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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찬 Apr 13. 2023

어른은 과거를 그리워한다

영화비평 <박하사탕>

 영화 <박하사탕>은 한 남자가 겪었던 과거를 역순으로 되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김영호로 1999년의 마흔 살이던 그는 ‘가리봉 봉우회’ 야유회 중 나타나 온갖 민폐를 끼치더니 급기야 기찻길에 올라가 다시 돌아갈 거라며 고성방가를 지르며 영화는 시작한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점차 영호의 과거에 겪었던 경험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작품에선 과거로 돌아갈 때마다 기찻길이 여러 번 나오는데, 내가 주의 깊게 봤었던 기찻길은 1987년 봄이 등장할 때 나온 기찻길이다. 계속 한 길로만 가던 다른 기찻길과는 달리 두 가지의 길에서 선택하여 나아가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영호의 순수함의 마지노선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폭력적인 모습을 띠고, 순수했던 모습은 사라져 간다. 지니고 있던 순수함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을지, 현실을 직시하고 순수함이 소멸된 삶을 살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영호는 후자를 선택했고 후에는 완전히 망가진 삶을 산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범죄자에게 폭력 행하기를 피하고 싶어 하거나. 자신과는 달리 순수한 순임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이 드러나기 싫어 떼어놓고자, 일부러 성추행을 하는 등의 모습은 조금이나마 순수함이 남아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에 그때 전자를 선택했더라면 순임을 조금 더 빨리 다시 만나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영호의 성격 변화는 확실하다.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어 하던 청년은 카메라를 미련 없이 팔아버리는 아저씨가 되었고, 범죄자에게 폭력을 행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좋게 보지 못하고,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 했지만, 연륜이 쌓이면서 별명이 ‘개’라고 할 만큼 폭력적이고 사나운 모습을 보여준다. 성격의 변화라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경찰 시절 회식 자리에선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즐기고 신나 했었지만. 야유회 자리에선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행패를 부리며, 사람들을 밀치고 노래를 망쳤다. 그 사이에 영호가 얼마나 피폐해지고 망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영호가 성격을 변하게 된 계기는 크게 군대라고 할 수 있다. 군 생활 중 다소 어리숙하던 영호는 민주화 운동에 휩쓸려 뜻하지 않게 여학생을 총을 쏴 죽이게 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손전등으로 영호를 비추자 영호의 표정만이 이목이 집중되어 보인다. 그때의 영호의 표정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이었고, 사람을 죽였던 손이기에 더 이상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군대를 제대하고 막 경찰이 된 영호는 순임을 다시 만나게 된다. 순임은 과거 영호가 들꽃을 다정하게 만지고 자신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던 순수하고 착했던 영호로 기억하기에 ‘착한 손’이라고 말을 꺼낸다. 그러나 그 손은 더 이상의 순임이 기억하는 손이 아니라 사람을 죽였고, 폭력을 썼던 손이기에 착한 손이 아니라 생각하여 성추행을 하고 순임을 실망을 하게 해 떠나도록 한다. 순임이 건네줬던 카메라도 다시 돌려주게 되는데, 다시금 과거의 영호로 돌아갈 수 없음을 되새겨준다. 순임의 남편에게 건네받은 카메라를 바로 팔아버린 이유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착한 말투, 착한 얼굴, 착한 행동 등, 많고 많은 착한 무언가 중에 손이라고 정한 이유가 따로 있었을 것이다.


 영호의 과거를 보면 회상 당 한 번씩은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일 전에는 걸을 때마다 거의 대부분을 절뚝거렸고, 1987년 봄에는 범죄자를 잡으려다 절뚝거렸었고, 1984년 가을엔 순임에게 카메라를 돌려준 후에 절뚝거린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게 민주화 당시 군인들이 동원되었을 때 영호가 그 자리에 있었고 그때 얻은 부상이라는 걸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영호가 순수함을 잃고 성격이 망가지게 된 계기는 군 생활이다. 남은 삶을 절뚝거리면서 살아야 하는 영호에게 부상은 자신의 업보를 상기시키는 도구이다. 그렇기에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되새기게 한다.


 1984년 가을에 순임과 영호가 만났을 당시 대화를 살펴보면, 영호의 가족들은 어째서 경찰이 된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전한다. 그렇다는 건 영호는 평소에 경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이 드러난다. 후반부에 순임과의 첫 만남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으니 직업을 가져도 사진작가 정도를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군대에서의 경험이 정신적 충격으로 오래 남았다면 쉽사리 경찰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택했던 건 속죄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영호의 기억의 단편만 보았기에 민주화 운동 당시에 여학생 한 명만 죽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운동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고 그 만한 기간 동안 원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같은 민족의 사람들을 죽였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충격이 컸던 영호가 경찰을 택했다는 건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한 사과와 용서를 하고 싶었고, 그 방법이 경찰이었다고 짐작해 본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단순하게 정의하면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고, 나쁜 사람들을 잡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쁜 사람들을 잡음으로써 정의를 지키고 자신의 했던 일에 속죄하고 싶어서 경찰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찰이 되고 나서의 실상은 순수함만 더욱 사라지게 하고 말았다. 경찰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던 것도 그 직업에 대한 실망감을 가졌기에 크게 미련 없이 그만둘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호가 군산에서 잠복근무를 할 때 쉬라는 동료들의 권유로 자리를 옮기다가 ‘물망초’라는 술집을 들어가 술집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순임을 계속 그리워하던 영호에게 술집 여인을 자신을 순임이라 생각하라고 말했을 때, 잠시나마 영호는 그 여인을 순임으로 투영시켜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그동안 묵혀져 있던 감정이 해소를 시켰기에 다음 날 다시 찾아가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아 중얼거렸던 것이다. 


 물망초의 꽃말은 ‘날 잊지 마세요, 진실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호에게 술집 여인은 상처를 보듬어 주었던 건 맞지만, 그 여인을 안 만나도 그만이었다. 권태기 상태여도 이미 결혼은 했기에 크게 아쉬울 거도 없었고, 금방 다른 사람과 눈 맞으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물망초를 하던 술집 여인은 그게 아니었다. 비록 짧았지만. 여인은 진심이었고 첫사랑에 눈물 흘리는 모습에 반했을 것이다. 영호의 모습을 보고 여인 자신이 첫사랑이었던 순임이 되어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남자가 있기를 바랐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순임이라 생각하라고 한 걸 수도 있다. 정체성을 잃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순임이라는 여성이 부러웠기에 되고 싶어 순임이라 여기라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여인 자신도 하나의 인격체를 가진 여성이기에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해 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영호가 순임으로 투영화해서 보는 것이 아닌 자기 모습을 올곧게 바라봐주길 바라는 ‘진실한 사랑’과 짧고 금방 잊혀 버릴 수 있는, 그저 흐릿했던 여자 중 한 명으로 남아있는 여인이 되기 싫었기에 영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 ‘날 잊지 마세요’라는 말에 담긴 물망초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하사탕은 순임과 영호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다. 순임의 병문안 선물로 고민 없이 박하사탕을 사서 건네주었고, 힘들었던 군 생활 때 순임이 편지에 하나씩 담아주던 거도 박하사탕이었고 그걸 먹지 않고 계속해서 보관했었다. 이건 순임의 마음을 간직했다고도 볼 수 있다. 둘의 풋풋했던 첫 만남에서도 박하사탕을 순임이 건넨다. 박하사탕으로 시작된 인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살펴볼 점은 영호가 박하사탕을 대하는 행동이다. 1994년 여름에 미스 김이 식당에 나오면서 차에서 준 박하사탕은 바로 먹어버렸지만, 순임이 주었던 사탕은 먹지 않고 간직해 두었다. 박하사탕은 단순히 음식일 뿐이지만, 따로 보관해 두었다는 점에서 그거마저도 영호에겐 소중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부대 비상이 떨어지면서 다들 급하게 밖으로 나갈 때, 박하사탕을 흩어지고 밟아 깨지는 모습에서 순임과의 관계에 대한 복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하사탕을 모아둠으로써 순임과의 인연을 쌓아가고 있었다면 한 순간에 깨지는 계기를 맞이하고 그 관계가 끝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연도 별 역순이기에 이것을 복선으로 봐야 할지 어려울 수도 있지만, 보통 영화들처럼 역순이 아니라 순서대로 진행되었다면 충분히 복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영호는 사람들과의 자리를 옮긴 후 드러눕는데 그 표정이 웃는 거 같기도 하고 우는 거 같기도 한 미묘한 표정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산울림의 ‘나 어떡해’를 계속 부르는데 그 노래는 영화 초반부에 영호가 불렀던 노래로 마치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 구조는 마치 1999년에 머물렀던 현실이 1979년으로 바뀐 듯한 모습을 띠고 있는 거 같다. 


 그리고 마지막 영호의 표정으로 지금까지 본 영호의 과거가 어떤 것일지 추측해 볼 수 있다. 먼저 단순히 이건 영호의 꿈일 수 있다. 그렇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게 1987년 봄 아내와의 대회에서 오빠가 사라지는 꿈을 꿨다는 언급이 있고, 1979년 가을에 순임과의 대화에서 이 장소가 익숙하다는 영호의 말에 꿈에서 꾼 적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 순임이 말한다. 이처럼 꿈에 대한 언급이 잦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꿈이라는 말에 익숙해지도록 하려는 장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꿈이 결국은 아내가 아닌 순임을 선택했기에 아내가 영호가 사라지는 꿈을 꿨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영호의 과거가 꿈이었던 것일까 생각이 든다. 혹은 기찻길에 올라가 기차가 오고 있음에도 피하지 않고 고성방가를 지르는데 솔직히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는 힘들다. 그러니 영호가 죽기 직전의 주마등일 수도 있다고 본다. 40여 년을 살면서 자기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들을 위주로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 가장 행복했던 1979년 가을이라는 천국에 돌아가 버린 걸 수도 있다. 마지막으론 과거를 걸치고 거쳐서 과거로 결국 돌아갔다는 것이다. 영호가 누워서 미묘한 표정을 짓는데 마치 다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드디어 이때로 돌아왔다는 행복한 미소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울음이 겹친 표정을 짓는 영호는 그간 있었던 일들이 꿈이라고 생각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후에는 그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짓는 표정이다. 긴가민가했지만, 영호가 누워있을 때 들리는 기차소리로 하여금 완전히 기억이 돌아와 눈물이 맺혔기 때문이다. 흔히 보통은 영웅소설에서 조력자가 나타나 힘이 되어 주지만, 여기서는 기차가 조력자가 되어 영호의 바람을 이루어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3가지의 경우 중에서 영호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성공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씩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삶을 꿈꾸지만, 그런 드라마 같은 삶도 어떻게 보면 어떤 이가 겪어 본 적이 있기에 표현하고 묘사하는 것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의 평범한 삶도 누군가가 바라는 드라마 같은 삶일 것이다. 영호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마냥 행복한 삶이었다고 우리는 판단할 수 없지만, 그 정도도 누군가가 바라는 일상이었던 거고 그 삶에 영호는 후회했기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나는 영호가 결국 시간을 돌려 과거로 갔다고 말했다. 우리도 살면서 딱 한 번 과거로 돌아가 선택 길에 놓여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 평범하다면 평범했을 그 당시 그 시절의 영호의 인생이었지만, 셀 수 없는 확률로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다. <박하사탕>은 인생이란 무엇이고, 삶의 갈림길에 대한 미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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