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너였다면
나의 아들, 나의 하나뿐인 보물 준 안녕? 엄마야.
거기는 어때? 잘 지내고 있니? 밥은 잘 챙겨 먹고 잠은 잘 자고 있는 거지? 우리 아들은 밝고 씩씩해서 어디서든 잘 지낼 거 알지만, 엄마가 그걸 지켜볼 수 없으니 그저 보고 싶은 마음뿐이야. 아직 엄마 품이 필요한 나이인데 준이는 품을 빨리 떠나게 되었구나.
오늘은 준이를 보낸 지 1년이 조금 넘은 날이야. 시간 참 빠르지. 엄마는 준이 없이 하루도 못 살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하루가 살아지더라고. 준이 없는 세상은 매일이 잿빛이라 컴컴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는데 결국은 엄마가 만든 잿빛하늘은 엄마가 걷어내야 빛을 맞이할 수 있는 거였어.
나의 소중한 아이,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춥고 배고파했을까. 따뜻함 만을 느끼며 자랐어야 할 아이가 그 긴 시간 동안 엄마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을까. 엄마가 조금만 더 준이를 빨리 찾았더라면 품에 안아줬을지도 모를 텐데 엄마가 미안해.
6월처럼 따뜻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던 이름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이름으로 지을 걸 그랬나 봐. 누군가에게 따뜻해보지도 못하고 준이는 떠났잖아. 준이가 없는데 따뜻함이 무슨 소용이겠어.
엄마가 그 학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준이를 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수 백 번 생각해. 아니 애초에 밀양으로 내려온 것이 실수였을까. 준이 아빠를 그렇게 보내고 밀양으로 내려와서 새롭게 시작하고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나 봐. 엄마의 욕심이 망쳐버렸어. 조금만 더 준이를 신경 썼더라면, 빨리 보낼 줄 알았으면 하고 싶은 거 하게 하면서 조금이라도 준이랑 함께 시간을 보낼걸. 남이 보는 시선이 뭐가 중요하다 신경 썼을까.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런 거보다 준이가 제일 중요했는데. 모든 게 엄마 탓인 거 같아 가슴이 먹먹해. 준이가 아니라 엄마가 여기에 있으면 안 됐는데.
하루는 엄마랑 준이를 헤어지게 한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만나러 간 적이 있어. 사람들은 누구나 혹해버리면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거고, 용서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마음속에 혹을 하나 살고 사는 죄책감이 자리 잡는 거니까. 두 명 다 웃을 수 없는 세상 보단 한 명이라도 웃는 세상이 좋을 거 같아 정말 엄마한테는 큰 결심을 하고 만난 거였는데, 이미 신이 용서해 줬다는 말을 듣고 이제껏 용서하려고 마음먹은 순간들이 의미가 사라지는 기분이더라. 엄마는 그 사람을 용서해 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너무도 쉽게 용서받으면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한 가정을 망가지게 해 놓고 엄마보다도 평온해 보여서 준이 생각이 계속 났어.
그래서 준이를 따라가려고 한 적도 많았어. 더 이상 어떤 의미로 살아가야 할지, 준이가 씩씩한 건 알지만, 한 편으론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엄마 품을 너무 빨리 벗어나게 해 버렸으니 이제라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어. 여기에 있을 이유는 찾기 힘들어도 준이를 만나러 갈 이유는 백 가지도 말할 수 있으니까. 아직 사랑도 제대로 주지도 못했는데 떠나버리면 엄마는 누구한테 사랑을 쏟아부어야 할까.
근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사람은 의미가 있어야 사는 게 아니라 의미를 찾아서 사는 거더라? 준이가 엄마가 살아가는 의미였다면, 다른 의미를 찾아보려고 해. 오늘은 내리쬐는 햇볕이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이 웃음처럼 너무 따뜻하더라고. 따뜻해서 빨래를 널고 싶은 마음에 살아야겠다 다짐했어. 그랬더니 준이가 옆에 있는 거 마냥 우울한 마음마저 같이 말라가는 거 같았어. 엄마도 준이처럼 씩씩하지?
엄마의 이런 행동이 오히려 준이가 상처받는 건 아닐까 걱정도 돼. 준이를 털어버리고 다시 새로 게 시작하는 거로 보일까 봐. 하지만 준이라면 결국엔 엄마가 이겨내길 바랄 거 같았어. 그니까 준아 거기서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 지켜봐 줘. 혹여 엄마가 준이를 잊어가는 거처럼 보여서 외로워진다면 선선한 바람이 되어 찾아와 줄래? 그 바람을 느낄 때마다 준이를 기억하며 하늘을 바라볼 테니까.
사랑하고 항상 사랑할 나의 준아. 부디 거기선 울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면 있어줘. 그렇게 매일 웃으며 지내다 보면 엄마가 준이랑 이야기할 거리들 잔뜩 챙겨서 늦지 않게 준이 곁으로 찾아갈게. 그때까지 준이는 기다려줄래?
사랑한다 말해도 부족한 준아. 사랑한다. 가슴 벅차게 사랑해.
추신: 엄마가 이렇게 되도록 옆에서 도와준 사람이 있어. 항상 곁에서 알게 모르게 엄마를 비춰준 사람이야. 준이한테도 꼭 그런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밀양 - 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