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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민 Sep 22. 2024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1. 나, 하루키 그리고 달리기


  달리기로 글을 써보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제목은 정해두었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 문구는 최근 달리기라는 스포츠가 인기를 얻으면서 약 17년 만에 다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다. 하루키의 팬인 나는 그의 책을 무척 좋아한다. 그의 에세이는 내게 있어 마치 성경과 같은 존재다. 이쯤에서 고해성사를 하면 기독교인이라-주장하는-나는, 성경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현재 기독교와 무라카미교 혼교 상태다.


 하루키의 책 제목을 인용하여 짧은 글을 몇 편 쓰기도 했고, 다시 달리기라는 주제로 글을 쓸 기회가 생기면, 이 책의 제목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한글로 제목(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을 큼지막하게 써놓고 글을 쓰는데, 이야기 중간쯤부터 어쩐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나는 달리기를 몇 달간 쉬었다. 중간에 한 번씩 뛰는 행위는 했었으나, 꾸준히 달리지는 않았다. 딱히 달리기에 관하여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저 제목을 쓰자니 어쩐지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문제로는 달리기라는 운동에 대한 철학의 부재였다. 그의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달리기를 대하는 그의 태도나 관점, 그 방대한 이야기는 볼 때마다 꽤 놀라운 면이 있다.


 두 발로 뛰는 운동에 그렇게 많은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는 하루키가 신기했다. 또 하나는 그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달리고 있다는 것(현재 그는 75살인데 아직도 달리는지는 모르겠다). 많이 달릴 때면, 한 달에 350킬로를 넘게 달린다는 그는, 매 해 마라톤 경주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책의 중반에는 개인적인 도전으로 마라톤의 최초 발상지인 그리스 마라톤 코스를 완주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달리기는 서사가 있다. 그의 스토리에는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이야기가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느낄 쯔음, 다시 한번 하루키의 책을 꺼내어 읽어보기로 했다. 끝까지 정독하고 나서 이번에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행동을 했다. 그의 책을 필사해 보기로 한 것이다. 수차례 읽어본 책이라 내용을 꿰고 있어서 어쩌면 의미 없는 행동일 수도 있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써 내려갔는데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내용이 마음에 남았다. 뉴욕 마라톤에 참가한 그가 경기 후반에 다리에 나타난 극심한 경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를 쓰고는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느꼈던 감정들이 조금씩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전까지 들리지 않았던 이야기가 피어올랐다. 열심히 작성했던 이전의 나의 글을 모조리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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