에 가득 사로잡혔던 시기였다.
마침 그 무렵 각종 매체에서는 '비혼'을 꿈꾼다는 청년들이 많이 나왔다. 게다가 내가 삼십대 초반까지는 친구들 중에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보다는 미혼이나 딩크족으로 지내며 자기계발하고, 여행 다니는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이 너무나 현명하다고 느껴졌고 사무치게 부러웠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렇게 후회와 자괴감이 번갈아가며 내 마음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