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시작한 지도 어느새 3주가량 흘렀다.
군대 전역하고 어디서 흘러나온 건지 모를 열정과 패기로 무려 20학점을 신청했는데, 이제야 내 선택이 조금 무리였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특히 화•목은 오전 10시를 시작으로 11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이 쭉 있다. 다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냥 기절이다.
그래도 다행히 수업들은 재미있다. 듣고 싶었던 과목을 다양하게 골랐는데,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Present moral problems'라는 철학 수업이다. 과제와 읽을거리가 매주 산처럼 쌓여있지만 그만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지난주 수업에는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구글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 수업시간에 특강을 진행하셨는데, ai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윤리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신기했다.
Language 수업을 들어야 하는 졸업 조건이 있어서 일본어를 듣게 되었다. 군대에서 독학한 부분이 있어서 솔직히 쉽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회화 위주로 말을 많이 시켜서 오히려 좋다.
'Introduction to higher mathematics'라는 전공 필수 과목도 듣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유리수 개념들도 증명을 하라고 하니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정말 수학문제를 마지막으로 건드려본지도 3년이 지나다 보니 모든 게 가물가물하다. 다행히 교수님이 너무 좋으시다. 마른 체형에 안경을 쓰시고 약간 유러피안의 발음으로 말씀하시는데, 수학 천재의 기운이 느껴진다. 오피스 아워에 찾아가면 과외처럼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경제학과인 내가 경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회계학-경제학 수업 두 개가 연달아 있는데, 이 두 수업에서 졸지 않는 게 하루 중 가장 고비다. 내 전공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생각하는 중이다.
이번 학기는 기숙사 밖으로 나와 방을 구했다. 그래서 학교까지 매일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두 정거장 거리. 그렇지만 배차 간격이 20분이라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세인트루이스가 안전한 도시와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이 동네는 아직 큰 위험은 없는 거 같다. 그래도 캠퍼스 밖에서는 항상 주의하게 된다.
집에는 보통 5시 정도에 돌아온다. 피곤하지만 그래도 저녁은 최대한 요리해서 먹으려고 한다. 코스트코에서 고기를 사 와서 소분한 다음에 냉동실에 얼려놓고 하나씩 꺼내먹고 있다. 다양한 조리 방식으로 스테이크를 구워보고 있는데 꽤나 재미있다. 설거지가 귀찮은 거 빼면 요리는 할만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나랑 같이 입학했던 친구들은 이제 보통 4학년이고, 졸업한 친구도 있다. 같이 밥도 먹고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얘기도 나눴다. 꽤 친했던 친구 한 명이 안 보이길래 물어보니 스페이스 x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애들이 많다. 이제 뭔가 다들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거 같은데 나는 아직 2학년인걸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이제 더 바빠지고 힘들어지겠지만 군대에서는 다시 대학에서 공부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며, 좀 더 열심히 해보자 하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