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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민 Oct 06. 2024

지방 소멸과 잔업

아니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생뚱맞은 주제에 깊게 빠질 때가 있다. ‘이걸 왜, 갑자기’라는 주제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특히 나는 갑자기 무언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출근을 해서도 옴짝달싹 못 하고 잡념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김없이 잔업으로 일을 마무리하게 된다. 내가 별난 거라면 할 말은 없지만.

 하루 종일 나를 사로잡은 문제는 바로 지방 소멸에 관한 이야기다.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서른 살이 넘도록 서울 이외의 도시에 살아본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서울 토박이다. 이런 내가 지방 소멸이라는 주제에 빠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었다. 무엇이 문제였는고 생각해 보니 최근에 읽었던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 소멸>이라는 책 때문인 것 같다. 일본 정치가인 마스다 히로야가 쓴 이 책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지방 도시의 소멸이라는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 상황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담고 있다. 심심할 때 읽어보기 좋은 책이다. 우리와 일본은 오랜 세월을 원수같이 살아왔지만 한편으로는 가까운 이웃 같기도 하고, 다른 점이 정말 많다고 느껴지면서도 여러모로 비슷한 부분도 많이 있다. 특히나 좋지 않은 쪽으로는 상당히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저성장과 저출산, 고령화 사회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로 몸살을 겪고 있는 지방 도시의 쇄락을 꼽을 수 있다. 이유를 콕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쩐지 곤란하지만, 이 부분이 영 신경 쓰여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의 지방 균형 발전에 관한 정책들을 업무 하는 중간중간 살펴보았다.

 

 우리나라는  2003년에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라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05년 ‘혁신도시정책’이라는 방향성을 갖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과 함께 지방 거점 도시를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2024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당시 정책자들의 혜안으로 나름 비전 있는 정책을 선제적으로 시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24년, 2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이 정책,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 계십니까?


 여기에 감히 내 생각을 덧붙여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균형’이라는 단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정치와 여러 이해관계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런 일련의 이유로 수도권에 있던 공공기관과 국가시설은 균.형.에 맞춰 전국 각지로 흩뿌려지게 됐다. 유사 기관이라고 생각되는 기관끼리도 떨어진 경우가 부지기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기관 직원들 간의 정보 교류는 더욱 어려워졌고, 실무자의 업무 환경은 더 까다로워졌다(추측). 도시마다 흩뿌려진 기관들은 하나의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지 못했고, 파생되는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등 지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리지 못했다. 지방 도시로 반강제적 이사를 가게 된 직원들 중 버티지 못하고 이직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그나마 재직하는 직원들은 평일은 근무지 주변에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휴일은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이중생활을 병행했다(아니라면 죄송). 특히 그들의 자녀들은 서울에서 생활하며 서울 소재의 학교를 다니는 일은 암암리에 알려진 사실이다. 지방 이전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와 정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가 됐고, 이전 세대의 이직이나 퇴직이 발생하면 그들은 다시 수도권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말하자면 반쪽짜리 정책으로 전락했다(실례). 공공기관 이전과 더불어 만들어진 상권은 평일에는 그럭저럭 활기가 있는 모양이지만 주말이 되면 유령 상권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담 네가 생각하는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뭔데?라고 물어본다면 이쪽도 역시 대답이 궁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고민은 해봤다. 현실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이야기하자면 나는 ‘서울’을 예로 들고 싶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산업과 교육, 문화와 교통의 질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도시는 극도로 팽창해졌다. 이 결과로 많은 사람들과 기업들은 서울과 가까운 인근 경기도와 인천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자의든 타이든). 처음 경기도와 인천은 서울의 위성 도시로서의 역할만을 감당했었지만, 현재는 서울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도시로 성장했다. 인구와 산업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수도권은 이제 각자의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공유하며 공생하는 관계가 됐다. 교통, 항공, 문화, 교육 등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비록 모든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다른 도시(특히 서울)를 통하여 보충한다. 이 모습을 상상하다가 문득 물속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이 생각났다. 결국 서울이라는 잉크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주변으로 영향을 퍼트렸고, 색을 물들여 갔다.

 

 이어서 나는 소멸이라는 낭떠러지 앞에 놓인 도시에게 심히 송구스러운 이야기를 늘어놓을 예정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전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대수선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이야기다. 현재 대한민국이 가진 재원으로 지역균형발전을 계속 추진해 나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앞서 설정했던 범위보다 훨씬 작은 범위로 소수 도시만을 한정하여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가망성 있는 도시로 부산, 광주, 대전을 상정해 두고 이야기를 이어나가겠다. 그러면 현시점에서 각자 도시가 집중적으로 육성했던 산업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각각의 도시가 가진 고유의 특질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데이터를 토대로 모든 국가 기관과 산업을 3개의 도시(부산, 광주, 대전)로 재배치하여 수도권과 같은 사례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부산이 팽창하면 울산으로 퍼지고, 나아가 경상도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광주가 서울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고 있어야 전라도 전체를 살릴 수 있을 것이고, 대전의 성장이 세종과 충청도 더 나아가 대한민국 중심점으로 발돋움하여, 각각의 도시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선정된 도시는 범국가적으로 정착 혜택과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주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또 직장의 이전으로 반강제적 이사를 해야만 하는 직원들이 누릴 수 있는 기반 시설도 정교하게 수립되어야만 할 것이다. 교통, 교육, 문화 모든 방면에서 서울에 버금가는, 아니 서울을 뛰어넘게끔 만든다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균형에 맞춰 분산하는 것은 수도권 일극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정책일 뿐, 옳은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세월이 증명했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지방 소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소멸을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아, 오늘도 얕은 지식으로 이런 중대한 문제를 생각하고 나불대느라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불타는 이 열정도 찬바람 불면 식어버리겠죠? 그럼 저는 이만 잔업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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