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찬 May 08. 2023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엄마에게

내가 만일 너였다면 

엄마 안녕하세요. 저 엄마 딸 해나예요.

이렇게 편지를 쓰려니 낯간지럽고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한테 편지를 썼던 게 언제인지, 그 마저도 유치원 때 어버이날이라고 쓴 게 다일텐데, 쓰면서 간질거리는 기분이 드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로 읽으면서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겠죠?

엄마가 만약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결국에 전 어떠한 선택을 했다는 거겠죠? 그리고 저의 그러한 선택이 어떤 이에겐 감추고 싶었던 진실이 드러나게 할 거예요. 아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람들에겐 운명이 정해지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제 운명은 이거였어요.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멋진 말이 있죠! 전 개척하는 자는 될 수 없었나 봐요. 개척할 만큼 강하지 않았어요 엄마.

엄마 저랑 같이 아르바이트하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한 친구가 있었어요. 활발하진 않더라도 오히려 그게 진중하게 보여서 믿을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나 봐요. 그 친구는 조금 다를 거라 믿었지만 막상 내가 곤란할 때 도움을 주지 않았어요. 맞아요 솔직히 그 상황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외면은 쉬워도 조그마한 용기는 내기 쉽지 않죠. 만일 반대 상황이었어도 먼저 나서서 손 내밀긴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하지만 그 작은 용기를 내밀어줬다면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이제 와서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씁쓸하네요. 

다른 건 다 두고 가도 괜찮았지만, 더 이상 엄마, 아빠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함께 시간을 보낼 걸, 이제와 후회되지만 돌이킬 순 없어요. 하지만 그 웃음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들이 만들어 내는 소문이 얼마나 강한 지 엄마는 알고 있었나요? 그 소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의 여부 자체는 확인할 필요 없고 누군가에게 어떤 말이 도는지가 사람들에겐 관심일 뿐이에요. 그 소문의 당사자가 괴로워하든, 힘들어하든 사람들은 관심 없어요 어차피 그 당사자는 내가 아니니 아이들이 즐겨 씹는 껌처럼 질겅거리면 그만이죠. 그리고 그 단물이 다 빠져버리면 길바닥에 버린 채 다른 껌을 찾아 나서요. 전 그 껌 중에서도 단맛이 숨겨져 계속 나오는 껌이었어요. 가십거리의 중심은 항상 제가 있어서 절 안 씹는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 지경이었으니까요.

보통 청소년 시기엔 친구들에게 목숨 거는 시기라고 흔히 말해요. 저도 아마 그랬던 거 같아요. 버려질 거라 생각도 못하고 항상 진심으로 최선을 다 했어요. 내가 가진 문제는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달라질 거라 믿었거든요. 남들이 용기를 내주지 않으니 내 스스로가 용기를 낸건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신은 딱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하는데, 제가 약했던 걸까요? 제 약함으로 엄마, 아빠한테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줘버린 걸까요? 먼저 가버려서 미안해요 엄마.

엄마 이제는 더 이상 나 때문에 울지 말아 줬음 해요. 그리고 제 고통을 뒤늦게 알았다며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모든 건 결국 제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고 만약 같은 일이 반복되면 또다시 같은 반복을 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엄마와 아빠처럼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운을 다 써버려서 별로인 사람들을 만났나 봐요.

엄마, 아빠는 부디 저처럼 빨리 오지 마시고, 저 대신에 멋진 풍경도 많이 보고, 여러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와주세요. 여기서 오늘 하루도 무탈히 지나갈 수 있도록 바라고 있을게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해요.


추신: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를 만나서 좋은 추억 만들고 가는 거 같아요. 다음에도 괜찮다면 저의 엄마가 되어주실래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 해나>

작가의 이전글 현실과 환상 그 어딘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