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너였다면
아빠 안녕. 수안이에요.
아빠가 떠나고 시간이 5년 넘게 흘러 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다들 교복이 잘 어울린다고 해주는데 정작 보여주고 싶은 사람한텐 보여줄 수 없으니 조금은 씁쓸하네요. 전 부산에서 엄마랑 지내지 않고 작은 방 하나 구해서 혼자 살고 있어요. 엄마가 계속 같이 살자고 하시긴 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독립을 시작했어요.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좀비사태는 사그라져서 더 이상의 좀비는 존재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어 좀비가 나타나면 무작정 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꾸준히 연구한 덕에 백신이 등장했고 좀비에게 주입했어요. 백신으로 인해 돌아온 사람들은 자신이 좀비였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그냥 잠시동안 긴 잠을 잔 것으로 생각하고 가족들을 보고 싶어 했어요. 좀비에서 사람으로 돌아오는 건 대단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로 인해 죽은 사람들만 안타깝게 됐어요. 조금만 더 빨리 백신이 나왔으면 나에게도 돌아갈 가족이 있었을 텐데.
더 이상의 좀비는 사라졌고, 그 흔적도 흐릿해졌어요. 분명 살아남기 위해 치열했던 핏자국들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다 같이 긴 꿈을 꾼 거 마냥 깨끗해졌거든요. 망가진 건물들과 기차들도 복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어요. 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희생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과연 몇 명이나 기억해 줄까요. 또 기억해 줄 사람마저 희생된 사람은 얼마나 수없이 많을까요. 아빠를 기억해 줄 저는 살았으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요. 전 아직도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길고도 짧았던 그 꿈이 맴돌아요. 그리고 그게 정말 꿈이었길 바라요.
그날 제가 부산에 가고 싶다 하지 않았더라면, 아빠는 아직 제 옆에 계실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만 들고 그 모든 게 저의 잘못 같아요. 매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었는데, 그날 한 번 더 안 했다고 그간의 거짓말이 사라지는 거도 아닌데 왜 고집을 피웠을까요. 한 때 전 아무리 해도 아빠와 가까워질 수 없음에 아빠에게 있어서 저는 귀찮은 존재가 일지도 몰라서 아빠랑은 친해질 수 없었지만, 다정했던 사람임을 알아요. 그래서 아빠가 미워요.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셨을 거면 다정함을 느끼지 못하게 해 주시지, 마지막까지 친하지 못했던 아빠로 남아있었어야죠.
아니에요. 사실은 아빠가 많이 보고 싶어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아빠를 잃었던 그날이 아빠랑 보낸 가장 긴 시간이에요. 짧았다면 짧은 긴 시간 동안 아빠랑 함께 있으면서 든든하고 안심이 됐던 거 같아요. 만약 그때 당시를 이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빠가 조금은 절 의지 할 수 있었을까요?
이제는 볼 수 없는 아빠, 더 이상 저와 아빠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원하지 않은 헤어짐은 겪지 않아도 될 상처니까요. 아빠에게 다음 생이 있다면 저를 만나지 말고 아빠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주세요. 부디 끝까지 살아주세요. 그리고 그땐 꼭 제가 아빠를 지킬 수 있게 해 주세요.
<부산행 - 수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