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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나의 행복일기 Aug 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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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학습자 학부모 역량 강화 연수를 가다

 “컨설팅은 전문가 사이에서 하는 일입니다. 컨설티의 부족한 부분을 코칭하는 것이 컨설턴트의 일이지만, 컨설티 역시 자기 분야의 전문가예요.” 

  강단에 선 교수의 한마디에 머릿속 전구가 반짝 켜지며 아하 모먼트가 왔다. 부모는 자기 아이를 위한 맞춤 전문가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부모는 아이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고 과거에 효과적으로 양육했던 성공 경험도 있다. 단지 아이가 크면서 지금은 예전 방법이 잘 통하지 않을 뿐이다. 

  대구시교육청에서 준비한 ‘느린학습자 이해 및 지원을 위한 학부모 역량 강화 연수’ 자리였다. 연사로 나선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김동일 교수는 20여 년 동안 느린 학습자에 관해 연구해 왔다. 김 교수의 강의는 내가 좋아하는 데보라 레버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데보라 레버 역시 부모만큼 자녀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아이에 대한 전문가는 바로 부모 자신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두 사람의 핵심 메시지가 일란성쌍둥이처럼 똑같아 들으면서도 깜짝 놀랐다. 

 부모가 아이를 위한 결정을 할 때 내 상황에 맞추지 않고 타인의 조언을 무 비판적으로 따르면 결국 아이를 위한 최선을 선택하기 어렵다. 아무리 뛰어난 명약이라도 내 몸에 맞고 적절히 사용해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 앞에서 부모가 얼마나 한없이 초라하고 개미처럼 작아지는지, 아이와 발달지원센터나 소아정신과를 방문해 본 부모라면 공감할 것이다. 길어봤자 10분 남짓이나 할까. 진료 시간 동안 전문가가 늘어놓았던 의학 용어를 곱씹으며 나 역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무얼 잘못했나, 셀프 고해성사도 수없이 반복했다. 

 김동일 교수의 강의는 부모들의 이런 깊은 고통을 한 방에 날려주었다. 행동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부모의 양육 방식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만 분의 일도 안 된다. 부모는 아이에게 유전자를 물려줌으로써 할 일을 다했다. 부모의 양육 방식보다는 친구, 선생님, 아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이끄는 키다리 아저씨들의 영향이 유전만큼 크다고 했다. 

 호야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 풀 배터리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경계선 지능이란 생전 처음 보는 단어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골방에 들어가 눈을 부엉이처럼 크게 뜨고 진단서를 집중해서 읽어보았지만, 한숨만 나왔다. 

 당장 감각통합치료든 뭐든 얼른 치료를 시작하라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일단 치료센터부터 예약했다. 다음 달이면 초등학교 입학인데 학교에 들어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입학 유예를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다. 다행히 친구 중에 초등학교 교사 부부가 있어 화상 상담을 요청했다. 1학년 담임을 많이 맡았다는 친구는 호야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한글은 얼마나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하더니 이 정도면 1학년 때 큰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래도 엄마는 아이를 알잖아요’였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알잖아요’라니 환장할 노릇이군, 이라고 생각했다. 장장 몇 시간에 걸쳐 ‘종합 심리검사’를 했는데 결과를 부정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내가 배 아파 낳은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고 굳은 믿음을 피력하라는 말인가. 이런 근거 없는 말을 한다니. 

 당시에 나는 아이와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아서 엄마로서 자신감은커녕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출생 후 3년은 엄마와 충분히 교감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육아 전문가들의 충고는 나를 자괴감이 넘실거리는 구덩이로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인턴 과정을 마치고 전공과를 고를 때 당직이 거의 없는 진단검사의학과를 선택하여 저녁 시간과 주말을 아이와 함께 보냈지만, 이걸로는 역부족이었나 싶었다.

 나는 내 아이를 모르는데,라는 생각으로 허우적대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치료를 시작하고 담임선생님께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호야 초등학교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내가 꼭 하는 일이 있다. 학기 초에 정식 상담 기간이 되기 전에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수시 상담을 요청한다. 저학년 때는 선생님들이 상담 요청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셨는데 고학년이 되니 바쁜 학기 초에 꼭 대면 상담을 해야 하냐고 묻는 선생님도 있다. 그래도 아이에 대해 의논할 점이 있다고 하며 꾸준하게 상담해 왔다. 선생님께 아이의 특성과 걱정되는 점 등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느린 학습자에 대한 간단한 자료도 건네며 바쁘시겠지만 시간 되시면 읽어보시면 좋겠다고 부탁드린다. 

 부모 전문가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현실 자각과 수용이다.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내 아이는 아니라고 넌 할 수 있다고, 엄마 혼자 목표를 정해놓고 응원과 격려의 폭포수를 쏟아부어도 소용없다. 집에서 키우는 화분도 물이 많이 필요한 화초가 있고 선인장처럼 물을 쓸데없이 많이 주면 죽어버리는 식물이 있지 않는가. 교육부의 경계선 지능인 지원 방안 관련 사례를 보면 학교에서 검사를 권유해도 부모가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래요, 라며 검사를 거부하고 가정에서 ‘넌 할 수 있어’만 외치다 결국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부모 전문가는 내 아이를 위한 맞춤 재단사가 되어야 한다. 옷을 맞추러 수제 양복점에 갔다고 생각해 보자.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서자, 양복점 주인이 당신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한다. 당신 눈을 쳐다보며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인사치레하며 자리로 안내한다. 주인은 당신의 사소한 점을 칭찬하며 기분을 돋우고 향긋한 차를 내온다. 가게에 들어선 지 10분이 넘었지만, 아직 옷은 대화의 화두가 아니다. 한참 동안 기분 좋은 대화를 하던 양복점 주인이 드디어 어떤 옷을 맞추고 싶은지 물어보고 당신은 카탈로그를 보면서 옷을 고른다. 디자인과 색상을 결정한 후 점원이 재단을 위해 당신을 다른 방으로 안내한다. 

 ‘독립된 다른 방’은 교육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 학생을 위해 독립된 공간과 맞춤식 교육을 제공하는 풀 아웃 방식을 일부 교육청에서 느린 학습자 대상으로 시행했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 옷을 재단하고 나면 마침내 양복 제작에 들어간다. 며칠 뒤 양복점에 들러달라는 연락이 온다. 수제 맞춤옷의 하이라이트는 가봉이다. 듬성듬성 바느질하여 옷을 만든 후 고객의 몸에 딱 맞도록 정교하게 맞추는 과정이다. 몸무게와 신장이 같아도 몸의 고유한 특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어깨가 딱 벌어진 역삼각형 체형인데 어떤 사람은 허리 부분이 잘록한 호리병 모양이다. 꼼꼼한 가봉을 거쳐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수제 맞춤옷이 탄생한다. 

 맞춤식 교육도 똑같다. 표준 교육과정에 집착하지 말고 아이의 특성과 상황에 맞게 목표와 과업을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의 강점과 약점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바로 부모다. 내 아이 맞춤 전문가 부모가 다른 전문가들과 팀을 이루어 협력할 때 아이가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기성복 살 때 점원에게 옷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점원은 당신의 신체를 눈대중으로 대강 훑은 다음 가게에 즐비하게 걸려있는 형형색색의 의류 중 몇 점을 눈앞에 대령한다. 내 몸을 가져온 옷에 맞추라는 식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은 기성복 가게와 다르지 않다. 기성복 가게는 점점 명품을 선호하는 추세인데 명품을 가져다 놓고 이건 명품이니 너희가 알아서 맞추라는 식이다. 

출처: canva

  ‘노력이 부족하다.’
  ‘할 수 있는데 안 한다.’
  느린 학습자들이 가장 많이 받는 오해들이다. 전문가인 부모는 내 아이의 고유한 특성을 파악하여 아이를 위한 맞춤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작정 우기기 금지, 현실인정, 내 아이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 

 강의를 마친 김동일 교수가 마지막 화두로 인사를 대신했다.

 “여러분은 자녀와 오래 함께 사실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는 효도할 날이 올 겁니다.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호야보다는 나의 헤피엔드인가. 나는 괜히 가슴이 싸해지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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