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오래된 영화이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한 영화이다. 특히 ‘엄석대’라는 이름은 한 번씩 들어봤을 것이다. 보고 싶었던 영화여서 더욱 몰입하고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주인공 한병태가 시골학교로 전학 가게 되면서 급장 엄석대의 권력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고 결국엔 순응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엄석대를 이기고 싶었지만, 결국 이기지 못하고 권력에 맛에 들어버린 한병태는 새로 부임한 김 선생님께 엄석대의 비행을 말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한병태의 모습은 놀라움을 주었다. 누구보다 엄석대의 만행을 알리고 행동이 옳지 못함을 말하고 싶어 했던 한병태는 권력이 얼마나 달콤했으면 그가 변하게 된 건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가치관, 신념은 권력을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김 선생님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인해 엄석대를 벌을 주었지만 그 또한 선생님이라는 지위이자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가치관을 유지하기 위해선 권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전학 가기 전 학교 친구에게 받은 동전을 소중하게 가지고 있다가 후에 석대왕국에 간 후로 앞에 있던 모닥불 앞에 동전을 던져버린다.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 뭉개지는 동시에 엄석대에 대한 완전한 충성 혹은 복종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동전을 가지고 있었을 당시는 어떻게 해서든 부적절한 엄석대에 대한 응징을 하고 싶어 했고, 적극적으로 같은 반 급우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엄석대의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인해 결국 자신 또한 다른 급우들과 다름없이 순응해 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동전은 한병태이면서 동시에 가치관이다. 가치관을 지키고자 했지만 던져버림으로 과거의 가치관과 자신은 없음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는 엄석대에 대해서도 다시금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무조건 나쁜 인물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단편적으로 보면 학급에 무관심했던 최 선생님보다 더 악질이었고. 같은 반 급우들을 친구가 아닌 자신보다 아래로 여긴 장본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나쁘다고 말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영화를 보면 그는 어머니가 서울로 자신을 두고 떠났음을 알 수 있다. 가정사에 대해선 정확히 나오지 않았으나 한병태가 엄석대를 대신해 그림을 그려주는 장면 후 집으로 둘이 돌아가는 장면에서 어머니가 지내고 있다는 서울에 대해 궁금해했고, 한병태의 어머니가 미인이시라는 이야기를 통해 외롭게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시라도 그가 충분한 사랑을 받고 누군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더라면 옳은 행동을 할 줄 아는 급장으로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말해본다. 아니면 주인공이 한병태가 아닌 엄석대였다면 우리는 다르게 영화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한병태가 독백으로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엄석대의 시점으로 독백이 이어졌더라면 조금은 엄석대에 대한 공감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건 바로 시대적 배경이다. 간간이 나오는 TV 내용에는 이승만 부정선거에 대해 나오고 있다. 부정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엄석대가 강압적인 행동으로 급우들의 의해 급장이 된 것과 유사하다. 이미 이승만이, 엄석대가 될 것이 뻔한 의미 없는 투표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둘 다 결국은 무너지고 정당한 투표를 했다는 점까지도 비슷하다. 이러한 점은 어른이나 아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부당한 행동은 가해자인 이승만과 엄석대가 했지만 피해를 입는 건 국민들과 같은 반 급우들이었다. 그들은 결국 본인이 가졌어야 할 정당한 권리를 가졌지만, 그 시간은 너무 오래 걸렸다. 감독은 이승만 정부를 비판하면서 당연한 권리에 대한 소중함도 표현하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온 영화 기법도 옛날 영화답지 않게 다양한 기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먼저 플래시포워드가 있다. 플래시포워드란 플래쉬백의 반대로 상상, 꿈처럼 미래의 사건이 삽입되는 경우를 말한다. 총 3번을 통해 나타나는데 이건 모두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시간으로 병태의 심리적 욕망에 비례하는 현실의 주관적인 심리적 투영을 위한 의식의 흐름을 대변하여 주는 회상 속의 상상이다. 한병태가 엄석대를 싸워 굴복시키는 상상. 점심시간에 한병태가 엄석대의 옆에 앉아 아부하며 같이 점심을 먹는 상상. 복도에서 한병태가 최 선생님을 따라가 엄석대의 시험의 부정행위에 대해 말하는 상상 이렇게 총 3개가 있다. 상상에 불가하지만 상상을 실전으로 옮겼으면 엄석대의 만행이 완전히 드러나거나 반의 주도자가 뒤바뀌는 일이 생겼을 것이다. 허나 엄석대가 달려오는 기차를 상대로 한 담력싸움은 한병태가 자신은 엄석대를 이길 수 없음을 확실시하는 계기를 만들게 했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한병태는 엄석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자신의 한계를 느낀 동시에 엄석대의 행동에 대한 동경도 생겨났던 거 같다.
교차편집도 일어났는데 서로 다른 장소에서 발생하는 둘 이상의 사건행위의 쇼트들이 교대로 보이도록 하는 방식으로 두 공간의 행위를 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교차편집으로 인하여 한병태와 엄석대 둘 상의 심리관계가 표출되고, 극적인 긴장감과 아이러닉 한 대조가 나타나거나 심리를 대비시키기 위해 교차편집이 쓰인다.
인물들의 나이가 5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관한 유혹을 잘 표현한 영화인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비판을 해도 어딘가에 엄석대처럼 권력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잘못된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선 김 선생님 같은 사람이 앞으로도 많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끝나지 않는 굴레에 빠져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