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적성에 안 맞는 사람-8
여전히 혼자 있기를 갈망하지만
2023년, 딸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에 맞춰 나는 육아휴직을 했다.
초등학생이 된 딸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등하교길에 차 조심해서 잘 다니려나, 하교하고 방과후교실은 제대로 찾아가려나, 가방은 잘 챙겨서 나오려나, 급식판에 밥은 잘 받으려나, 알림장은 잘 써오려나, 학교 도서관은 잘 찾아가려나, 도서관에서 시간에 맞춰 나올 수 있으려나, 선생님께 제출할 것들은 잊지 않고 제출하려나.. 소심하고 계획적인 성격 탓에 오만가지 자질구례하고 사소한 걱정을 해댔다. 하지만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딸아이는 잘 적응해갔다. 정말 기특하고 대견하게도 내가 걱정했던 저 자질구레한 사소한 일들을 혼자 해낼 수 있게 됐다.
육아휴직의 취지에 맞게 난 무엇을 할까..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탓에 이런 고민을 하다가 얼떨결에 학교운영위원과 학부모 반대표까지 하게 됐다. 학교에서 늘 교사로서의 역할만 하다가 학부모로 활동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학부모들이 학교에 무엇을 바라는지, 선생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딱히 큰 역할을 한 것이 없어도 동료 부모님들과 소통하고 선생님을 도우며 뿌듯했다. 워킹맘 교사로 7년간 매일 아쉬운소리만 하고 부탁만 하느라 자괴감이 들었던 내 마음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시간적인 여유는 마음의 여유도 가져왔다. 지난 7년간 학교 근무와 육아를 반복하며 늘 동동거리던 나였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하지만 딸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혼자 해내는 것이 많아지며 하루 반나절동안은 나의 자유시간이었다. 자기계발하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예전부터 동경하던 '평일 오전시간 운동'을 했다. 아침 공복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난 후 내 취향대로 고기, 채소, 현미밥을 조합해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요리를 해 먹었다. 자연스럽게 군살이 빠지자 욕심이 생겨 바디프로필까지 촬영했다.
그 다음으로는 한가한 낮시간에 카페에 갔다. 커피를 마시며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그동안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해 갈증이 많이 느껴졌었는데 그래서인지 육아휴직 기간동안 참 많이도 읽었다. 이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특히 소설책을 읽을 때는 완전히 몰입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을 때는 마치 내가 그 도서관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자기 루틴대로 먹고 생활하며, 매일같이 도서관에 출퇴근하며 책에 파묻혀 사는 삶. 내가 너무나 동경하는 삶이어서일까.
많이 읽다보니 대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남인숙작가님의 책도 한 번씩 더 읽게 되고, 그러다 '남인숙의 어른성장학교'까페에 가입했다. 힐링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매일 글을 카페와 블로그에 올렸다. 하루는 내가 도전했던 바디프로필 촬영 과정에 대해 글을 쓰는데, 이십대부터 내가 어떻게 다이어트를 실패하고 결국 여기까지 왔는지 쓰다 보니 너무나 글이 길어졌다. 마침 브런치 작가 공모전이 있길래, 나의 십여년간의 다이어트 시행착오를 10여편정의 글로 정리해 응모했다. 비록 공모전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나의 브런치 계정에 '13년 다이어트 흑역사'라는 작품이 생겼다. 그것만으로 참 뿌듯했다.
지난 7년간 퇴근하면 딸아이를 돌보느라 집안을 정리할 겨를도 없었다. 주 1회 가사도우미 이모님께 도움을 받아 아주 더러운 꼴은 면했지만, 뭔가 정신이 없었다. 내 살림살이를 내가 다 파악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을 빌리니 집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딸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 내가 직접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이런 기분은 사라졌다. 가사도우미 이모님이 해주시던 청소를 내가 하면 힘이 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청소를 하며 몸도 마음도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청소를 하다보니 집 정리와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생겨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곤도마리에의 정리법은 신세계였다. 매일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며 안 쓴지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했다. 물건들이 정리되니 낡고 오래 된 수납장들도 비울 수 있었다. 집이 한층 더 깔끔해지고 빈 공간이 많이 생겼다. 그러자 33평인 집이 우리 세식구에게는 불필요하게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집을 월세로 내놓고, 우리 세식구는 24평 소형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게 됐다. 월세 수익이 생기고, 관리비도 절약되고, 공간이 더 단순해지니 정리와 청소하는 데 드는 시간은 반으로 줄었다.
딸아이와 분리돼 나만의 일과들을 차곡차곡 수행해내며, 이제까지 쌓여 폭발 직전이었던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낙엽이 질때 쯤까지만 해도 이 육아휴직기간이 끝나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계속 학교에 몸담았던 사람이어서인지, 동장군이 찾아올 무렵부터는 슬슬 좀이 쑤셨다. 새로운 특수학급을 경영하고 학생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나에게는 더도 덜도 아닌 딱 1년의 휴식기간이 필요했나 보다.
이제 곧 3월이다. 다음 주에는 다시 워킹맘이 돼 퇴근하자마자 딸아이를 먹이고 씻길 것이다. 하지만 아기일 때처럼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알림장과 숙제를 봐주고, 일기 쓰는 것을 도울 것이다.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첫째아이를 키우다 보면 너무 빨리 자라 아기티를 벗는 것이 아쉬워 둘째를 갖는다고 한다. 시어머니께서는 나도 그럴 거라고, 엄마들 다 그렇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르다. 조금씩 아기티를 벗는 딸아이의 모습이 더 사랑스럽고 예쁘다. 스스로 해내는 모습이 대견하고 뿌듯하다. 육아에 있어서 돌봄보다는 소통의 영역이 커지며 점점 수월해진다. 그래서 딸아이가 4살 때까지만 해도 약간은 망설였던 둘째 계획이 5살 무렵부터는 아예 없어졌다. 지금은 그 선택이 나에게는 신의 한수였다고 느낀다.
물론 여전히 나는 혼자만의 삶을 그리워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동경하던 삶은 아니지만 원래 삶이란 게 동경했던 대로 흘러가는것은 아닌 것 같다. 후회와 자괴감만 반복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삶의 질도 떨어질 것이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나름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