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문답으로 읽는 20세기 한국경제사>
이 책은 2010년에 발간되어 정태헌이 작성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20세기라는 제목에 맞게 프롤로그로 간단하게 이야기를 펼치며, 구한말 · 대한제국 시기. 일제 식민지 시기. 해방 이후를 다루다가 마지막 에필로그로 끝이 난다.
책의 저자인 정태헌은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휘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여 2년 동안 대우(주)에서 근무를 하다, 이 책이 나오게 되도록 도움을 주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를 따냈다. <문답으로 읽는 20세기 한국경제사> 외에도 자신의 전공을 살린 <일제의 경제정책과 조선사회>,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 성찰> 등의 책을 저술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볼 때 한국사 중에서도 주로 일제강점기시기에서 현대시기 위주로 연구하고 지필 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학과 교수와 한국사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소장과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부위원장을 맡아 한국사에 대해 누구보다도 앞서서 한 획을 긋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태헌에 대해 간단하게 나열만 해도 얼마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 올바른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노력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쓴 책이 아니라는 점을 볼 때, <문답으로 읽는 20세기 한국 경제사>라는 책은 믿고 읽을 수 있다. 본인이 파고들었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알려주고자 할 때의 열정의 결과는 그 어느 것보다 완벽하고 뛰어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각 파트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고자 한다. 1부에선 맹아론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자본주의 맹아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그것에 대한 한계와 의미를 설명하며, 조선의 전통이 다른 전통들과 다르다고 하여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자본주의 맹아론이 폐기되어 사라지지 않고 그걸 활용하여 시대에 맞게 재구성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고 있다.
2부는 일제 식민지시기에 있던 토지조사사업, 산미증식계획, 공업화에 대해 나온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나갔기에 어쩌면 더 빠른, 탁월한 문명화를 이룬 것일지도 모르나, 그것에 대해 옹호하지 않는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느리고 티가 안 나는 미약한 발걸음일지라도 분명히 대한민국도 발전을 해나갔을 것이었기에 강제동원과 수탈에 대해 과감하게 비판을 하고 있는 파트이다.
해방 직후를 다루고 있는 3부에서는 조선이 각각 남한, 북한으로 갈리게 된 시점을 다루고 있다. 사실상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북한의 현 경제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은 더욱 한정적일 것이다.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 소식으로 인해 자연스레 대한민국보다 못 사는 나라로 인식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얻고자 했던 독재 시대를 다룸과 동시에 북한과 함께한 개성공단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IMF 때의 위기와 극복을 마지막으로 책이 끝난다.
책에선 ‘식민지적 근대’라는 말을 사용한다. 식민지적 근대는 식민지 자본주의를 토대로 제국주의가 이식한 근대를 통해 형성된 식민사회의 특징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일본으로 인해 겪게 되는데, 이는 일본이 조선의 발전을 위해 도모해 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선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문화의 기준이 일본 문화가 되어, 조선인이라는 사실만으로 폄하와 차별의 대상이 됨으로써 정체성과 존엄성이 훼손되게 한다. 그런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조선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면서 수탈과 식민통치를 일삼았다. 근대를 맞이하긴 했지만, 스스로의 힘이 아닌 일본에 등 떠밀려하게 된 찝찝하고도 불쾌한 발전이었다. 어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식민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다. 정태헌은 이것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하고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입장을 가지게 된 이유를 내세워 역지사지로서 입장을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이에 대해 ‘식민정책은 무조건 나쁘다.’, ‘식민정책과 일제강점기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비판받아야 한다.’라고만 생각해 왔던 이들이라면 과연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생각이 여전할 지에 대해 궁금하게 만드는 책이다.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고 지냈던 것은 아니었던지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조선의 전통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조선이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만 틀어박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멀리 내다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를 들 수 있다. 흥선대원군이 개항으로 인해 얻게 되는 단점으로 인해 막힌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명성황후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때 흥선대원군이 생각을 고쳐먹고 조금만이라도 열린 사고방식으로 바꿔서 서양과 원활한 관계를 이어갔다면 조금은 덜 ‘을’의 입장이 아니게 되었을까 한 번쯤은 의문을 던지게 된다.
이전에는 나라별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다름이 존재했고, 행여 침략을 했다고 하더라도 강제적으로 사회구조나 의식을 바꾸지 않았지만, 근대로 들어오면서 다르다는 게 차이가 아닌 차별적인 서열로 규정되면서 침략국의 우월함을 이식해 제도와 가치관을 동일시시키려는 세계화를 요구했다. 이렇게 이식된 근대는 침략되기 이전에 변화를 부정하거나 이미 주입된 제도에 맞춰가려고 한다. 그런 식이 반복되다 보니 이식된 제도에 맞지 않은 것은 뒤떨어진 것, 열등한 것으로 여기여 없어져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각인되었다. 일본식 제도의 시행으로 익숙해지면서 다르다는 것을 배제한 발전의 선후 굴레에 빠져들었고, 이전부터 전해 내려온 조선의 전통은 무조건 뒤떨어진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뒤처져있다고 생각했던 배경이 되는 게 일제강점기를 겪었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로 인해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깔려있던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과거를 돌이킬 수 없기에 역사인 것이지만, 만약에 국력이 강하고 탄탄했다면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한국이 뒤떨어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달라졌을까 대해 다시금 돌이켜보게 한다.
‘자본주의 맹아론’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처음 보는 단어라 책으로도 반복해서 읽고, 따로 단어의 정의에 대해 다시 찾아봤었다. 자본주의 맹아론은 조선·청나라를 포함한 전근대 동북아시아 사회가 자본주의 생산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갖춘 사회라고 분석하는 아시아사학 이론을 의미한다. 여기서 맹아는 말 그대로 어떤 대변화의 싹을 뜻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맹아론을 이용한 연구는 개항 이후 식민지시대나 분단시대가 아닌 임진왜란 · 병자호란 이후의 변화를 연구대상으로 삼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시대의 문제의식이 취약해져 강만길 선생은 자본주의 맹아론을 중심으로 한 역사인식이 현실모순을 모순을 외면하거나 미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맹아론 비판을 통해 식민사관까지 언급하게 된다. 사실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식민사관이나 나에겐 그저 입에 침 바른 소리로 들린다. 잘못 기록된 역사를 바로 고치는 것 또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큰일이기에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잘못은 더 큰 잘못을 낳는 법이기에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바로잡았으면 좋겠다.
정태헌은 19세기까지 조선사회의 변화과정을 자본주의 맹아론이라는 말보단 ‘내재적 변화 또는 발전’이라는 개념이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한국사회의 고유의 탈중세적 변화와 발전이 사회 · 경제 · 문화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가주권을 빼앗기면서 자체적인 힘으로 마무리되지 못한 탈중세 방향의 변화가 제국주의의 필요에 의해 종속적으로 흡수와 재편되거나 배제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면서 새로운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정태헌이 얼마나 역사에 관심이 많고 개선해 나가려는 지 알 수 있다. 대립되는 입장을 비판하기보다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며 포용하는 성향을 띠고 있다.
독재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단어가 공존하는 사람이 있다면 박정희일 것이다. 한국경제에 있어서 박정희를 뺀다면 팥 없는 단팥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재가 있었기에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증거 하나 없는 발언일 뿐이다. 만약에 박정희의 독재체제로 인한 경제성장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과거에 일제 침략과 비서구세계의 독재체제를 합리화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이 말을 하는 다수가 이런 부분까지 연결될 거라는 자각이 없었을 텐데, 이 책을 기회로 아직도 박정희의 독재체제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독재와 경제성장에 관한 부분을 읽다 보면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나온다. 북한의 체재를 언급한 점이 이목을 끈다. 박정희 정부를 선호했던 사람들이라면 일관성 있게 김일성 역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인민의 의식주를 해결했으니 그의 독재도 박정희와 같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을 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싶었다. 북한의 독재체제에 대해 요즘 시대에 왜 그러냐고 욕하면서 북한인들을 불쌍히 보면서 같은 방식으로 정치활동을 한 박정희는 왜 옹호받는가? 막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아주 적절하다. 경제성장을 박정희 때 확연히 한 건 맞지만 박정희 혼자 만들어 낸 게 아니라,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명력과 노동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였는데 박정희 혼자 해낸 거 마냥 치부해 버리는 건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이들이 억울해지지 않을까.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과연 박정희 정부를 겪고 나서도 똑같이 옹호할 수 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수능에서 한국사가 필수가 된 것으로 알 수 있듯 한국사의 중요도는 강조되고 중요시되고 있다. 보통 사람들도 이름도 길고, 익숙하지 않아 정이 안 가는 세계사보단 우리의 선조를 직접 겪고 기록되어 있는 역사에 대해 배우는 게 훨씬 관심이 가고 재미있을 것이다. 타임머신이 없기에 우린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남은 기록으로나마 과거에 대해 배우며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노력한다. 동시대를 겪을 수 없기에, 우리가 기억에 주지 않는다면 이들의 행동이 무의미해지기에 한국사를 배우는 것을 꺼리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주변에 환경이 많이 달라졌을 뿐, 어찌 되었든 한국사도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완벽할 수 없듯이, 한국사 경제 파트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익숙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아무래도 직접 겪어보지 못했던 일을 글로만 접하려니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현대라고 할 수 있는 이승만 정부 이후부터의 경제 체제가 워낙 다양하여, 많은 일이 있었기에 머리에 박히지 않아 아직도 애를 먹고 있다. 그렇게 된 원인을 파악해 보면, 중 ·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한국사를 배울 때 경제 파트가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아 자세히 다루지 않으니 그 점이 문제이다. 자세히 알려주기보단 이 년도엔 이런 정책과 체제가 있었으니 알아두라는 식의 가르침은 흥미를 돋우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어른들 같은 경우도 경제와 관련된 용어를 알지는 몰라도 뜻까지 제대로 아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검색 한 번이면 해결되는 문제이기에 굳이 먼저 공부하려 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그거마저 하지 않기에 알 수 있을 법한 단어도 전문 용어로 지칭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답으로 읽는 20세기 한국경제사>는 제목에 맞게 한국에서 일어났던 경제사를 자세하고 친절하게 다루고 있어서 한국사에 관심이 있거나 한국의 경제가 지금까지 오게 된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하고 넓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에만 머물러서 다루지 않고 총 3부로 나누어진 구성으로 하여 각기별 주요한 파트와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부분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어떤 식으로 생각해봐야 하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다.
앞서 말했듯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기에 과거에 경제적으로 실수,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되새기면서 옳지 못한 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제사라는 게 낯설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과거로부터 경제관념이나 경제생활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리로 자리 잡았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한국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발전하게 되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알고 한국이 되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갔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