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오후 12시 45분,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시간을 거슬러 같은 날 오전 8시 반 즈음 미국 엘에이에 도착했다. 적법한 학생 비자와 서류를 모두 갖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입국 심사는 언제나 긴장된다. 트럼프 집권 이후 절차가 더 까다로워졌다는 이야기와 주변 유학생 친구들이 공항에서 한두 시간씩 대기를 했다는 경험담을 들어서 더더욱 긴장됐다. 다행히 예상과는 달리 모든 절차는 금방 끝났다. 군대에 있을 때 한 동기가 내게,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늘 쓸데없는 걱정이 많던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엘에이 땅을 밟았다. 세인트루이스로 넘어가기 전 며칠 동안 엘에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엘에이에서 가장 먼저 먹은 음식은 놀랍게도 돼지국밥이었다. 긴 비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진솔국밥'의 뜨끈한 국물이 너무 좋았다. 센루(세인트루이스)에서는 이렇게 제대로 된 한식을 먹기는 어려우니, 미리 먹어두자는 마음이었다.
LAFC의 구장에 잠깐 들렀다. 손흥민 선수를 환영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현수막이 우릴 반겨주었다. SON 이름이 새겨진 홈 유니폼은 이미 모두 품절이었지만, 흰색 원정 유니폼이 남아있어 하나 구매했다. 손흥민 선수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엘에이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는 'erewhon'이라는 프리미엄 마트였다. 유기농 식품과 고급 제품으로 유명한데, 나는 사실 무엇보다도 스무디가 너무 궁금했다. 무려 한 잔에 $20. 딸기, 바나나를 비롯한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있어 맛은 풍부했지만, 같은 돈을 주고 다시 사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맛을 제대로 본 순간이었다.
세인트루이스로 향하는 새벽 5시 반 비행기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북창동 순두부에 들렀다. 이상하게도 해외에 나오면 얼큰한 순두부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드디어 센루에 도착했다. 새로 이사한 집에 짐을 풀고 조금 피곤했지만 지하철을 타고 곧장 학교로 갔다. 2년 3개월 만에 다시 찾은 캠퍼스의 풍경은 묘했다. 전역 후 부대에 돌아갔을 때보다도 더 낯설고 신기한 기분이었다. "내가 여기서 공부했었지.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예전엔 설렘으로 가득했던 거 같은데, 이제는 막 크게 그렇지는 않다. 저녁에는 함께 복학하는 친구들과 모처럼 만나 식사를 했다.
내일이면 드디어 개강이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런데 너무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만 생각하다 보면 정작 지금 가장 집중해야 할 이 순간을 놓쳐버리게 되는 것 같다. 걱정도 되고 불안도 크기만 당분간은 현재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